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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Sep 12. 2024

개방국(?)의 설움

싹쑤있는 활꾼이 될래요

예의범절에 대한 인식은 개인의 불편함에서 출발한다


어느 권위자의 말을 빌린 것이 아닌, 요즘 필자가 붙들고 있는 화두이다.

인간은 개인의 불쾌함을 합리화할 수단으로 '예의', '상식', '도덕'을 운운하는 것 같다. 그것의 결정적인 증거는 그런 명분을 내세워 타인에게 던지는 말에 담긴 감정이 사랑보다는 분노나 짜증에 가까워 보인다는 데 있다.


상대가 올바른 길로 가길 바라는 연민과 사랑의 마음이 아닌, 상대를 찍어 누르고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강조하기 위함에 급급한 말과 태도. 사실 그것은 예의범절의 본질이 아니다. 그럴듯한 껍데기만 두르고 있을 뿐. 자신의 불쾌함을 고상한 척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떼쓰고 울어재끼는 어린아이가 더 솔직하고 한편으론 성숙하다고까지 할 수 있겠다.


그런 불편함이 일개 개인의 부당한 '땡깡'이 아니라 다수의 공감과 지지를 얻으며 하나의 예절로, 문화로, 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그 결과가 작금의 사회이자 국가일 것이라 상상해 본다면 학식이 부족한 필자의 지나친 억측일까? 이러한 차원에서 보자면 개인의 사소한 불편함이라도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충분히 곱씹어볼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타산지석과 반면교사,
짜증을 배움으로



인간은 똑똑하면서도 멍청한 존재다. 남성들을 예로 들면, 신병 때 선임에게 맞거나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는 이를 갈면서 그런 부조리함에 맞서 싸우겠노라고, 그런 악습을 철폐하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런데 막상 본인이 선임이 되면 올챙이 적 시절 생각은 못하고 그 인습을 유지하는 하나의 톱니바퀴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대부분이다. 알아도 바꾸기 어려운 것이 사람 본성인 것인지, 알고도 능구렁이 같이 넘어가는 소시민적 비겁함인지.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당해봐야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의 일이 되기 전까지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필자가 활터의 예절과 문화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보통 활터는 지자체에서 위탁 운영을 맡기는 형태다. 입회비와 월회비를 내면서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을 한다. 외부인은 해당 활터에 가입을 해야만 이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곳은 여느 곳들과는 다르게 '개방형'으로 운영이 된다. 여기에도 입회비와 월회비는 존재하지만 운영 주체가 회원들이 아닌 지자체이다 보니 이용료만 결제하면 외부인의 출입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자유가 존재하는 곳에 책임이 자연스럽게 뒤따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의 주체와 관리의 주체가 일치하는 일반적인 활터와 달리 개방적인 활터는 교육의 주체와 관리의 주체가 다르다. 그 간극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기 쉬운 듯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마땅하나, 남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최소한 그 나라 말이나 문화에 대한 공부라도 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일부의 사람들이 단지 '결제'를 했다는 특권의식에 젖는 순간 예외 없이 문제가 생긴다.



예의를 껍데기 삼고는 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의 근본적 동기는 개인적인 욕망에서 비롯된다. 내가 몸담은 공간이 무뢰배와도 같은 외부인의 행패로부터 안전한, 평화로운 곳이 되길 바라는 소망. 적어도 우리 활터의 회원 분들이 피해를 입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갈 것이다. 결국 내가 느낀 불편함은 타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나 역시 다른 활터를 가면서 무지에 의해서든 몰상식에 의해서든 그들에게 결례를 범할 소지가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의 개인적인 불편함이 볼멘소리로 남지 않도록, 거기에서 두루적용 가능한 어떤 배움을 이끌어 내야만 한다. 


또한 우리의 공간을 지키겠다는 명분 하에, 외부인에 대한 지나친 배타적 태도 혹은 텃세와도 같은 권위적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결국에는 우리 활터에 나오는 회원들이나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외부 손님들이 불쾌함 없이 오직 즐거운 경험만을 남기고 가기를 바랄 따름이다.


활터 전반에 걸친 좋은 문화나 풍습, 전통 등을 책으로, 경험으로 배우고 기록해 나가려고 한다. 이러한 시도가 빛을 발한다면 궁극적으로 활쏘기를 취미로 하는 모든 궁사들의 품격 또한 함께 올라갈 있지 않을까.



광주 <관덕정>의 옛 사진. 관덕은 활터에 많이 쓰인 이름이다.


관덕(觀德);


활 쏘는 폼만 보아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예의를 구습이라고 여기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

예의를 핑계 삼아 타인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영혼의 소유자여,


우리 모두 한 데 모여 싹수 있는 활쏘기, 품격 있는 활쏘기를 해보지 않으시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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