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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정 Jan 17. 2024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이 오려나 보다.

 7월까지 세 개의 일을 하였다. 아침에는 신세계 백화점에서 명품 브랜드 물류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오후에는 로봇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 밤에는 다이소 물류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중간에 비는 시간 없이 하루 14시간을 일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그 대가로 풍족한 수입을 얻었다. 딱히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시작한 일들은 아니었다. 단지 시간이 맞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힘이 들었다. 체력을 소모하고 피곤함을 늘 달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힘들다고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체력이 없어도 피곤해도 싫지 않았다. 하루 4~5시간을 자고 점심시간에 의자에 기대기만 하면 잠들었지만 그럼에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달에 2~6권 읽던 책도 세 개의 일을 하면서 10권 이상을 꼬박꼬박 읽게 되었다. 자투리 시간을 더 잘 활용하게 되었다. 


세 개의 일을 하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이렇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의지로 선택한 일을 항상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원한다고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결정한 선택에서는 모두 옳은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왔다. 하고 싶다고 모든 걸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딱히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지는 않았다. 즉 나의 선택은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향해 있다. 이 방향은 늘 고정되어 있어 옳은 선택을 하게  해 줄 것이다. 


 나는 힘듦에 대한 기준이 높다. 살면서 번 아웃이 온 적이 없다. 그 이유를 열심히 살지 않은 나의 삶이라고 결정 내렸다. 번 아웃은 열심히 살았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불이 붙어야 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 불이 붙지 않았다. 비교하면 끝이 없겠지만 나의 삶 또한 마냥 평탄하거나 쉽지는 않았다. 희로애락과 풍파가 가득했다. 그럼에도 늘 크게 힘들지 않다고 느낀다. 이 밑바탕에는 '힘들다고 말하지 않기'를 실천하고 있는 습관도 한몫한다. 경험적으로 힘들다고 말할수록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로봇이 아니다. 로봇을 만들고 있는 입장에서 로봇은 생각보다 잔병치레가 많다. 계속 보살펴줘야 한다. 생각보다 잘 고장 나고 툭하면 부딪히기 일쑤다. 로봇조차도 이런데 나라고 무리하면 고장이 안 나겠는가. 힘듦에 대한 기준이 높은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쉼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나는 제대로 쉬고 있다는 것도 갭 이어 생활 중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큰 고민 없이 시작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개의 일을 하루 14시간씩 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한다. 음.. 생각해 보았지만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냥 했을 뿐이다. 'Just Do It!'이라는 스포츠 브랜드의 유명한 말이 정말 와닿는 걸 경험했다. 시작에 앞서 고민을 하면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 고민은 배송을 늦춘다고 하는데 고민은 시작을 늦출 뿐이다. 


 8월이 들어 가장 가치가 있는 일만 남겨두고 다 정리하였다. 로봇 만드는 일만 남겨두었다. 내가 일에서 미숙함을 보이는 게 혹시 집중력 부족이 아닐까 싶었다. 그 외에도 이 빈 시간들을 다른 활동들로 채우고 싶어졌다. 수입이 없는 활동들을 하고 싶었다. 오히려 돈을 내고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을이 오기 전까지 세 개의 일을 하면서 정말 행복했다. 나의 가을을 넘어 겨울까지 어떤 순간을 맞이하고 어떤 연결점들을 발견하며 나에 대해 어떤 점을 발견하게 될지 여름의 끝자락에서 내리쬐는 햇볕에 미약하게 느껴지는 바람의 변화를 느끼면서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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