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쏘는 순간과 관련된 표현들
지난 글에서는 활과 관련된 전반적인 표현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활쏘기 중에서도 활을 쏘는 모양새에 대한 표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활을 쥐는 손을 줌손이라고 하고, 시위를 당겼다 놓는 손을 깍짓손이라고 한다.
깍짓손이라고 하는 이유는 시위를 당기는 손의 *엄지 손가락에 일종의 보호대인 '깍지'를 착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활은 문화인류학자 모스(Morse)의 분류 방식에 따라 '몽골리안 형'으로 분류된다. 몽골리안 형 활은 활채의 안쪽(시위를 당기는 손이 오른손이면 오른쪽)에 화살을 대고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손가락을 시위에 걸어서 당긴다. 장력이 많이 실리기 때문에 장갑이나 깍지 같은 보호 장신구가 필요하다.
활시위가 한가득 당겨진 상태를 '만작滿酌'이라고 하며, 우리말로 '온작'이라고 한다. 만작의 상태는 정지된 상태처럼 보이나 사실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정중동의 상태다. 줌손의 미는 힘과 깍짓손의 당기는 힘 사이의 팽팽한 균형이 힘의 중심점에서 자연스럽게 무너지면서 화살이 나간다. 이를 발시發矢라고 한다.
활을 쏘는 것을 간단히 표현하면 한 손으로는 활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화살을 건 시위를 당기다가 놓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활을 쏘는 폼새에 관한 말들은 자연스럽게 만작과 발시의 순간의 모양이 어떠한지를 주로 묘사하게 되었다.
줌손과 줌팔, 깍짓손과 깍지팔의 모양에 관한 다양한 표현들을 살펴보다 보면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살았던 선배 궁사들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다. 그리고 활을 어떻게 쏘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각자만의 화두를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싹수 있는 활쏘기의 튼튼한 기반이 되어준다.
멍에팔
-한국의 궁도(조선의 궁술을 1986년에 대한궁도협회에서 편집하여 낸 책)에 나온 표현
-소의 목에 걸어서 짐을 끌도록 한 멍에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표현. 팔이 멍에처럼 휘는 것을 말한다.
-흔한 증상은 아니고 한창 자라날 시기에 골절상을 당하거나 하여 줌손의 팔이 잘 펴지지 않거나 중구미(팔꿈치)가 엎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멍에팔은 강한 등힘을 사용하기가 어려워 조선의 궁술에서는 깍짓손을 더욱 바짝 끌어 연삽하게 내라는 처방을 내린다.
붕어죽
-조선의 궁술에 등장한 표현. 줌팔(활을 쥔 손)의 중구미(팔이 접히는 곳, 팔꿈치)가 하늘을 향했다는 뜻
-다시 말해, 중구미가 엎이지 않고 마치 붕어가 뒤집혀 허연 배를 드러내놓은 것과 같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은 중구미가 제대로 엎이지 않으면 줌팔이 안정되지 못하니 활이 앞나고 뒤난다며 맞히는 것만 연관 짓지만 사실 붕어죽이 좋지 않은 이유는 기(氣)의 흐름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중구미를 엎는 이유는 단순히 잘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등힘을 잘 쓰기 위해서다. 등힘을 잘 쓰는 이유는 불거름(단전)에 모인 기운이 팔 바깥에 있는 경락을 타고 줌손까지 잘 전달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줌을 잘 엎지 않으면 시위가 팔을 때리는 일이 곧잘 생긴다.
앉은죽
-조선의 궁술에 등장한 표현. 제대로 엎어지지도, 그렇다고 붕어죽이 된 것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모양
회목
-조선의 궁술에 나온 표현, 손목을 가리킨다. 줌손 회목, 깍짓손 회목 이런 식으로 쓴다.
죽머리
-조선의 궁술에 나온 표현. 줌손의 어깨를 가리킨다.
-시위가 뺨을 자꾸 때린다면 턱을 죽머리 가까이에 묻으면 된다.
죽지 떼다
-조선의 궁술에 나온 표현. 활을 쏘고 어깨를 내리는 것을 가리킨다.
중구미
-조선의 궁술에 나온 표현, 팔이 접히는 부분, 즉 팔꿈치를 가리킨다.
반바닥
-조선의 궁술에 등장한 표현
-엄지손가락이 박힌 뿌리 부분. 손바닥 가운데 살이 가장 통통한 부분. 손바닥의 정가운데를 한(一)바닥이라고 칭한다면 그 중심선에서 살짝 아래인 부분이니 반(半)바닥이 된다.
-활의 줌통(의 중심)이 반바닥에 맞닿도록 하여 자연스럽게 밀어야 한다. 억지로 아랫장을 더 볼록하게 미는 것은 바르지 않다.
범아귀
-조선의 궁술에 등장한 표현. 엄지와 검지 사이를 일컫는다. 엄지와 검지를 오므리면 마치 호랑이의 아가리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조선의 궁술에 따르면 범아귀를 다물라고 한다. 활은 흘려 쥐기로 쥐어야 범아귀, 즉 엄지와 검지 사이 거리가 좁혀진다. 막줌을 쥐면 흘려 쥐기를 할 때보다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해 조선의 궁술에서는 막줌이 아니라 흘려쥐기로 활을 쥐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웃아귀
- 엄지손가락과 둘째 손가락의 뿌리가 서로 만나는 곳
- 범아귀의 가장 깊숙한 부분. 일본 활은 웃아귀를 눌러서 쏘지만, 우리 활은 그렇지 않다.
북전
-조선의 궁술에 등장한 표현. 줌손 검지 손가락의 첫째 마디와 둘째 마디 사이. 줌통을 흘려잡기로 쥐면 북전이 높이 솟는다.
흙받기줌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 줌손을 들어 제껴쥐어 줌손 회목(손목)이 꺾인 것. '흙받기'는 집 지을 때 미장이들이 벽에 흙을 바를 때 쓰는 도구를 일컫는다. 흙받기를 쥘 때의 손 모양 같다는 것.
- 줌손이 꺾이면 등힘도 쓸 수가 없고 활시위에 팔이 맞기 쉽다.
고자채기
-발시하면서 활의 윗부분이 과녁 쪽으로 기우는 것. 만작 시에 활의 윗부분에 힘을 더 많이 주게 되면
-강한 활을 흘려쥐기로 쥐면 활의 윗부분이 약간 앞으로 기우는데 이것은 힘의 원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의식적으로 하는 고자채기에 비해 그 정도가 덜하다.
온깍지
-온깍지궁사회에서 뒤로 뻗는 형태의 깍짓손을 지칭하기 위해 창안한 표현.
-<조선의 궁술>이 쓰일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시할 때 깍짓손을 뒤로 완전히 펼치는 형태로 쐈기에 그것을 굳이 지칭하는 표현이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장비가 바뀌면서 깍짓손을 뻗지 않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깍짓손의 형태를 구분하는 표현의 필요성이 생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온깍지사법'이라고 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깍짓손을 뒤로 뻗는 일체의 사법을 가리키는 건 광의의 정의이고, 그 표현을 처음 쓴 온깍지궁사회의 정의에 따르면 <조선의 궁술> 속 사법을 고증하고 구현한 형태의 사법을 일컫는다.
반깍지
-온깍지라는 표현이 생기면서 편의상 생긴 반의어의 개념.
-'열다'라는 표현이 있으면 '닫다'라는 표현이 있는 것과 같은 대응되는 개념이니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없다.
-다만, <조선의 궁술>에는 깍짓손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등장하는데 그 형태가 결과적으로는 반깍지의 형태이기 때문에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소견이다.
*알아야 할 건 대한궁도협회의 궁도교본에도 소리 떼임(반깍지)가 아니라 대리 떼임(온깍지)을 권장했다는 점이다. 조선의 궁술을 베이스로 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이시(離矢)의 형체는 대략 세 가지로 구분되어 대리(大離) 중리(中離) 소리(小離)로 이루어지며 원칙적으로 대리(大離=발여호미後發虎尾)를 하여야 하며 숙달되면 제자리에서 소리(小離) 떼임을 하는 한량(閑良)들도 많으나 소리 떼임은 일종의 멋에 지나지 않는다. 대리 떼임은 줄떼임을 막고 만작된 힘의 전부가 활의 복원력에 합쳐지니 살이 힘차게 빠져나간다.
채쭉 뒤
-조선의 궁술에 나온 표현. 깍짓손을 당길 때 깍짓손을 훔쳐 끼고 팔회목(손목)으로만 당기는 것
-시위를 당길 때는 손이나 팔목의 힘이 아니라 중구미(팔꿈치)와 어깨, 그리고 견갑골로 당겨야 하며, 발가락을 누르는 힘이 하체를 타고 올라오며 골반을 회전시키고 그 힘이 척추와 등에까지 전달되는 움직임으로 당겨야 한다. 그래야 깍짓손의 손목이 꺾이지 않고 반듯하게 뒤로 당겨진다.
골로 빠지다
-발시 직후 깍짓손이 뒤로 빠지지 않고 아래로 떨어지는 모양
공깍지
-만작 시 깍짓손이 너무 높이 떠서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어정쩡한 모양
들깍지
-발시 직후 깍짓손이 온깍지도, 반깍지도 아닌 어정쩡한 모양으로 허공에 들떠있는 것. 화살대의 연장선 뒤편으로 힘차게 빠지지 못한 손 모양을 가리키기 위해 생긴 말.
봉뒤
-조선의 궁술에 나온 표현. 깍짓손을 뒤로 내지 못하고 버리기만 하는 것
두 벌 뒤
-조선의 궁술에 나온 표현. 깍짓손을 '봉뒤'로 버리고 살이 빠진 뒤에야 뒤늦게 펼치는 것.
꽉쏘다
-조선의 궁술을 쓴 성문영 공의 아들이자, 해방 전 황학정에서 15세 때 집궁한 성낙인 선생의 표현.
-각궁을 (바람을 이길 정도로) 잘 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각궁을 쏠 때는 줌손을 꽉 움키고 깍짓손을 힘차게 뿌려야 바람을 타지 않는다고. 반대말로는 '설쏘다'가 있으며, 어설프게 쏘아 바람을 많이 타게 쏘는 것.
방전(放箭)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로, 말 그대로 화살을 놓는다. 화살을 내어 보내는 것을 말한다.
-요즘 말로는 발시發矢가 되겠다.
살걸음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
반구비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 화살의 날아가는 높이(살고)가 마침맞아 과녁을 맞히기 딱 좋게 날아가는 것.
평찌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 살찌(화살이 날아가는 모양새)의 모양이 평평하고 나지막하게 날아가는 것.
한 배 / 한 살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 좌우 편차가 없이 겨냥한 곳으로 반듯하게 잘 날아가는 것. '통이 잘 섰다'와 동의어로 보인다.
충빠지는 것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 화살이 떨며 가는 것.
점심살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로, 땅에 먼저 맞고 튀어서 과녁에 맞는 화살을 가리킨다. 요즘은 소위 '슬라이딩'이라고 하기도 한다. 심지어 대한궁도협회 심판 교육 매뉴얼에도 슬라이딩이라는 표현을 쓴다. 점심살이라는 단어는 협회 매뉴얼에는 없었다.
-옛날에는 과녁에 화살이 박혔기 때문에 땅에 맞고 튀어 오르면 웬만하면 박히지 않았기에 관중이 아니었다. 요즘 활터는 과녁에 살짝이라도 충격이 가해지면 점멸 신호등에 불이 들어와서 관중으로 간주한다. 이를 두고 필자의 활터 사람들은 화살에 '발이 달렸다', '기어가서 맞았다' 등의 우스갯소리로 표현하기도 한다.
-협회의 경기 규칙대로 진행되는 전국대회나 승단대회 같은 곳은 점멸 신호등이 아니라 육안으로 과녁 옆에서 관중 여부를 살피는 과녁 심판이 있기 때문에 명확히 땅이 아니라 과녁이 먼저 맞아야 관중으로 인정한다.
여우살
-성낙인 선생의 표현으로 이전머리에서 화살이 오늬 쪽으로 물러났다가 나가는 것.
-퇴촉되면서 나가는 것의 반대 표현으로 마지막에 더 당기면서 쏘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필자 주)
월촉, 몰촉
-활을 너무 가득 당겨서 화살촉이 활채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올 지경까지 되는 것.
퇴촉
-화살이 가득 당겨진 만작된 상태에서 힘이 풀리거나 균형이 무너져 화살촉이 점점 앞으로 나오는 것.
-만작은 밀고 당기는 힘이 팽팽히 이루어져야 하는 상태이지 멈춘 상태가 아니다. 만작에서 밀고 당기기를 멈추고 가만히 있으면 퇴촉은 필연적이다.
영축
-화살이 더 가고 덜 가는 것. 영축이 많다는 것은 화살의 비행 거리가 일정치 않음을 말함.
1. 정진명, 『한국의 활쏘기』, 학민사, 2018
2. "국궁지식", (사)황학정, https://hwanghakjeong.org/%EC%9E%90%EB%A3%8C%EC%8B%A4/%EA%B5%AD%EA%B6%81%EC%A7%80%EC%8B%9D/?uid=692&mod=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