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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Jan 13. 2019

박사 논문 엎고, 여전히 스타일링!

에필로그. 당신이 궁금한 것들

01 ‘후회하지 않는가?’


2018년 5월. 브런치 작가로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관계자 분이 내게 농담 삼아 툭 던지신 질문.


작가님, 지금도 남몰래 박사논문 쓰고 계신다는?


깔깔 웃어넘겼지만 이런 질문은 많은 분들께 여전히 유효하다.


“근데... 박사논문 포기하신 거 후회하지 않으세요?”

“어떻게 그걸 포기하실 수 있었을까. 전 그거 너무 아까워서요.”

“너무 궁금해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꽤 오랫동안 사회로부터 성공과 성취를 강요받아온 대부분의 우리는 이런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 나 역시 그랬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가 모든 여자들이 선망한다는 그 자리, ‘런웨이’ 편집장 비서직을 버린다는 결말이 유치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논문 프로포절 자리에서 사실 난 이례적으로 칭찬을 들었다. 동기들과 후배들이 이미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동안에도 연구실을 전전하던 화석 같은 존재였던 내가, 마침내 그런 칭찬을 듣다니. 그런데 앤디가 씩 웃으며 스마트폰을 분수대에 던져 버린 것처럼, 나도 내 논문을 그렇게 버렸다.


안정적인 삶에서 멀어져 버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정체성을 찾은 내겐 다른 종류의 행복이 있다. 난 더 많은 분들이 그걸 경험하면 좋겠다.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무모하게 일을 시작했다. 자기를 몰라 무엇을 입어야 행복한지 모르는 분들을 도와주는 일. 유치해도 괜찮다.


 내가 좋다는데 ‘뭐 어때?’


스토리를 쓰면서 더 알게 되었다.  자신의 ‘별칭’을 마침내 찾은 순간, ‘난 그 옷을 입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 결국 그 얼굴에서 빛이 나는 순간을 목격하는 게 나는 정말 좋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그 순간이 오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이 온다. 이 일은 고되다. 종종 그만두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 희열이 나를 붙잡는다.


논문은 뭐 내가 안 써도 매년 수천 편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 일은 내가 안 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평범한 건 죽어도 싫은 내게 이 일은 딱이다.


참, 내가 논문은 버렸지만 탐구심까지 버린 건 아니라는 거! ‘탐구자’ 정체성은 ‘개인주의자’ 정체성만큼이나 내게 중요하다. ‘패션 힐링 컨설팅’은 단지 옷을 권해주는 일이 아니다. 한 인간을 탐구하고, 종합하여, 창작물을 내는 고차원적인 활동이니까.


이 일에는 오랫동안 내가 사회과학자로 훈련받은 과정이 오롯이 녹아 있다. 인터뷰를 하고 결론을 내리는 건 질적 연구법을 참고한 것이며, 컨설팅 스토리 역시 질적 연구자의 글쓰기와 유사한 면이 있다. 나는 한 분 한 분 탐구하는 마음으로 대한다.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모두 신기하다.


‘왜 그때 화가 날까? 왜 그때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왜 그 영화를 좋아할까?’


나는 만나는 분들마다 따뜻한 호기심의 시선으로 대하려 한다. 탐구자 정체성이 여전히 중요한 내게 인물 탐구는 참 매력적이다. 그래서 진심 후회하지 않는다.

 




02 ‘가장 자주 오는 사람들은 어느 유형인가?’


대부분이 에니어그램 4번 ‘개인주의자’이다. ‘개인주의자’의 지상 최대 목표는 1차적으로 내가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그 후에야 세상이 자신으로 인해 아름다워 지기를 원한다. 예술가 중에 ‘개인주의자’가 많다. 자기 삶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은 그들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다. 그러나 일단 나부터 챙겨야 하기에 옷으로 그걸 경험하러 오신다.


또 그들은 ‘나 자신이고 싶다’는 욕망이 유독 강하다. 자기 자신다운 옷을 아름답게 입을 수 있도록 돕는 이 컨설팅은 이분들에겐 필수재인 셈이다.


“아무도 못하는 대체 불가능한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내가 ‘개인주의자’ 분들께 종종 듣는 말이다. 이분들의 존재감은 ‘나는 특별하다’에서 온다. 그러니 이 일을 높이 평가하고 나를 만나러 오시는 거다. 또 아무래도 내가 ‘개인주의자’다 보니, 내 글에 깊이 공감하신 분들이 찾아오신다. 첫 상담 도중 홀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뭐야 또 4번이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성격 유형일 뿐. 사람마다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욕망이 각기 다르니, 남다른 디테일을 위해서 초 집중은 필수.


참, ‘개인주의자’ 다음으로 많이 오시는 분들은 1번 ‘이상주의자’이다. 이 분들은 자신의 옷장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싶어서 오신다. 아까워서 못 버리는 옷이 너무 많아 옷장이 구질구질한 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 분들이다. 심플하고 완벽한 옷장에 대한 욕망으로 찾아오시지만, 그분들이 얻고 가시는 더 큰 건 스트레스 관리법이다.





03 ‘중도 포기자는 없나?’


물론 있다. 주로 정체성 탐구가 두려운 경우에 그렇다. 정체성 탐구는 그 자체로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이 단계를 괜히 ‘용감한 성찰자’라 부르는 게 아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용기가 없어 평생 못하고 죽는 경우도 많으니까.


H님은 중도 포기자는 아니었지만, 컨설팅 이후 내 글쓰기 클래스를 신청하시며, 자신의 묵은 과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하신 분이다. 글쓰기가 진행되며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게 그녀에게 고통이었다.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게 품위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지지부진. 밑바닥 끝까지 가야 자신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데. 그건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까지 갈 용기 있는 나 자신만 그걸 할 수 있다.


또 다른 중도 포기 사유는 기존의 쇼핑 경험 때문이다. 정체성 찾기 과정까지를 너무 즐거워하셨던 I님은 갑자기 쇼핑 일정을 취소하셨다. 뭔가 섭섭하신 게 있었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녀는 쇼핑에서 아무것도 못 사고 올 때가 많았다며 또 그럴까 봐 두려웠던 거다. 사실 쇼핑 중 아무것도 안 사고 피팅룸에서 착용 샷만 찍어 보는 것도 훌륭한 경험이다. 사진을 천천히 뜯어보며 시간이 흘러도 마음이 동하는 것만 사는 사람이 바로 ‘명민한 컬렉터’이다.


이 컨설팅 과정은 나와 당사자 모두에게 쉽지 않다. 그러나 끝까지 가신 분들께는 남들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 난 그 길에 동행하는 걸 즐긴다.





04 ‘정체성 찾기 이후의 삶이 시시해지는 건 아닌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안다는 건 평생 불가능하니까. 별칭을 찾았다 해도 그건 빙산의 일각을 본 것일 뿐.


20대 후반이었던 ‘푸른 밤 스테파네트’ 님은 컨설팅 이후 2년 간 어떤 변화를 느꼈다. 2년 전엔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돋아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그런 가시가 사라졌다. 30대가 된 그녀는 가시 때문에 드러나지 않던 자신의 뭔가를 더 찾고 싶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날라리 귀족’님은 아직도 자신이 ‘날라리’인지 궁금하다. 힐링이 되는 옷을 충분히 입고 나니, 자신의 성취자 날개를 표현할 옷을 입고 싶더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신의 선택이나 감정을 돌아보며 그녀는 오늘도 자기답게 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나 역시 마찬가지. 유튜브를 운영하며 상처 받을 때가 있는데, 내가 어떤 포인트에 반응하는지 돌아본다. 난 아직도 나를 모르더라. 새록새록 등장하는 새로운 나. 신기하고 놀랍다.





05 ‘정체성은 옷 입기에서 어떤 의미를 갖나?’


인문학자인 ‘우아한 4차원’ 님이 본업을 숨기지 못하고 별칭 찾기의 의미를 논하신 적이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외부에서 정의를 내리고 이름을 붙이면 하나의 폭력이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자신에게 별칭을 붙이는 것은 그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 될 수 있겠어요. 스스로 붙인 별칭은 자기를 인정하면서 풀어주고, 옷장에서 그리고 삶의 다른 중요한 영역에서 본질과 거리가 먼 군더더기들을 쳐낼 수 있는 장치가 되기도 할 거니까요.”


그녀는 내가 의도한 바를 정확히 이해하셨다. 미니멀리즘이 트렌드였는데, 내가 추구하는 건 심플 라이프이다. 건축가 장 자크 브릴로는 디자인에서의 미학을 논하며 심플함을 정의한 적이 있다.

 

Originality + Simplicity = Elegance 


본질성과 심플함 양자 모두가 충족될 때 아름다움이 발생한다. 이때 심플함이란 디자인의 대상이 지니는 본질이 아닌 군더더기를 제거한 상태를 말한다. 반면 미니멀리즘은 본질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본질까지 제거할 위험이 있다. 옷장을 무조건 비우는 게 능사가 아니라, 내가 좋아할 옷이 뭔지 분명히 한 후 나머지를 비우는 것. 나는 디자인 대신 삶을 떠올리며 Elegance의 자리에 Happiness를 넣어봤다.


 Originality + Simplicity = Happiness


행복한 삶의 주인은 자신을 알고, 자기 옷이 아닌 건 배제할 줄 아는 ‘건강한 의생활’을 누린다. 옷장을 냉장고로 바꿔 생각하면 한결 이해가 쉽다. 그저 여유로운 냉장고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채워진 여유로운 냉장고.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06 ‘그나저나 남 앞에서 이런 얘기 하는 거 이상한 거 아닌가?’


이상한 거 맞다. 상담에서는 라포(rapport) 형성이 중요하다. 내 경우 내 에세이가 어떤 라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나는 <굿바이, 샤넬백!> <오늘 뭐 입지?>에서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 상처와 치유 과정을 다 공개했다. 그러다 보니, 내 글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도 솔직하게 내 얘기를 하는 편인데, 가끔 상대방이 당황하는 걸 보며 뒤늦게 후회한다.


‘아, 맞다. 이런 얘기 하는 거 이상한 거지?’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들은 내 독자들이다. 내 솔직한 얘기에 마음이 움직여서 오신 경우, 비교적 편하게 본인 얘길 털어놓으신다. 가끔 어색해하시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목욕탕론'을 펼친다. 내가 먼저 벗고 목욕탕에 들어와 있으니 부끄러워 말고 들어오시라고.


늘 ‘왜’를 여쭤보기에 답할 때 머뭇거리시기도 하고, 또 자신의 그런 얘길 누구 앞에서 그렇게 길게 비판이나 평가, 잔소리 없이 풀어본 적이 없기에 어색해하신다. 어찌 보면 슬픈 현실이다. 누군가가 자기 얘기가 끝날 때까지 뚫어져라 쳐다보며 기다리고 들어주는 경험을 우리가 못한다는 게.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어렵고 어색하더라도 이미 벌거벗은 몸으로 자기 얘길 공개해버린 선배가 여기 있기에, 그런 얘길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지겨워하지 않고 들어줄 청자가 여기 있기에, 정체성을 찾고 그것을 옷으로 표현하여 ‘뭐 어때?’ 하는 즐거움을 누리러 오시라고.


자칭 ‘패션힐러’인 누군가가 오늘도 기다린다고.


박사논문 엎고, 여전히 스타일링 도와드려요.









사야할 옷과 사지 말아야할 옷, 살 때 편한 옷보다 입을 때 편한 옷이 뭔지.

옷 살 때 쇼핑몰 사장님이 안 알려주는 쇼핑 꿀팁. 

콕 찝어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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