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한수 Sep 27. 2020

For your next step forward

금요일 늦은 오후, 퇴근까지 겨우 1시간이 남았는데 일과 갑질은 마치 월요일 아침인 듯 쏟아지고 있었다. 1월 29일 설 연휴 마지막 날 회사 컴퓨터도 잠금 상태인데, 미션 임파서블을 요구하는 비상전화를 받으러 노트북을 들고 출근한 이후 한 번도 "정상"이라는 느낌으로 일을 한 날이 없었다. 돌아보면 나중에는 그보다 더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는데(그러니까 앞으로도...), 매번 간이 작은 나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무게는 지나치게 무거웠고, 그 무게에 짓눌리면서 잠을 설친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렇게 9개월을 달려오는 동안 정말 동료들이 없었으면 진작에 미세먼지가 되어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떨 때는 네 명, 또 어떨 때는 다섯 명 정도였던 우리 담당자들은 웃픈 마음으로 "우리는 어벤저스"라고 부르면서 어처구니없는 시간을 견디기도 했던 것 같다. 고작 이 숫자의 인원으로 이런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초현실적인 상황이다. 그렇지만 일이 잘못되어도 누구를 비난한 적이 없었고(물론 똘똘 뭉쳐 갑에 대한 흉을 보기는 했지만), 힘든 사람의 업무를 조금이라도 넘겨받으려고 애썼고, 서로 우문을 해도 현답을 주고받으면서 팀워크이라는 것을 구성해나갔던 것 같다. 아, 이런 것이 같이 일하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나 할까.


오후 5시 5분 정도였을까. 나는 사무실에 있었고, 그이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업무 중에는 주로 사내 메신저를 사용하는데, 무슨 급한 일인가 싶어서 전화를 받았다.


"바쁘세요?"

"아니, 괜찮아요."


뭐가 특별한 용건이라는 직감을 하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이는 00000에 붙었고, 10월 2주 차부터 출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참, 마음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어찼는데, 하반기 들어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떨어졌던 나는 내가 먼저 나가면 나갔지 그이가 먼저 나가는 것이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한 3초 상간에, 그이가 맡은 계약 건들과 입찰 건들을 떠올렸고, 그게 고스란히 내게 넘어오겠구나 싶은 생각은 했지만, 나는 그 3초가 지나기 전에 외쳤다.


"너무 잘됐다!"


나보다 어리지만 여러가지 경험도 많고, 전문지식과 학위, 공인된 면허까지 있는 이 전도유망한 젊은이는 9개월 내내 나를, 아니 우리를 가르치면서 어벤저스의 브레인으로 지냈다. 정말 의학적, 화학적 지식이 하나도 없는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지금의 비상상황을 1년 내내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지식을 습득하고 또 과외해줄 수 있는 그이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정말 감사하고 든든한 동료였다.


사실 나는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저 조금 빨리 왔을 뿐). 함께 야근을 할 때나, 검수를 하러 다닐 때, 하고 싶었던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내게 털어놓는 그이의 눈과 얼굴은 항상 총기가 가득했다. 그래서 나는 서운한 마음을 접어두고, 마음껏 축하를 퍼부었고 붙잡는 것에 대한 말은 1그램도 더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화기 건너편에 있는 젊은이는 갑자기 눈물이 베인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을 생각하면 제가..."

(두 분이란 어벤저스에서 가장 업무가 많은 나와 동료를 말한다)


목소리는 이제 눈물이 베이기에 이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거리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나도 덩달아 목이 메고 눈물이 차올랐다. 눈물을 피하고자 다시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아휴, 나는 지금 사무실에 있는데, 00님이 울면 나는 여기서 울어야 한다구...물론 떠난다니까 100% 서운하기는 한데, 그런데 또 100% 기쁜 마음으로 보내는 거니까 거기서 맘껏 꿈을 펼치세요. 괜찮아~"


너무 애썼나 싶기도 하지만, 그건 나의 진심이고 또 최선이었다. 더 나은 토양에 뿌리를 내리러 가는 사람에게 아쉬운 말을 얹어주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나 역시 면접을 보러 가면서 (떨어지긴 했지만), 이 비상사태 속에 동료들을 “배신”하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있었고, 정말 떠나게 된다면 그들에게 상처와 부담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그이도 아마 비슷한 심정에서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내게 전화를 했고, 눈물 베인 목소리로 이렇게 마음을 전하는게 아니겠는가.


사실 한 번 떨어졌는데, 바로 다시 써서 붙었다는 그이에게, 나는 사실 여러 군데 썼고 연차 쓰고 면접도 봤는데 다 떨어졌다고 고백하면서 함께 빵 터지는 웃음으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나 보다 조금은 먼저 알고 계셨다는 보스는 이런 브레인을 잃는 것에 대한 충격이 작지는 않다고 상심한 표정을 짓고 계셨고, 어떻게 앞으로 일을 더 떠안을 나는 별로 충격도 안 받는 것 같다고 의외인 듯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뭔가 마음이 가벼운데 또 무거워지는 저녁이었다. 그이는 잘 해낼 것이다. 남은 우리도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라고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대평가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