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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Nov 21. 2024

국궁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

'궁도'는 일본말입니다

궁사라면 '활쏘기'가 국가무형문화재 142호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다소간의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전통문화 보존에 관심이 있든 없든 관계없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마인드라도 들게 마련일 테니.


그런데 그런 자부심에 금이 가게끔 만드는 것이 있으니 바로 '궁도弓道'라는 명칭이다. 국궁을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궁도협회에도 떡하니 들어간 표현이다. 활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의아해할 수 있겠으나, 알고 보면 이는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표현이다.


대한궁도협회의 전신은 1928년에 결성된 조선궁술연구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29년 당대 활쏘기의 바이블이자 현대에도 매우 의미가 깊은『조선의 궁술』을 발간했고, 1932년에는 조선궁도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때가 기록상에서는 우리나라 활쏘기를 '궁도'로 지칭한 최초의 시점으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의 민족문화말살 정책의 압박이 있었으리라 짐작될 수밖에 없다. 1945년까지는 궁술이라는 표현과 궁도라는 표현이 혼용되는 분위기였다. 해방 직후인 1946년에는 조선궁도협회로 명칭이 또 한 번 바뀌었고, 1948년에는 대한궁도협회로 바뀐 뒤 1954년 3월에 대한체육회에 가맹하였다.


그 뒤에 국내에 양궁이 도입되기 시작(1962)하면서 대한궁도협회에서 통합적으로 관리를 하던 것이, 1983년 양궁/국궁을 분리하여 대한양궁협회와 대한'국궁'협회로 나뉘었다. 여기에서 멈췄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당시 국궁인들은 국궁대신 궁도라는 말을 쓰겠다며 결의했다. 그 당시에는 궁도라는 단어가 일제의 잔재라는 인식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결과 1987년에 다시 대한궁도협회로 명칭이 바뀌고 그것이 여태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잠깐 존재했던 대한 '국궁'협회의 깃발 사진 (ⓒ국궁신문)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궁도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일제강점기의 영향임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한병철·한병기의 『독행도』라는 책이나 황학정의 100년의 역사를 정리한 김집이 쓴 『황학정 100년사』라는 책에도 잘 정리가 되어있다. 궁도라는 말은 일본군국주의가 자신들의 침략과 민족 정체성 말살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모든 스포츠를 제도화하면서 만든 용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도(道)'라는 개념은 쭉 있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도는 우주의 보이지 않는 원리와 진리를 가리키는 뜻이지 활이나 칼 등에 붙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말하는 도라는 것은 어떤 형식이나 절차를 가리킨다. 그래서 사물이나 객체의 뒤에 다 붙일 수 있다. 차(茶)에 붙이면 다도가 되고, 활(弓)에 붙이면 궁도가 된다. 그 정해진 예법과 절차를 엄격히 따르는 것이 일본에서 논하는 도의 기본이다.



(좌) 일본 궁도의 현 모습, (우) 에도 시대의 궁도. 도리이 키요나가의 작품(1787년)


같은 단어를 봐도 각자가 처한 문화나 경험에 의거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활쏘기, 궁술 등의 표현으로 우리 활을 바라보던 당대의 선조들에게 강요된 궁도라는 단어는 이해하기 난해했을 것이다. 선조들은 대신 그것을 '궁사도(弓士道)'의 준말로 이해했다. 궁사도는 활쏘기 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도리나 마음가짐에 가까운 뜻인 말로 일본의 궁도라는 뜻에 함의된 절차나 예법에 대한 강조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개념이다.


(..)
조선의 궁술은 다만 기술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오 궁술에는 궁도(혹은 궁사도)라는 것이 엄정히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이제는 궁시는 무기로서는 아무 가치를 인정할 여지가 없다 할지라도 그 궁사도에 있어서는 오히려 본받을 것이 상당히 있을 줄로 생각한다.

(..)
조선 궁술에는 궁사도가 있으며 그 궁사도가 어떠하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자세히 알게 되는 날에는 조선 궁술은 동양에서는 물론이오 저 구미 스포츠계에까지도 새로운 환영이 있을 줄로 생각한다. 조선의 궁사도는 아닌 게 아니라 한 운동으로만 생각한다 할지라도 확실히 이상적 운동의 가치가 많은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 궁술은 서양 사람들이 신사 운동으로 가장 숭상하는 테니스에 비교하기를 주저할 만한 가치를 가졌다.

*정언산인, 「조선궁도와 사풍」, 조선일보, 1934. 6. 3.



이렇듯 우리 식으로 궁도를 해석하면 형식과 절차에 대한 강조라기보다는 활쏘기를 통해 도를 터득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을 보면 대부분의 궁사들에게 활쏘기는 스포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의 책임(?)을 개개인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대한궁도협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의 반증으로 보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스포츠로서의 성격만을 강조하고 싶다면 양궁협회에 대응하여 나온 표현인 국궁협회가 가장 적합할 것이다. 그럼에도 궁도를 집요하게도 고집하는 이유는 필시 숨은 의도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국궁 전반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수록된 <활쏘기의 나침반>에서는 당시 단급제도의 도입 이후 국궁계에 무너진 질서를 바로 세우고자 궁도로 명칭을 다시 전환한 것이라고 본다. 단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자, 선배 구사들에 대한 존중보다 오로지 얼마나 많이, 잘 맞히냐에만 천착하다 보니 활터 내의 질서가 개판이 된 것이 그 배경인 것이다. 그래서 맞히는 게 능사가 아니고, '도'를 추구해야 한다는 고상한 느낌을 주기 위해 궁도라는 단어를 다시금 도입했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1960년대까지는 활쏘기 대회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이었는데 단급제도가 시행된 70년대 이후부터 궁도라는 말이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산되었고, 국궁협회를 굳이 다시 궁도협회로되돌리기 위해 ‘일부’가 뜻을 모았다는 점도 그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활은 과녁 맞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겉으로 내세운 취지는 그럴듯 해보인다. 그러나 옛 정신을 올바르게 회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활터 내의 '정신적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함이라는 그 속내가 검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궁도라는 표현이 일제의 잔재라는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못한 미숙한 처사라는 점이 심히 아쉽다. 그런 의도를 담아내기 위한 단어가 정말 궁도가 유일한 선택지였을까.


백번 양보해서 지금도 소수의 사람들이 활쏘기를 심신수양 및 진리탐구의 도구로 본다는 이유에서 이제라도 우리식으로 궁도를 재해석하겠다고 한들 소용없다. 애초에 그 시작이 일제 강점기에 이뤄진 역사적 배경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전통 활쏘기'를 한다는 자부심에 누가 되는 표현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궁도가 아니라면 다른 대안이 있을까? 활쏘기나 궁술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활쏘기가 우리말이라면 한자어로는 궁술(弓術), 궁예(弓藝), 사예(射藝), 사술(射術)과 같은 말이 우리 선조들에게는 훨씬 더 익숙한 표현이었다. 그중 '궁술'은 조선시대 무과제도의 폐지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용된 표현이며, 실제 근현대에 실시된 활쏘기 대회 관련 기록에 쓰인 횟수도 '궁도'보다 '궁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궁신문에서 보도했던 「근대신문에 보도된 궁술대회 목록」에 따르면 1896년부터 1949년 기간 동안 근대신문에 보도된 활쏘기 관련 기사 중 1908년 황성신문의 궁술대회 기사를 시작으로 1946년 전조선남녀궁술대회까지 궁술 명칭의 대회는 415건, 궁도라는 명칭이 들어간 대회는 1935년 삼군연합궁도대회 최초기사를 시작으로 1942년 전조선남녀궁도대회까지 모두 75번에 걸쳐 보도되었다.


다만 현시대 국궁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대한궁도협회와 그 궤를 달리하는 대한궁술협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궁도나 궁술이냐를 논하는 것이 역사적인 이슈가 아니라 헤게모니 다툼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그런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표현이 바로 ’활쏘기‘이다.


명칭 자체도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적인 표현이니 특정 협회의 이권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보인다. 또한 문화재에 올라간 공식 명칭을 그대로 쓰는 것이니 현재 국궁계의 과업인 역사적 '보풀'을 제거하고 다시금 인식을 바로 세우기에 적합해 보인다.


지금 이권 다툼할 때인가? (영화 <곡성>의 명대사)


실제로 ‘활쏘기’가 국가무형문화재에 등록될 당시의 지정가치 심의 자료에 따르면 활쏘기 명칭을 여러 측면에서 검토한 결과 2019년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인정) 조사 계획 수립 시에는 ‘국궁’으로 종목 명칭이 검토되었으나 국궁 명칭과 관련하여 궁술, 궁도 등의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궁술’은 조선시대에 활쏘기가 전쟁무기화 되고 무과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가장 많이 사용한 용어이며, ‘궁도’는 일본의 영향이라는 논란이 있고, ‘국궁’은 양궁이 도입되면서 비교하기 위하여 사용된 용어로서 우리의 활쏘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표현이므로 고려시대부터 우리말 ‘활쏘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을 고려하여 ‘국궁’보다 ‘활쏘기’로 결정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궁도라는 표현에 무비판적으로 물들어버린 나머지 활쏘기라는 표현이 생경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혹자는 활쏘기라는 표현이 '장난감 활을 당기는 애들 놀이' 같은 느낌이 든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특정 표현에 대한 개인의 감상은 자유이나, 그것으로 실제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법. 활쏘기라는 표현은 이미 과거에도, 그리고 심지어 지금도 몇몇의 '역사의식이 있는' 곳의 대회명으로 활용되고 있을 만큼 명실상부 '족보가 있는' 표현이다.



제1회 전국남녀활쏘기대회 풍경. 이승만 전 대통령과 영부인이 참관 중인 모습. (1958)
‘2023 종로 전국 활쏘기 대회’ 모습. (사진=온깍지협회/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2024 전국 여궁사 활쏘기 대회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하는 것을 좌시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우리 겨레의 활쏘기를 '궁도'라고 하는 것도 역시 언제까지고 방치해서는 안 되는 문제일 것이다. 애초에 대한궁도협회에서 경기 공식 복장으로 한복을 금지하고 있는 것부터가 한참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황학정에서 늘 개최해 온 종로 전국활쏘기 대회(12회) 승인 과정에서 '활쏘기'를 '궁도'로 변경하지 않으면 승인을 해주지 않겠다는 엄포까지 놓은 바 있다.


그나마 최근에 바뀐 협회의 로고가 '활'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했다는 것에, 비록 아니꼽게 보이지만 애써 누르며, 위안을 삼아봐야 할 노릇이다.


2024년에 변경된 대한궁도협회의 새로운 로고. '활'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들도 (바라건대) 아마 느끼고 있을 것이다. '활'과 '궁도'가 같이 존재하는 아이러니한 모양새가 자신들이 만들어 온 현대 국궁의 역사의 현주소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덮어두고 외면으로 일관하는 태도를 싹 바꿔야 한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하지 않는 현재의 방향으로는 제 아무리 직진에 직진을 거듭해도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어렵기에.





참고자료


1. 정진명, 『한국의 활쏘기』, 학민사, 2018

2. 정진명, 『활쏘기의 나침반』, 학민사, 2018

3. "궁도를 활쏘기로 명칭 바꿔야...", 국궁신문, 2022.06.10. http://www.archerynews.net/news/view.asp?idx=2186

4. 정진명, "[활쏘기 문화 산책]궁도는 일본 말", 충청매일, 2020.08.09. https://www.ccd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8388

5. 정진명, "[활쏘기 문화 산책] 궁도에서 궤변을 보다", 충청매일, 2020.08.23. https://www.ccd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0391

6. "대한국궁협회 깃발", 국궁신문, 2018.03.22. http://www.archerynews.net/news/view.asp?idx=1686


7. 나무위키 - 대한궁도협회, https://namu.wiki/w/%EB%8C%80%ED%95%9C%EA%B6%81%EB%8F%84%ED%98%91%ED%9A%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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