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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Oct 23. 2021

2주 간의 격리

성호의 글





‘회사 안 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코로나라도 걸렸나?’


혹시나 제목을 읽고 이렇게 생각하셨다면 실망(?) 시켜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민경이와 나는 잘 돌아다니지 않아 코로나에 걸려 자가 격리를 할 확률이 매우 낮은 사람들이다. 오히려 우리의 ‘격리’는 자발적이었다. 속세와 완전히 단절된 곳에서 진행되는 명상 코스에 참가한 것이다. 무려 10일짜리 코스라서 직장에 다닐 땐 차마 엄두를 못 내다가 일을 그만두고 나서야 신청하게 됐다. 아니 근데, 그렇게 힘든 곳인 줄은 몰랐지.



코스 수련생들에게는 지켜야 할 규율이 있었다. 모든 전자기기 사용, 읽기, 쓰기, 수련생 간의 대화, 정오 이후의 식사, 별도의 개인 간식 지참 등이 모두 허용되지 않았다. 듣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무시무시한 규율이었다.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관리자분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나 싶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규율은 바로 철저한 남녀 분리. 산책 코스도, 숙소도, 식당도, 단체 명상 홀의 출입구도 모두 남녀 구분이 따로 되어 있어서 코스 기간 동안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민경이와 나는 등록을 마친 이후에 코스가 시작되기 전까지 ‘최후의 수다’를 떨었다. 그 뒤에 우린 10일 내내 떨어져 있어야 했다. 다행히 단체 명상 시간 때마다 저 멀리 여성분들 자리에서 민경이를 곁눈질로 보며 생사(?)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밤 9시 30분에 잠에 들기까지의 일과 중에 식사와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명상의 연속이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명상만 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다리는 미칠 듯이 저려오고 허리와 어깨가 뻐근했다. 몸으로 하는 게 없으니 머리가 바빠졌다. 성격이 무던한 편이라 잡생각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으니 온갖 잡념이 쉬지 않고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리가 저리네.’, ‘힘들다.’, ‘대체 언제 끝나지?’와 같은 불평불만부터 시작해서 아주 먼 과거에 내가 저지른 후회되는 행동들까지. 그러다 ‘인간이란 존재는 뭘까, 대체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와 같은 심오한 생각까지. 난리도 아니었다. 그저 호흡과 몸의 감각들을 관찰하라는데, 정작 나는 머릿속 생각들에 자꾸만 정신이 팔려 괴로워했다. 겨우 관찰하기로 되돌아갔다가도 금세 다시 정신이 딴 데 팔려 괴로워하기를 반복했다.



개인별로 배정되는 개인 명상 셀(Cell), aka 독방



명상을 배우는 이유는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을 갈고닦기 위함이라고 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면 사물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명상을 할수록 뚜렷해진 점은 감정과 같은 반응의 원인이 외부의 자극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해석하는 내 방식에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었다.



남들이 하는 대로 살지 않다 보면 때로는 괜히 스스로가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별 뜻 없이 한 말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누군가가 내 직업을 물을 때, 결혼은 언제 하냐고 물을 때. 악의 없는 질문에도 나는 종종 상대의 의도를 멋대로 판단하고 왜곡하곤 한다.



명상은 그런 상황에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되어준다. 마음속에서 생각과 감정이 끝없이 피어올랐다가 사그라드는 것을 가만히 관찰하면, 그것들이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낸 주관적 시나리오에 불과하다는 것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을 발견하면 늘 하던 습관처럼 반응하는 대신 의식적으로 나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명상은 세상을 멋대로 해석하던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끝이 보이지 않던 코스였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은 왔다. 민경이와 나는 코스를 통해 모든 것에는 결국 끝이 있음을 몸소 배우고 왔다. 우리만의 기준대로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힘든 순간과 마주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간다는 이 교훈을 잊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코스는 되게 유명했다. 처음 온 분들보다 두 번 이상 오신 분들이 더 많았을 정도다. 동일한 내용의 코스가 전 세계적으로 200여 곳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도 젊었을 적에 이 코스에서 명상을 배웠다고 하니 이제 민경이와 나는 유발 하라리와 ‘명상 학교 동문’인 셈이다.


코스를 마친 후에도 아침저녁으로 1시간씩 하루에  2시간 명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느냐고 물으신다면, 적어도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고도 ‘평정심 유지할  있게 됐다고 말씀드리겠다. (좋은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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