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나는 사뿐사뿐 지옥을 건너다
가장 기품있는 모양으로 웁니다
하루라는 생을 받아내기 위해
눈물은 떨어지지 않아요
그것은 껍데기가 되었어요
속을 내다 버리고 쳐박혀서
움찔거리던 그것은 이미 상해버렸어요
상처는 햇볕을 침범했어요
지옥은 마침내 조그마한 빛의 껍질이 되었지요
검기도 하고 차갑기도 한 그것이
봄 기운을 엄숙하게 두드려요
그 모습은 꽤나 그럴듯 하답니다
열 번째 손가락은 벼랑 끝에서
태아처럼 비명을 지르고
귀에서 맴돌던 하바리는 핏빛 열매를
달고 칼처럼 반짝거려요
자, 다음 지옥을 보여주세요
십년씩 사라지는 기적을 만날 차례에요
한순간도 버티지 못할테니 부드럽게
숨을 들이쉬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낫죠
시간이 정직한 그림자를 화형시키며
낯선 휘파람을 불어요
나는 이제 조약돌이 되었어요
아무런 의도를 찾을 수 없고
아무것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생을 자르고 저미고 푸르스름하고 붉은
달이 구더기처럼 꾸물거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