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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Mar 14. 2021

이제 이를 악물지는 않는다

그래도 힘든 것은 힘들지만

출근을 하느니 사표가 쓰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이 입에서 계속해서 나올 지경인데, 지금 당면한 현실은 월요일이라는 내일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중이다. 뭐가 그렇게 힘든지 딱히 구체적으로 말하기도 어려운데, 그래도 제일 어렵다 싶은 점을 떠올리자면, 사무실에 나가면 울려댈 전화기와 용량 부족이라는 메시지가 뜨는 메일함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잠이 들기 전까지, 그리고 겨우 잠이 들어서 새벽에 깨면, 월요일부터 걸려온 전화에 응대할 방법과 이메일 답장 내용을 떠올리고 있다. 그러니 잠을 제대로  자는 것은 당연하고, 이불속에서는 심장박동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중에도 가슴이 벌렁대는 정도이고, 이게 벌써  개월  지속되는 상황이니, 인간적으로 정말 자기 자신의 "웰빙"만을 생각한다면 사표가 답이다.


예전에 미국에서도 이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전공을 바꾼 직후였고, 정말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대학원생의 입장에서 일종의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지도교수님과의 관계가 '이 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수준의 관계였다. 물론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렇게 공부를 못하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냐"는 조언(?)은 지금도 마음속에 따끔하게 남아 있다. 하여튼 그때 그분은 이메일을 보내도, 꼭 해리포터 시리즈의 호울러(부모가 꾸짖는 편지를 보냈을 때 실제로 편지가 소리를 지르는 마법) 같은 능력이 있으셨던 것인지 메일에서 고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교수님의 메일을 열기 전에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내 랩탑을 넘겨서 먼저 열어보게 하고, 내가 어느 수준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열어봐야 하는지를 미리 알려달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2년 여의 시간이 흐르고 늘 이를 악물고 잤던 덕분에 어금니에 금이 갔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많고 많은 머리카락을 잃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나의 웰빙은 뒷전에 두고 어떻게든 학위를 끝내보겠다는 심정으로 버텼고, 또 한 편으로는 내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교수님이 이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어리석은 위안(?)을 찾기도 했다. 물론 다시 겪으라면 절대 반복할 자신이 없는 시절이다. 과거라서 지금은 웃음도 나오고, 또 과거라서 이제는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는 상처다.


다시 오늘로 돌아와서-


유학생이자 대학원생이던 시절의 상황을 굳이 지금 회사원으로서의 상황에 결부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엄마 때문이다. 얼마 전 집에 가서 한참을 드러누워 있는데, 엄마는 "네 얼굴이 00000(유학 중이던 도시 이름)에 있을 때 얼굴이 되는 것 같다"라고 자식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나를 관찰한 사람의 말을 듣고서야 스스로의 상황을 세게 자각하는 순간이 있는데, 엄마의 말을 들었던 그 순간도 그랬던 것 같다. 어떻게든 일이 밀리지는 않았고, 또 나의 실책이나 과오 때문에 일이 잘못되는 것도 아니었고, 사무실에 나가서 어린 동료들에게는 애써 밝은 표정을 발산했으며, 부서장에게는 예의를 갖춰서 적절하게 보고를 하는 나이기에 버티고 있다고 믿고는 있었는데, 결국 엄마 앞에서 내 표정은 문드러져가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이것도 벌써 몇 달 전의 일이고 그때와 비교해서 지금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니, 지금 내 상태는 하여간에 좋은 상태는 아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건 이제는 이를 악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심신의 괴로움도 심각했지만, 생이빨에 금이 갈 정도로 악물었던 덕분에 치과에서 치러야 했던 비용도 심각했기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를 악무는 버릇은 고친 덕분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를 악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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