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가르쳤던 수업을 들은 케냐 학생에게서 장문의 메일이 왔다. 학기가 끝나고는 처음 받은 메일이라 자기를 기억하냐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메일이었는데, 80명 중에 유일한 케냐학생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반가운 선물이었다.
C는 이제 한국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데, 지난 학기에 이어서 비대면으로 수업을 듣고 생활하는 것에 대한 서글픔이 좀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수업이 있던 그때 그 학기가 정말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던 때인가 싶다며 요즘 말로 '추억 돋는' 이야기들을 메일에 담아 보냈다. 개강하던 날 교실에서 스와힐리로 자신을 불러준 선생님을 한국에서 만난 것은 잊을 수 없었던 경험이며, 교실 속으로 케냐를 초대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했다는데- 사실 나야말로 출석부에 빼곡한 80명의 이름 중에 케냐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이 남달랐고, 내가 한국에서 늘어놓는 케냐 이야기에 케냐 출신의 젊은이가 긍정적으로 반응해준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C의 메일을 읽고 보니 나도 정말 그때는 몰랐구나- 싶은 기분에 휩싸여 이런저런 감상이 들었다.
창도 하나 없는 교실에서 23개국에서 온 80명의 학생들이 고정된 좌석에 빼곡히 앉아서 옆자리 친구들과 토론하고 떠들 수 있었던 그런 수업을 언제 다시 가르칠 기회가 있을까.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아무 걱정 없이 만나서 친구가 되고 캠퍼스를 누비는 시간이 돌아올 수 있을까. 쉬는시간이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학생들은 나란히 앉아 서로 군것질하고 수다를 떠는 그런 교실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조그맣고 허름한 떡볶이집에서 서로 수다를 떨며 술 한잔을 하고, 관객들이 몰린 화제의 영화를 보러 가서 눈물을 흘리거나 감동을 하고,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얼싸않고 웃고, 어디든 맛집에서 같이 어울리면서 모임을 하던 그런 일상적인 날이 다시 돌아올까나.
새삼 아련한 일상들이다.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평범한데, 또 가장 소중한 순간들을 잠식하는 이 바이러스가 없던 그 시절이 바로 얼마 전인데- 이런 아련함을 마음에 채우면서 그때를 떠올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