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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Dec 05. 2024

활과 관련된 말말말

국궁 용어집

언어는 집단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언어가 집단의 문화나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든, 혹은 반대로 집단이 향유하는 사고가 언어의 형태로써 드러나는 것이든 그 둘 사이에 면밀한 관계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특정 집단에서만 사용되는 소위 말해 '실무 용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니까. 


의사들이 처방전에 휘갈기는 저것이 무엇일지 환자들은 알 수가 없다. 사주를 보러 가면 사주의 국이 어떻니, 청淸하니 탁濁하니, 용신用神이 무엇이니 일반인들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기도 한다. 일본어의 잔재가 남은 실무용어들도 여전히 즐비하다. 패션 봉제 쪽의 나나인치(일자단추구멍), 에리(칼라, 깃), 당구에서 다마(공), 다이(당구대), 히네루(회전주기), 겐세이(견제) 그리고 공사현장에서의 곰방(운반), 데마찌(일거리 없음), 시마이(작업 완료) 등이 있다.


활터에도 그런 말들이 있다. 활을 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전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 그리고 심지어 현대 활꾼들에게도 생경한 말들이.


옛날에 쓰인 표현이니 무조건적으로 그대로 답습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천사를 겪게 마련이다. 그러나 옛것을 알고 지킬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과 옛것은 먼지 쌓인 고루한 상자 안에 담긴 무엇으로만 취급하고 아예 열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언어를 위시한 기록물은 한 시대와 다른 한 시대를 이어주는 가교이자 타임머신이다. 


그렇기에 그 말을 일상용어로 쓸 필요는 없어도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전통 활쏘기를 한다고 할 수 있는 싹수 있는 활꾼이 되는 길이라 생각한다. 본 글에서는 활과 관련된 다양한 예스러운 표현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 중에는 현대사회인 지금도, 활터에서만큼은, 쓰이는 표현부터 시작해서 현대 활꾼들에게도 낯선 표현까지 다양하다. 


이것이 뭐 시험에 나오는 것이니 암기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검색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여기에 글로 정리한다.




활쏘기에 관련된 용어들을 처음으로 정리한 기록물은 전통활쏘기의 바이블이라 일컬어지는 <조선의 궁술>이라고 한다. 당대에 활터에서 실제로 쓰이는 표현들을 정리한 것이다. 그것에 더하여 여러 가지 추가된 표현들이 잘 정리된 책이 있다. 바로 혼신의 노력으로 전통활쏘기의 명맥을 잇는 데 큰 공을 세우고 계신 정진명 (사)온깍지협회 회장님이 쓰신 <한국의 활쏘기>가 그것이다.


본 글 역시도 해당 책을 참고하여 필자가 소개하고 싶은 표현들을 발췌하여 필자의 생각을 덧붙인 것임을 밝힌다. 


덜미

-목 뒤. 목덜미 할 때 그 덜미다. 조선의 궁술에서는 활을 쏠 때 턱을 죽머리(줌손의 어깨)에 묻고 덜미를 팽팽히 늘이라고 한다. 

-화살대를 뺨에 붙이기 위해서, 혹은 턱 밑으로 고정하기 위해서 얼굴을 내미느라 목이 펴지지 않거나 턱이 죽머리에 묻히지 않는 것은 전통 사법과 거리가 먼 자세다.


해방 직후 활 쏘는 풍경. 턱을 줌손 어깨에 묻고, 덜미는 팽팽하게 하고 있다. 


등힘

-조선의 궁술에 나온 표현

-줌손의 어깨에서 손등까지 팔의 바깥쪽으로 곧게 뻗으면서 연결되는 힘을 가리킨다. 활터에서는 이것을 그냥 등근육을 써야 한다는 식으로 등힘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건 올바른 설명이 아니다.

-팔 안 쪽 근육이 아니라, 바깥쪽의 힘을 쓰라는 것이다. 국궁은 근력만으로 쏘는 게 아니라 기운으로 쏜다. 팔 바깥에 소장 경락과 삼초 경략이 흐르는데 그 기운이 단전까지 모이기 위해서 등힘을 쓰라는 것이다.


멍에팔 

-한국의 궁도(조선의 궁술을 1986년에 대한궁도협회에서 편집하여 낸 책)에 나온 표현

-소의 목에 걸어서 짐을 끌도록 한 멍에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표현. 팔이 멍에처럼 휘는 것을 말한다.

-흔한 증상은 아니고 한창 자라날 시기에 골절상을 당하거나 하여 줌손의 팔이 잘 펴지지 않거나 중구미(팔꿈치)가 엎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멍에팔은 강한 등힘을 사용하기가 어려워 조선의 궁술에서는 깍짓손을 더욱 바짝 끌어 연삽하게 내라는 처방을 내린다.


멍에팔의 모습. 팔이 다 펴지지 않는다. (ⓒ온깍지궁사회)


반바닥

-조선의 궁술에 등장한 표현

-엄지손가락이 박힌 뿌리 부분. 손바닥 가운데 살이 가장 통통한 부분. 손바닥의 정가운데를 한(一)바닥이라고 칭한다면 그 중심선에서 살짝 아래인 부분이니 반(半)바닥이 된다.

-활의 줌통(의 중심)이 반바닥에 맞닿도록 하여 자연스럽게 밀어야 한다. 억지로 아랫장을 더 볼록하게 미는 것은 바르지 않다.


범아귀

-조선의 궁술에 등장한 표현. 엄지와 검지 사이를 일컫는다.

-조선의 궁술에 따르면 범아귀를 다물라고 한다.  활은 흘려쥐기로 쥐어야 범아귀, 즉 엄지와 검지 사이 거리가 좁혀진다. 막줌을 쥐면 흘려쥐기를 할 때보다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해 조선의 궁술에서는 막줌이 아니라 흘려쥐기로 활을 쥐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북전

-조선의 궁술에 등장한 표현. 줌손 검지 손가락의 첫째 마디와 둘째 마디 사이. 줌통을 흘려잡기로 쥐면 북전이 높이 솟는다.


줌손은 하삼지를 흘녀서 거듯처 쥐고, 반바닥과 등힘과 갓치 미리고, 범아귀가 다물리고, 북전은 높고, 엄지가락은 나저야 하나니 

<조선의 궁술> 중


불거름

-조선의 궁술에 등장한 표현. 단전을 가리킨다. '불'은 불(火)이라는 뜻도 있으나 생명과 생식, 기운의 원천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말이다. 거름은 밑거름 할 때 그 거름이다. 

-활을 쏠 때는 불거름에 기운이 가득 모여야 한다.


붕어죽

-조선의 궁술에 등장한 표현. 줌팔(활을 쥔 손)의 중구미(팔이 접히는 곳, 팔꿈치)가 하늘을 향했다는 뜻

-다시 말해, 중구미가 엎이지 않고 마치 붕어가 뒤집혀 허연 배를 드러내놓은 것과 같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은 중구미가 제대로 엎이지 않으면 줌팔이 안정되지 못하니 활이 앞나고 뒤난다며 맞히는 것만 연관 짓지만 사실 붕어죽이 좋지 않은 이유는 기(氣)의 흐름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중구미를 엎는 이유는 단순히 잘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등힘을 잘 쓰기 위해서다. 등힘을 잘 쓰는 이유는 불거름(단전)에 모인 기운이 팔 바깥에 있는 경락을 타고 줌손까지 잘 전달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앉은죽

-조선의 궁술에 등장한 표현. 제대로 엎어지지도, 그렇다고 붕어죽이 된 것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모양


회목

-조선의 궁술에 나온 표현, 손목을 가리킨다.


관중

-과녁을 맞히는 것. 원래는 과녁의 한 가운데(관貫)를 맞힐 경우만 관중이라 하고 가장자리를 맞히면 변邊이라고 했다.

-임금이 쏠 때는 변이어도 관중이라 하던 것이 후대에 와서 어디를 맞든 관중이라고 하는 것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마치 골프에서 개판으로 날려도 '사장님 나이스 샷'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대대거리

-활쏘기 대회에서 단체전에서 동점이 나왔을 때 한 명씩 나와서 쏘는 것. 축구로 치면 연장전 승부차기와도 같다. 구경하는 맛이 상당하다.


방전(放箭)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로, 말 그대로 화살을 놓는다. 화살을 내어 보내는 것을 말한다.


살찌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 화살이 날아가는 모양새를 가리키는 말.


소나기활

-시수가 좋을 때는 아주 좋고, 아닐 때는 아주 형편없이 나는 것. 기복이 큰 것. 딱 필자를 일컫는 말이로다.


여우살

-화살이 뒤(오늬 방향)로 물러났다가 나가는 것


안바람, 촉바람

-과녁에서 사대 방향으로 부는 바람. 안고 쏜다는 뜻으로 '안풍'이라고도 한다.

-화살이 과녁을 향하니까 화살촉방향에서 불어온다고 하여 촉바람이다.


*활뿐만이 아니라 바람을 부를 때는 도달하는 방향이 아니라 출발한 곳의 방향. 즉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인다.  예) 서풍: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 해풍: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


오늬바람, 덜미바람

-사대에서 과녁 방향으로 부는 바람. 뒷덜미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오색(五色) 바람

-일정한 방향 없이 변화무쌍한 바람. 표현이 참 예쁘다.


월촉, 몰촉

-활을 너무 가득 당겨서 화살촉이 활채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올 지경까지 되는 것.


점심살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로, 땅에 먼저 맞고 튀어서 과녁에 맞는 화살을 가리킨다. 요즘은 소위 '슬라이딩'이라고 하기도 한다. 심지어 대한궁도협회 심판 교육 매뉴얼에도 슬라이딩이라는 표현을 쓴다. 점심살이라는 단어는 협회 매뉴얼에는 없었다.

-옛날에는 과녁에 화살이 박혔기 때문에 땅에 맞고 튀어 오르면 웬만하면 박히지 않았기에 관중이 아니었다. 요즘 활터는 과녁에 살짝이라도 충격이 가해지면 점멸 신호등에 불이 들어와서 관중으로 간주한다. 이를 두고 필자의 활터 사람들은 화살에 '발이 달렸다', '기어가서 맞았다' 등의 우스갯소리로 표현하기도 한다. 

-협회의 경기 규칙대로 진행되는 전국대회나 승단대회 같은 곳은 점멸 신호등이 아니라 육안으로 과녁 옆에서 관중 여부를 살피는 과녁 심판이 있기 때문에 명확히 땅이 아니라 과녁이 먼저 맞아야 관중으로 인정한다.


줌앞바람, 줌뒷바람

- 우궁(오른손으로 시위를 당기는 경우) 기준 앞나는 것은 화살이 과녁의 오른편으로 가는 것이고 뒤나는 것은 왼편이다.  앞바람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부는 바람이며, 뒷바람은 그 반대다.


평찌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 살찌(화살이 날아가는 모양새)의 모양이 평평하고 나지막하게 날아가는 것.


한 배 / 한 살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 좌우 편차가 없이 겨냥한 곳으로 반듯하게 잘 날아가는 것. '통이 잘 섰다'와 동의어로 보인다.


흙받기줌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 줌손을 들어 제껴쥐고 등힘이 꺾인 것. 집 지을 때 미장이들이 쓰는 흙받기를 쥘 때의 모양 같다는 것.


전통(箭筒)

-화살을 담는 통. 개량시는 카본으로 만들어 비교적 튼튼하니 막 굴리기도 좋지만, 대나무+꿩깃으로 만든 죽시는 비싸기도 하고 잘 상하기 때문에 보관에 신경써야 한다. 예전에는 대나무나 종이나 오동나무로 만들었는데 요즘에는 이런 방식의 전통을 들고다니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

-보통은 미술도구나 포스터, 설계도 등을 담을 때 쓰는 플라스틱 화구통에 많이들 담는다. 하지만 궁사의 영혼을 담기에는 너무 저렴(?)해 보인다. 값이 비싸다고 품격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요즘에는 무슨 골프 가방 같은 디자인의 전통도 보인다.

(좌) 누군가에겐 화구통, 누군가에겐 화살통. 화살에게 미안해지는(?) 품격이다. (우) 골프가방인지 화살가방인지 헷갈리는 디자인

-물론 필자도 금전 사정을 핑계로 아직 죽시도 마련하지 못했고 개량시를 대충 화구통에 넣어서고 다니기에 할 말이 없다.



전통과 전통조승의 이미지



전통(화살통)에 매달린 두루주머니(궁낭) (ⓒ국궁신문밴드)



두루주머니 / 궁낭弓囊

-깍지나 삼지끈, 밀피 같은 부속품을 넣어 보관하는 주머니. 보통 전통(화살통)에 달아서 같이 휴대했다. 

-전통에 매달고 다니는 것의 일체를 '전통조승箭筒銱繩'이라 하였다. 전통조승에는 살수건, 두루주머니, 촉돌이(화살이 과녁에 박히던 시절, 뽑힌 화살의 촉을 다시 고정시키는 도구)가 있었다.


전통 조승 (ⓒ<조선의 궁술>)



보궁 / 삼지끈 / 깔지

-각궁(전통방식으로 제작한 활)을 사용할 때 활채의 균형이 틀어지지 않도록 끼워두는 가락지끈. 각궁은 여러 재료로 만드는 복합궁이기 때문에 윗장과 아랫장이 똑같은 힘으로 나뉠 수가 없기에 가만히 두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서 뒤집어지거나 심하면 부러질 수도 있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끈으로 끼워서 뒤틀림을 예방하는 것이다.

-활을 쏠 때는 그것을 빼서 줌손 하삼지에 끼우고 활을 쥐기 때문에 하삼지에 끼우는 끈이라고 하여 삼지끈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본 역할에 충실한 표현으로는 보궁이 맞다.

-보궁용으로만 만들 때는 가죽으로 많이 만들지만, 삼지끈으로 쓸 때는 털실로 짜서 쓴다. 끝에 꽃망울 같은 모양을 달아서 예쁘게 장식한다.


(좌)보궁(삼지끈)을 끼워둔 모습, (우)활을 쏠 때 삼지끈을 하삼지에 끼워둔 모습. 메뚜기팔찌도 보인다. (ⓒ온깍지협회)



메뚜기팔찌

-조선의 궁술에 나온 표현. 줌팔의 소매가 펄럭이지 않도록 단정히 묶어주는 것이 팔찌(또는 습)다. 메뚜기는 일종의 고정 또는 잠금장치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메뚜기를 두고 '탕건, 책갑, 활의 팔찌 따위에 달아서 물건이 벗겨지지 않도록 하는 기구'라고 정의한다.


메뚜기팔찌 (ⓒ<조선의 궁술>)


메뚜기팔찌 착용 모습 (ⓒ1973년 제2회 남녀 사격 및 민속경기 영상)


밀피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 시위에 밀(밀랍)을 입히기 위해 밀을 발라둔 가죽이나 헝겊. 시위에 보푸라기가 일 때마다 닦는다. 일종의 코팅을 하는 것.


살수건

-조선의 궁술에 나온 말. 살을 닦는 수건. 지금에야 화살을 수거해 와서 묻은 흙이나 물 등을 닦는 공용 수건을 비치해 두지만 과거에는 수건 같은 개념이 없었기에 개인별로 조그만 주머니 같은 것을 매달아 다녔다고 한다.


현흥초등학교 국궁부 학생들의 멋진 복장과 궁체. 살수건까지 착용한 것이 필자보다 백배 낫다. (ⓒ온깍지협회)



쌈지

-깍짓손에 끼는 가죽. 가죽보호대라고 편히들 부르지만 예전엔 쌈지라고 불렸다고 한다.

-깍짓손의 검지손가락이 화살과 마찰을 일으켜 굳은살이 끼는 것을 막아준다.





참고자료


1. 로버트 파우저, "언어가 사고와 세계관을 지배하는가 [로버트 파우저의 언어의 역사]". 시사저널. 2020.04.12.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451


2. 정진명, 『한국의 활쏘기』, 학민사, 2018


3. "멍에팔 고찰(요약본)[국궁논문집 9]", 다음카페[온깍지궁사회.] 2016.10.26. https://cafe.daum.net/onkagzy/GI4B/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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