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윤 Aug 09. 2022

'비상선언'이 억지 신파? 슬픈 자화상이다

[리뷰] 영화 <비상선언>

*이 글엔 영화 <비상선언>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 <비상선언>은 비상선언의 뜻을 알리면서 시작한다. 비상선언은 재난 상황에 직면한 항공기가 더 이상 정상적인 운항이 불가능하여, 무조건적인 착륙을 요청하는 비상사태를 뜻하는 항공 용어다.


생화학 테러로 위기에 빠진 비행기는 기장은 물론이고 모든 승객이 위험에 처하자, 결국 비상선언을 선포한다. 그로 인해 인접 국가들에 착륙을 요청하지만 우방이라 믿었던 그들이 거절하며, 위기감이 고조된다. 심지어 대한민국 정부조차 여론의 눈치를 보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정부 고위급 인사들 가운데는 항공기 착륙으로 인한 국내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하며 착륙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불안한 시민들은 착륙을 불허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 글을 올리고, 탑승객을 향한 악플을 쏟아내며, 착륙하지 못하도록 시위에 나선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다. 2년 전 우리가 실제 겪은 일들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것이 알려지면서, 초창기에는 '우한 폐렴'이라 불렸다. 당시 정부는 우한에 있는 우리 국민들을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를 급파했지만 상황은 쉽지 않았다.


우한 교민들이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는 정부의 결정에 해당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전세기 일정이 수시로 바뀌었다. 전세기를 탑승하기로 했던 날 새벽에 갑자기 일정 변경을 통보받고, 추가 전세기는 언제 올지 몰라 애간장을 태웠다. 그 사이 아산·진천 주민들은 트랙터, 지게차 등 중장비를 몰고 나와 교민들이 머물 격리시설의 진입로를 막았고, 정부의 수용에 '결사반대' 머리띠를 둘렀다.


영화 속 항공기에 탄 사람들은 착륙을 거절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리기 싫다고 말한다. 미국과 일본은 타국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유일하게 안길 수 있는 고국에서도 거절당한 항공기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착륙하지 않기로 한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뭐가 무서운지 알고 이해합니다. 원망하지도 않고요. 우리 그냥 전부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의도하지 않았던 재난에 휩쓸린 거 뿐이니까요. 그냥 우린 나약하고 겁많은 인간이잖아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거고, 이제 우리는 모두를 위한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이 결정은 우리가 처한 재난에 지지 않고 인간으로서 떳떳하려고 하는 겁니다."


우한 교민들의 예전 인터뷰를 찾아보면 "주민들의 반대 소식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받는 것 같아 서운하다", "이렇게까지 욕먹으면서 한국에 가고 싶지는 않다"라고 발언한 내용이 수두룩하다.


세월호 사건 연상시킨 '비상선언'

미국과 일본에서 거절당한 항공기를 끝내 우리 정부도 거부한 모습은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켰다. 세월호는 명백한 국가 살인이었다. 2014년 4월 16일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300명의 승객을 태운 배가 가라앉았다. 


영화 <비상선언>에서 국토부 장관 역을 맡은 전도연씨는 항공기 착륙에 반대하는 정부 인사와 맞서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상황이 급해 죽겠는데 협조를 안 한다고 물러서요? 공권력이라도 동원하셨어야죠", "우리 공무원이잖아요. 책임지라고 있는 사람들이라고요"라는 대사를 던지며 재난 앞에서 공무원의 책임을 이야기한다. 공권력을 동원하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던 세월호 사건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비상선언>을 둘러싸고 눈물과 억지 감동을 짜낸 신파극이라는 평가들이 들려온다. 재난 앞에서 나약하고 겁많은 인간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장면이 누군가에겐 신파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비상선언>을 신파로 단정 짓기에는 너무나도 슬픈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담겨 있다. 우한 교민들의 입국을 반대던 악플과 시위들, 침몰하는 세월호를 지켜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국가까지, 우리 사회가 재난 앞에서 보인 나약하고 겁많은 모습들을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앞으로 다가올 재난들 앞에 과연 우리는 이런 모습을 또다시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영화 대사처럼 우리가 처한 재난에 지지 않고, 인간으로서 떳떳할 수 있는 결정을 우린 내릴 수 있을까. 영화 <비상선언>은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자 또 마주하게 될 재난 앞에 나약하고 겁많은 인간들의 선택을 묻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새로운 정치 세대의 등장이 필요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