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포르노’는 정치인, 연예인, 구호단체 등이 지지율, 미디어 시청률, 모금 등을 높이기 위해 극빈층의 가난을 도구 삼아 촬영한 사진, 영상물 등을 일컫는 단어다.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통용된 단어지만 국내에서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이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를 방문해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을 안고 찍은 사진에 대해 ‘빈곤 포르노’라고 비판하면서 단어가 알려졌다.
반면 ‘정치 포르노’라는 단어는 뜻이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가 ‘빈곤 포르노’에서 차용한 것으로 지지율을 끌어모으기 위해 특정 사람을 도구로 삼은 정치세력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최근 이태원 희생자를 정쟁 삼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당 성향의 언론들이 바로 ‘정치 포르노’의 주역이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유가족의 의사나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책 없이 참사를 신속하게 수습하는 데만 몰두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가 현상 또는 경찰 인력을 투입했었어도 벌어졌을 참사라고 주장하며 직접적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한덕수 총리는 외신 브리핑에서 이번 참사를 농담에 빗대었고,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는 참사 발생 이후 한참 뒤에 나왔으나 진정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 인사 가운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지만 유가족에 대한 지원은 신속했다. 분향소를 설치하고, 애도 분위기를 조성하고, 장례비를 비롯한 지원금을 약속했다. 책임은 없다면서도 이와 같은 지원은 신속하게 참사를 정리하겠다는 의중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유가족의 동의를 구해 희생자들의 위패와 영정사진을 모시고 분향소를 설치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정부는 일사천리로 참사를 종결했다. 시간을 충분히 갖은 채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했다가는 과거 세월호 사건처럼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정치공학이 작동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가족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수습을 서둘렀을 이유가 있었을까.
정부가 정치공학적으로 수습한 결과, 참사가 발생한 지 3주가 지난 지금 재발 방지보다는 명단 공개라는 엉뚱한 곳으로 정쟁이 옮겨갔다.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을 하고 애도를 하는가.”라며 명단 공개를 주장했다. 그리고 민주당 성향의 언론인 ‘더 탐사’와 ‘민들레’가 지난 14일 희생자의 명단을 유가족의 동의 없이 공개했다. ‘민들레’는 “유가족협의회가 구성되지 않았기도 하지만 이 죽음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선 것이라는 것, 이 사회 전체가 희생자들의 한 가족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라며 명단 공개의 이유를 밝혔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과 ‘민들레’, ‘더 탐사’의 명단 공개 과정에서도 윤석열 정부와 마찬가지로 유가족의 동의는 없었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과 달리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국민이 분향한 사례는 있다. 지난달 SPC 공장에서 소스 배합기에 끼어 사망한 20대 청년, 2016년 구의역 사건의 김군, 같은 해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등에서 숨진 희생자들의 이름과 얼굴은 우리는 모른다. 그럼에도 수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 구의역,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애초부터 정부가 유가족들과 협의를 했더라면 명단 공개가 문제 되지 않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강제로 희생자들의 명단을 공개할 권리 또한 없었다.
명단을 공개해야만 비로소 희생자를 온전히 기릴 수 있다던 민주당과 친민주당 성향의 언론사 주장처럼 명단이 공개된 지금 우리 사회가 희생자를 온전하게 기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언론 보도는 공익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이번 명단 공개에 공익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 사망한 참사에서 가족들에게 소식을 가능한 빨리 전달하기 위해서 명단을 공개할 경우 공익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명단 공개는 그런 연유가 아니었다.
한국기자협회의 언론윤리 헌장에 따르면 “사건 피해자 등을 취재할 때는 절차적 정당성과 가장 높은 수준의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인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번 명단 공개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인권 감수성이 과연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보다는 그저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공개였다. 정부가 초기 대응을 잘못한 것에 절대적으로 동의하지만 결국 민주당과 친야권 성향의 언론사도 희생자와 유가족을 정쟁의 볼모로 삼은 것은 아닐까?
유가족의 안위는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은 정부 여당과 야당의 행태를 보고 있으면 정치권이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정부 여당은 책임질 생각이 없고, 야당은 진상 규명보다는 이번 참사를 어떻게든 정쟁으로 삼아 정권을 비판하려고 한다. 2022년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희생자와 유가족의 불행을 자기 입맛에 따라 이용하려는 거대 양당의 ‘정치 포르노’다.
안녕하세요, 미래당 서울시당 대표 이성윤입니다.
미래당은 '정치권 세대교체'와 청년의 목소리가 의회에 좀 더 반영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7년 창당했고, 공동창당준비위원장과 1기 공동대표를 맡았고 현재는 서울시당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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