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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비 Mar 07. 2024

원했던 삶을 선택했다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양귀자의 <모순>

양귀자의 <모순>은 1998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132쇄를 거듭하며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이다. 삶의 양면성, 모순적인 인생을 수용하는 태도, 사랑에 대한 입체적인 관점 등을 극적인 구조와 섬세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이 오랜 시간 동안 독자의 선택을 받은 이유 중에 하나는 소설이 건네는 인생 질문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했던 삶을 선택했다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소설은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도록 이끌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독자들이 ‘인생책’으로 꼽는 게 아닌가 싶다. 


인생은 해석한 만큼 살아내는 것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 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p.303


주인공 안진진은 25세 미혼여성이다. 억척스러운 어머니와 방랑벽이 심한 아버지, 조폭 보스가 꿈인 남동생과 어려운 형편 속에서 살고 있다. 어머니의 쌍둥이 동생인 이모는 부유한 삶을 산다. 부자인 이모는 지루한 삶에 회의적이고 가난한 어머니는 닥친 불행들을 처리하느라 지루할 틈이 없다. 안진진은 극단으로 나뉜 두 사람의 삶을 보며 모순투성인 이 인생을 탐구한다. 탐구의 결과는 그녀의 결정적인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즉, 그녀는 아버지와 비슷한 김장우와 이모부와 비슷한 나영규 사이에서 누구와 결혼할지 고민 중이었고 결국 모순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고통에 대처하는 다양한 태도 


소설은 인물을 통하여 인생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를 보여준다. 주인공 안진진은 어릴 때부터 불행하고 가난한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모님을 판단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 대신 생계를 꾸리고 문제아 아들의 뒷치닥거리를 하면서 이 불행을 ‘과장법’으로 이겨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 무릎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p.152)기 때문이었다. 이모는 완벽한 인생을 유지하기 위해 치명적인 고통을 외면하고 숨겼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불행을 어떻게 인식하고 처리하느냐에 달린 문제이라고 축소해서 볼 수도 있겠다. 안진진과 어머니, 이모 중에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안진진은 25세 이후에 인생을 무작정 수용하기 보다 ‘탐구’하기로 태도를 달리 한다. 어머니는 더 강하게 닥친 불행을 더 크게 과장한다. 이모는 끝내 고통을 외면하는 마지막 선택을 한다. 이렇듯 인생을 두고 딱 하나의 태도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로 고정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인생의 다양한 면을 보고 고민하는 탐구하려는 자세가 그나마 불행에 휘둘리더라도 끝내 부서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인생 탐구 결과, 인생은 모순투성이


안진진이 어린 나이에 고통으로 점철된 인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한번도 어머니에게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이었다” (p.51) 주인공과 달리 나는 부모님께 “왜 그렇게 사느냐”고 말은 못했지만 마음 속으로 수없이 원망하고 비판했다. 함부로 평가하고 비난했던 만큼 죄책감도 컸다. 나도 안진진처럼 부모님의 인생을 수용하거나 탐구하듯 바라 보았다면 상처를 덜 주고 받았을까. 지금 생각해 볼 때 그랬다면 좋겠다는 바람일 뿐, 실제로 인생이 어떻게 흘러갔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안진진이 유심히 탐구한 결과도 바로 인생은 모순투성이라는 것. 


작품은 인생에서 가장 큰 모순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소설에는 사랑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나오는데 모두 모순적이다. 사랑은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장렬한 무엇”이면서도 “가슴에 구멍이 뚫려 눈물이 나도록 외로운 느낌”(p.195)이기도 하다. 또한, 안진진은 능력있고 계획적인 나영규에게는 자신의 어려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고통스럽지 않지만, 섬세하고 다정한 김장우에게는 그가 품고 있는 자신에 대한 “사랑의 부피가 감소될 어떤 말도 절대로 하고 싶지 않”(p.219)았다. 모순적인 사랑 앞에 안진진은 "자신에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다.   


나영규에게는 없는 것, 그것이 확실히 김장우에게는 있었다. 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 있다.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무엇, 부딪혀 깨지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장렬한 무엇.
p.195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은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현실을 보일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내가 두 사람 앞에서 판이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 이유가 이것으로 설명되었다. 나는 김장우를 사랑하고 있다. 나영규에게는 사랑과 유사한 감정의 의사 사랑이 있었을 뿐이었다
p.220


선택은 양날의 검  


선택은 양날의 검과 같다. 어떻게 이 검을 품고 살아가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안진진이 어머니와 같은 선택을 하든, 이모와 같은 선택을 하든 선택 자체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녀는 선택한 그 길에서 자신의 의지와 노력대로 살 것이다. 하지만 모순투성이 인생은 의지와 노력과 상관없이 또 제멋대로 달려갈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이다. 


이제 <모순>이 던지는 인생 질문에 답을 해볼 시간이다. 우리가 원했던 삶을 선택했다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가까울 것 같다. “어머니가 자신의 운명과 이모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었다는 것에 대해 가장 격렬하게 저항하는 부분은 단연 자식들에 관한 것”(p.142)이었고 불행 중에 행복한 요소였다고 볼 수 있다. 그 부분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도 우리는 동일한 선택을 하게 된다. 실수라고 여기고 후회해도 말이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p.296


<모순>은 중요한 선택 앞에 인생을 탐구하면서 과연 어떤 선택이 행복할지 고민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에 수많은 자신을 마주하게 만들고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도록 이끈다.  사랑과 결혼과 같은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앞둔 이들에게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요즘 현실과 다른 결이지만 근본적인 고민은 비슷할 것 같다.  고민에 대한 정답이 있기보다  인생을 바라보는데 넓고 다양한 시야를 경험할 수는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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