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생 - 79년생의 세대대담.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할로윈 축제가 진행되던 중 시민 158명이 압사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참사 직후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고 지난 5일 자정을 끝으로 애도기간이 종료됐습니다. 애도기간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각자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정부의 책임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담자 이성윤 씨는 청년정당 미래당의 서울시당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담자 양띠 씨는 H대학교 정치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NGO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양띠 씨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닉네임으로 대체합니다.
양띠: 친구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날 새벽 친구 전화 벨소리에 깼다. 친구 가족들이 혹시나 친구가 이태원에 가지 않았나 싶어 전화를 걸었던 건데 그때 처음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인터넷에 올라오는 무분멸한 영상들을 뭔지도 모르고 봤다. 비명 섞인 소리들이 들리고 거리에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그 뒤로는 온라인과 뉴스에 퍼지는 영상들을 볼 수가 없었다. 너무 힘들었다.
이성윤(이하 이): 원래는 그날 이태원에 가기로 했었다. 집에 어머니가 놀러오셨다가 본가로 같이 가게 돼서 안 갔는데, 다음날 아침부터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화가 왔다. 이태원 가지 않았냐고. 그제서야 사고가 난 줄 알았다. SNS에 관련 영상들이 올라와서 보게 됐는데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 뒤로는 볼 수 없었다. 이날 우리처럼 아침부터 전화가 울려 깬 사람들이 많았을 거다. 그만큼 청년들에게 이태원은 할로윈으로 너무 유명하니까.
이: 사고가 난 이태원 1번 출구에서 10분만 걸어가면 정부가 설치한 분향소가 있는데, 정부의 뻔뻔함에 차마 갈 수가 없었다. 정부는 지금까지도 일관되게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왜 대통령은 6일 연속으로 조문을 가고, 정부가 분향소를 설치하고, 보상안을 발표하나. 책임 주체가 없는 보상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나. 보상의 기본의미는 '국가 또는 공공 단체가 적법한 행위에 의하여 국민이나 주민에게 가한 재산상의 손해나 손실을 보충하기 위하여 제공하는 대가'다. 보상한다는 것은 그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것인데 대통령, 총리, 행안부 장관, 용산구청장 모두가 자기네 책임이 아니라고 한다. 국가 애도기간도 결국에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쇼였다. 애도기간 갖고, 보상하고, 대통령이 매일 조문하고. 그런데도 책임은 없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질 않았다.
양띠: 정부가 세월호 사건처럼 커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거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안전 체계를 만든다고 했는데 이번 사고로 결국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은 게 밝혀졌다. 세월호 사건으로 정부가 깨달은 유일한 건 사고 수습이다. 사건이 커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되니깐, 애도기간 선포하고 보상안 마련한 거다. 지금도 누가 책임지는지를 봐라. 대통령, 총리, 장관, 구청장 윗선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 안 진다. 반면 손 떨면서 현장에서 사고 수습했던 용산 소방서장은 입건됐다. 윗선은 아무도 책임 안 지고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다 책임지고 있다. 세월호 사건이랑 뭐가 다른가. 국민들이 두려우니깐 일단 수습부터 한 거다.
양띠: 이번 사고에 대해 정부가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젊은 세대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청년들이 이태원에서 술 마시다가 다친 게 왜 내 책임이야." 이런 거다. 할로윈을 즐기고, 술 마시는 청년들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거다. 이번 사고로 한국의 안전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평가하는데 그보다는 기성 정치인들이 청년 세대의 문화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진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할로윈 때 이태원에 가서 술 마시고, 파티하는 건 청년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매년 진행되어온 일상인데, 일상을 영위하다가 죽었는데 그게 어떻게 정부 책임이 아닐 수가 있을까.
지금 윤석열 정부의 인사를 보면 검사, 판사 출신이 많다. 평생을 법조문과 판례를 보며 페이퍼로 세상을 들여다 본 사람이다. 실제 사람들이, 청년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 페이퍼를 통해 사건으로 삶을 들여다 본 사람들이라 "술 먹고 놀다 사고 난 게 왜 우리 책임이야?"라고 인식하는 거다.
이: 사고 아침에 우리처럼 괜찮냐고 전화 받은 청년들이 엄청 많았을 거다. 그만큼 할로윈 때 청년들이 이태원을 많이 찾는다. 평소에는 이태원 가지도 않던 청년들도 할로윈 시즌만 되면 이태원 가자고 연락한다. 청년들에게 이태원=할로윈 파티는 일종의 명절, 연례 행사 같은 거다. 주최가 없어서 통제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면 매 설날과 추석 때는 왜 정부가 고속도로 통제를 하나. 설날과 추석도 주최자가 없지만 매년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니까 통제하는 게 아닌가. 할로윈도 마찬가지다. 매년 수만 명이 모였던 행사였고, 이번이 유독 많았던 것도 아니다. 청년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정부가 만들어낸 참사다.
양띠: 아무도 책임이 없다고 하는데, 기동대 출동 거부한 사람, 그 윗선의 결제자, 구청장, 행안부 장관, 총리, 대통령 다 책임져야 한다. 옷 벗어야 할 사람들은 옷 벗고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부터가 책임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일반 시민 158명이 여느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길거리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행안부 장관은 경찰을 투입했어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그런 장관을 대통령은 해임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이: 한 외신 기자가 주최자가 있는 10만 명 정도가 모이는 행사였다면 어느 정도의 경력을 투입하는 게 적절한지를 묻는 질문에 한덕수 총리가 “뉴욕 양키스와 보스톤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가 있다면 굉장히 많은 경찰 인력을 투입해야겠죠.”라고 답했다. 총리가 이번 사고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태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외신 앞에서 총리의 이런 발언이야말로 국익 훼손인데, MBC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으면서 총리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다.
지금 책임을 져야 하는 용산구청장, 행안부 장관, 대통령 모두 단 한 번도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 본 경험이 없는 정치인들이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영어 강사였다가 구의원 한번 하고 권영세 국회의원 눈에 띄어 정책특보 하고 바로 용산구청장 자리로 올라왔다. 그러니까 사고가 나고도 경찰이나 소방서보다도 먼저 권영세 의원에게 연락한 거다. 본인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이상민 장관도 평생 변호사만 하다가 장관직에 올랐고, 윤석열 대통령도 검사만 하다가 대통령이 됐다. 한 번도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 본 적 없는 초보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니까 책임질 줄 모르는 거다.
양띠: 이번 사건에는 야당도 분명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박근혜 정권이 탄핵 당하고 이러한 반사이익으로 집권한 야당도 정작 세월호 사건 책임자 처벌이나 진상규명을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이태원 사고를 권력을 쟁취하거나 권력을 유지할 도구로 쓰지 않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 야당 지지자들은 어떻게든 이 사건을 정치화하려고 한다. 정치화시켜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책임져야겠지만 너무 수단화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윤석열 대통령 퇴진 시위에 ‘추모가 퇴진이다’라는 피켓이 등장했다. 아직 유가족의 입장이 없는데 이래도 될까. 남의 불행을 이용하려는 거 아닌가.
양띠: 이번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 밀려 타던 사람들이 이태원 사고 이후 과도하게 타지 않으려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누구나 그렇게 다칠 수 있고, 사망할 수 있다라는 경험이 이번 사고로 시민들에게 내재됐다. 전 국민이 압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거다. 이번 사고로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에 대한 사고방식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국가가 사고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건 너무 당연한 의무이며, 국민은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다. 정부는 아직도 왜 국가 책임인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로 인식했다.
이: 사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고 당일에 안부 전화를 받았던 모든 사람들까지 큰 범주에서 생존자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끝까지 정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