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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pr 13. 2024

4000주

당신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4000주, 인간 수명의 평균이 그쯤 된대요. 생각보다 얼마 안 남았죠...-.-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고 있는 책인데 정말 좋습니다. 추천해 주신 분께 감사드려요!




이 책은 제가 한국으로 돌아와 마음이 엄청나게 복잡할 때 만난 책이에요.

이거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거도 해야 할 것 같고 

마음은 분주하게 요동치는데 뇌는 정지가 온 듯하고

오랜만에 십 년 전 즈음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때 분주하게 뭘 하는데 제자리 걸음을 하는 느낌이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파도치듯 온몸을 휘감았거든요. 




이 책은 시간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자기 계발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효율성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시간은 언제 생겼을까요? 온 세계가 '시간'이라는 공통 기준에 의해 움직이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요.




작가는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비유해요. 각 상자에 기간이 있고 그동안 내용물을 채워 흘려보내는데 내용물이 넘치면 바쁘고 삶이 버겁다고 생각하고 모자라면 지루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그 상자를 열심히 꽉꽉 채우는데 열을 올리는데 그렇게 열을 올려서 채우고 나면 금세 또 다른 상자가 오니 사실 끝낸다는 개념이 애초에 없는 거예요. 일을 잘할수록 더 많은 일이 오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 무언가를 더 채우고 넣어도 그 효율성만큼 또 일이 주어지죠. 일 잘하는 사람이 일을 늘 하고 있는 모습..... 빠른 답변을 할수록 더 채워지는 이메일함....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생산성 중독자의 고백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열심히 사는데 익숙한 문화에서는 특히나 자신이 어느 정도로 달리고 있는지 그 속도를 가늠할 수 없을 때도 있어요. 해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자신의 가치를 더 입증하고자 그저 미친 듯 내달리고 있는지도 몰라요. 가끔 그 벨트에서 내려오면 죽을지도 몰라...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면서요. 





https://youtu.be/RXA1Rt1hoFw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작가는 잃을 줄 아는 것이 우리의 선택을 더 의미 있게 만든다고 해요. 어떤 일에 시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는 건 곧 그 시간에 할 수 있었던 다른 일들을 포기한 것이니까요.





다른 것들을 포기했다는 것은 주저하지 않고 더 중요한 것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한 것이다






당신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지금 이 시간선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뭔지 생각하게 합니다. 






책에는 칼 융이 1925년 케냐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던 중 새벽녘 하늘을 밝히는 빛줄기를 보며 느꼈던 '영원함'의 순간을 나누고 있는데요. 


이걸 읽으며 제가 느꼈던 영원함의 순간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하나는 2016년 산티아고 길 위의 시간들이고요. (아주 단순한 그 걸음에서 거의 매일이 그랬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포르투갈 절벽에 앉아 있을 때입니다. 제 브런치 어딘가에 느낌을 남겼던 것 같아서 찾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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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페니쉬에 있을 때 파포아라는 절벽에 자주 가서 앉아 있었다. 거기 가면 늘 돌부처처럼 앉아 있던 남자가 있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맨날 같이 물만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원시시대부터 존재했을 것 같은 이끼처럼 돌에 접착된 듯 그렇게 오래 거기에 있었다. 절벽을 마주하고 앉은 우리의 등 뒤로는 달이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는 것처럼 이른 저녁부터 아주 크고 둥글게 빛나고 있었다. 하얀빛을 사방으로 뿜어내는 달이 비현실적으로 너무 크게 보여서 우리가 있는 곳이 지구가 아닌 달 근처의 다른 행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엘링 카게가 느낀 텅 빈 평화로운 침묵을 거기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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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산티아고 길을 걷고 와서 쓴 첫 책 '엄마, 나는 걸을게요.'(현재는 절판되었습니다만) 에필로그에 남긴 글도 '시간'에 대한 통찰이네요. 그렇게 40일 넘게 걷고 제게 남은 건, '순간'에 대한 감각이었습니다. 정작 길의 끝은 정말 중요한 것은 아니더라고요. 그도 하나의 순간이니까요.  


지금 이 시기 제가 다시 깨워내야 하는 감각이기도 하네요. 오늘 내일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서 쓴 명상록이 아주 깊이 와닿았던 그 시기를 떠올리며 그때 책에 담았던 문장을 올립니다. 


 




네가 삼천 년을 산다 해도, 아니 삼만 년을 산다 해도, 아무도 지금 살고 있는 것 외에 다른 삶을 잃지 않으며, 지금 잃고 있는 것 외에 다른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따라서 가장 긴 삶도 가장 짧은 삶과 결과는 마찬가지다. 현재의 시간은 만인에게 길이가 같고, 우리가 잃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잃는 것은 분명히 한순간에 불과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2016년의 길, 2024년의 길




2016. 순간






+ 이쪽 블로그로 오시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더 보실 수 있으십니다. 이 책의 챕터 1-2부분에 대한 것이고요. 앞으로 더 통찰이 오면 써보도록 할게요. 읽은 책과 영화들도 이곳에서 계속 나눌게요!



https://blog.naver.com/hyuni020202/223413663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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