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에서 나왔을 땐 이미 해가 질 무렵이었다. 흐린 탓인지 하늘도 일찍 어두워져 있다.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 안에도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골목 두 개를 지났다. 다음 골목에 있는 3층짜리 다세대 주택. 대여섯 세대쯤 살고 있는 그 건물 안에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있다. 집에서 몇 걸음 앞에 놓인 가로등에서 보니 건물 1층 현관 옆 벽에 남녀가 나란히 어깨를 기대고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나는 그들의 그림자를 볼 수 있지만 그들을 나를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 안에서 전진을 멈추고 그들이 사라지길 기다린다. 왜 마주치고 싶지 않은지, 지나쳐 들어간다면 10초도 걸리지 않는데도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현관 앞에 누군가 있을 땐 늘 그래왔던 것 같다.
벌써 40분쯤 흘렀다. 함께 15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기라도 탔던 걸까? 아니면 어느 한쪽이 긴 여행이라도 끝내고 오랜만에 돌아온 걸까? 꾹 참아왔던 흡연 욕구가 한방에 터질만한 일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 만큼 둘은 참 오래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과 둘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낀 담배 중 어느 쪽 때문일까? 얼른 들어가길 바라며 둘의 모습을 보는 동안 10년째 유지 중인 금연을 끝내고 담배를 입에 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몇 개인지도 모를 줄담배를 피우던 두 사람이 드디어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웠던 계단의 불빛이 차례로 켜졌다 꺼졌다. 그제야 나도 발을 옮겼다. 현관을 지날 때 무심결에 그들이 머물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버려진 꽁초는 없었다. 그 순간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고 적힌 공중 화장실 스티커가 떠올랐다. 그런 우스운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컴컴한 방.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좀처럼 불을 켜 놓는 일은 없다. 얼마 전에는 멀쩡한 블라인드를 떼어 내고 커튼을 새로 달기도 했다. 새까만 암막 커튼이었다. 얇은 블라인드 틈으로 꾸역꾸역 파고들던 희미한 달빛조차 이제는 새어들 틈이 없다.
입구에서 선채로 신발을 벗고 한 뼘짜리 좁은 거실 바닥에 다시 쌓이기 시작한 양말, 널브러진 티셔츠, 작은 방에는 더 이상 꽂아 놓을 공간이 없어 중고로 몽땅 팔아버리겠다고 대강 책을 담아 쌓아 놓고 한 달쯤 방치된 박스 사이를 유유히 지나 방으로 들어왔다. 암적응에 걸리는 시간조차 사라졌나 싶을 만큼, 암흑 속에서도 방의 구조는 이미 익숙했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어제와 같은 가방을 던져두고 몸의 방향은 그대로 책상 쪽으로 유지한 채 뒷걸음으로 물러나 냉장고를 연다. 문틈으로 삐져나온 희미한 냉장고 불빛 안으로 하루 종일 심해에 가라앉아 있던 작은 방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차곡차곡 놓인 생수 페트병 속에서 맨 앞 줄, 어제 몇 모금 마시고 넣어둔 생수병을 꺼내 입을 대고 다시 몇 모금 마신다. 역할이 끝난 생수병을 같은 자리에 넣어 두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작은 방이 다시 심해로 가라앉았다.
여전한 어둠 속에서 책상 앞에 놓인 의자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의미 없이 힘을 줬다가 뺐다가 해본다. 흔들의자도 아닌 흔한 사무용 플라스틱 의자는 그럴 때마다 부드럽게 흔들리기는커녕 넘어갈 듯 휘청거리며 위태로운 끼익 소리를 낸다. 발로 바닥을 굴렀다. 긴 시간을 굴러온 바퀴 4개가 삐그덕거리며 뒤로 힘겹게 미끄러진다. 의자 등받이가 '쿵'하고 어딘가 부딪혀 멈춰 선 자리에서 앉은 채로 몸을 오른쪽으로 굴린다. 한참 갈지 않은 눅눅한 베갯잇 위로 석고본이라도 떠놓은 것 마냥 스르륵 얼굴이 파묻힌다. 매캐한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그제야 빨래할 때가 됐구나 생각한다. 매캐한 그 이불이 싫지 않다. 눅눅한 베개가 여전히 포근하다. 그러다 문득 발 뒤꿈치가 간지러운 느낌이 든다.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다. 며칠 전 새벽이었다. 3시가 넘었던가, 갈증을 느껴 눈을 떴는데 얼굴 바로 위 천장에 멈춰 있던 바퀴벌레 한 마리를 목격했다. 아직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생각했다. '설마 그놈이 지금 내 발 뒤꿈치를 기어간 건 아니겠지?' 간지러운 증상은 금세 사라졌다. '그래, 아닐 거야.' 사실 확인이 두려운 나는 멋대로 그렇게 결론짓기로 했다.
축 늘어뜨린 팔 아래를 한 두 번 더듬어 동그란 물체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질 한 번으로 늘 같은 자리에 놓인 블루투스 스피커의 전원을 눌러 켜는 일은 이제는 식은 죽 먹기다. ‘딩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휴대폰과 스피커가 연결되는 소리. 반가운 소리.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음악 앱의 재생목록을 뒤적여 매일 첫 번째로 듣는 노래를 찾아간다.
재생 버튼을 누른다. 이윽고, 노래가 시작된다. 김광석의 ‘나른한 오후’. 잎이 모두 떨어져 버린 나목처럼 앙상한 목소리가 노래한다. 날카롭지 못하고 어딘지 뭉툭한 그 목소리가 연신 가슴에 닿아 부딪힌다.
사람들은 그저 무감히 스쳐가고 또 다가오고
혼자 걷는 이 길이 반갑게 느껴질 무렵
혼자라는 이유로 불안해하는 난
어디 알 만한 사람 없을까 하고
만난 지 십 분도 안 돼 벌써 싫증을 느끼고
사람으로 외롭고 사람으로 피곤해하는 난
졸리운 오후, 나른한 오후
동그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가사를 따라 웅얼거리다 문득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하루 종일 불을 켜지 않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나의 삶에서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고 불편한 오직 한 가지. 방금 전까지 내가 앉아 있던 의자에 두 발을 올리고 턱을 괴고 앉아 시시껄렁한 농담에도 반짝이는 윤슬처럼 눈부신 미소를 짓고서 나를 내려다보던 너의 부재.
노래가 끝났다. 재빨리 손을 움직여 다음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얼른 다시 같은 노래의 재생 버튼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