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란다의 춤
케냐 작가 피터 키마니(Peter Kimani)의 소설 <Dance of the Jakaranda> 중에서 너무나 공유하고 싶은 대목이 있어서 벼르고 있다가 약간 번역을 해봤습니다. 여기서 자카란다는 호텔 이름입니다만, 영국인들이 케냐에 가져와서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고 알려진 자카란다(Jacaranda)에서 C를 K로 바꿔서 쓰고 있습니다. 보랏빛의 자카란다 꽃잎은 저에게도 추억을 연상하는 약간 연한 보랏빛을 가지고 있는데 그 꽃잎들이 다 떨어지는 계절이 오면 나이로비에는 긴 우기가 찾아오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의 내용은 약간 복잡한데요, 3대에 걸친 케냐사람들과 케냐에 끌려온 인도의 노동자들 그리고 영국인들의 얽히고 얽힌 가족사와 사랑 그리고 욕망이 역사적인 사건들과 함께 펼쳐집니다. 사실 좀 더 긴 대하소설을 써야 했던 소재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권으로 끝나기에는 다 풀리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는 느낌도 들고 또 줄거리가 좀 건너뛰는 듯한 인상도 있습니다. 혹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이야기를 좀 더 세밀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소설에서 더 다루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던 부분 하나가 우정이었습니다. 케냐에 철도 노동자로 끌려온 인도인 할아버지의 밑에서 자란 라잔(Rajan)과 이웃에 살던 아프리카인(당시의 인종차별적인 구분) 에라(Era)가 아주 절친한 사이로 묘사되는데 연인들의 사연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이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약간 축약되는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게 가장 인상적인 기억을 남긴 장면은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번역:
15년 전, 에라(Era)와 라잔(Rajan)이 처음 마주친 장소는 아프리카인과 인도인의 거주지역을 갈라놓는 그 산울타리였습니다. 에라는 아홉 살이었고, 라잔은 여섯 살이었죠. 그날 라잔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그 작은 머리통을 자신의 집과 에라의 집을 갈라놓는 경계선인 울타리 너머로 들이밀었습니다.
(중략)
“거기 형, 혹시 공 하나 못 봤어?”
마치 피리소리 같은 다정한 목소리로 라잔이 물었습니다.
“뭐라고?”
에라가 다시 물었습니다.
“우리 크리켓 공 못 봤냐고?”
“어디에 있는데?”
“그게 지금 막 이 밑으로 굴러갔어.”
그 소년이 에라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혹시 못 봤어?”
(중략)
에라가 공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엄마에게 들켰던 날, 아이의 수중에는 열여덟 개나 되는 공이 있었습니다. 테니스공, 크리켓 공, 축구공 등등 종류도 다양했죠. 에라는 “나는 이 집에서 도둑 따위를 키울 수 없다!”라고 소리 지르는 엄마에게 한참을 얻어맞았습니다.
“당장 다 돌려주지 않으면……”
비록 엄마가 야단치는 말을 끝내지는 않았지만, 에라는 대충 무슨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죠. 에라는 네 명의 아이들 중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고, 또 장남이었기에 엄마한테 에라는 누구보다도 본보기가 되도록 키워야 하는 자식이었습니다. 그때는 식민지 시대였고, 아빠는 수천 명의 다른 케냐 사람들과 함께 감옥에 갇혀있었거든요.
“우리가 비록 가난하지만, 도둑이 될 수는 없다.”
엄마가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에라는 단숨에 걸어나가서 울타리 너머로 모든 공들을 던져 보냈습니다. 아이의 얼굴에는 굵은 눈물 방울이 하염없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죠. 이런저런 공들이 돌아오는 소리를 듣은 라잔이 밖으로 뛰어나갔을 때,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진흙집으로 들어가는 에라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웃의 형이 신발을 신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죠. 라잔은 단숨에 집으로 돌아가서 지금은 작아서 신지 못하는 신발 한 켤레를 들고 울타리를 향해 뛰어갔습니다.
“형! 형! 혀어어어엉!”
아이의 목소리가 한참 울려 퍼졌습니다.
그날 라잔이 몇 번이나 울타리 주변을 맴도는 동안 에라는 멀리 떨어져서 가까이 가지 않았습니다. 라잔은 에라에게 꼭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사촌들과 함께 몇 달을 찾아서 헤맨 그 공들을 에라가 모두 찾아줬으니까요. 그래서 그날 저녁 선물을 꼭 전해주기로 마음먹었죠.
에라의 엄마가 저녁을 지으려고 불을 피우려던 그때, 라잔이 던진 신발이 지붕 위에 퉁 하고 떨어졌습니다. (중략)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에라의 엄마는 정말 살며시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살폈는데, 밖에 있는 것이라고는 까만색의 조그마한 장화 두 짝뿐이었습니다. 곳곳이 긁혀서 갈색으로 색이 바랜 장화였습니다.
“형! 형! 나 그 신발 형한테 주는 거야!”
(중략)
장화를 본 에라는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단 한 번도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 장화 한 켤레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죠. 하지만 순간 엄마의 표정을 살핀 에라는 그 마음을 한껏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략)
다음 날, 에라는 엄마가 일하러 나갈 때까지 조심스럽게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나가자마자 신이 나서 밖으로 달려 나가 목욕할 때 쓰는 양철통을 집어 들어 물탱크 밑에 갖다 대고 조심스럽게 물을 틀었습니다. 부드러운 물줄기가 물통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탱크 안에 물 다 쓰면 큰일 난다!”
여동생인 쎄리가 뒤에서 걱정하면서 소리쳤습니다.
에라는 물을 잠그고 여기저기 풀이 듬성듬성 솟은 붉은 흙바닥에 앉아서 발을 깨끗이 씻고 닦았습니다. 장화를 신어볼 설렘에 숨이 멎을 것 같았죠. 아이는 한쪽 발을 움켜쥐고 장화 속에 넣어보았는데 장화가 너무 작아서 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엌으로 뛰어가 숟가락을 들고 이리저리 쑤셔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죠.
(중략)
속이 상한 에라는 장화를 벗어서 집안 어디엔가 숨겨버렸습니다. 혹시 엄마의 마음이 누그러지면 어린 동생들 중에 하나가 신을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났을 때, 아이는 그 장화를 어디에 숨겼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라잔의 귀한 선물은 안타깝게도 그렇게 사라져 버린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