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닝은 생각보다 다이내믹하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바질 새싹이 얼마나 컸는지 확인하러 야외 베란다 문부터 열어본다. 지피 펠렛에 심어 내놓은 유칼립투스 새싹들도 밤새 안녕하신지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컵에 물을 받아 부어준다. 유칼립투스 새싹은 자라는 것이 좀 더딘 것 같지만 바질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몽글몽글 크기가 커지고 있다. 바질 녀석들 언제 키워서 잡아먹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렇게 애지중지 키운 애를 나중에 아까워서 과연 잎을 딸 수나 있을까 싶다.
매일 들여다보지만 매 순간 모양이 다른 것들이 식물이다. 식물이 원래 이렇게 다이내믹한 존재였나. 가드닝은 정적인 취미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매 순간 식물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생각보다 동적인 취미다. 당장 식물의 움직임이 눈앞에 보이진 않지만 1,2시간만 지나도 자세가 바뀌어있거나 조금씩 자라 있다. 특히나 물이 없어 축 쳐진 식물에게 물을 준 다음 1시간쯤 뒤 다시 보라. 언제 그랬냐는 듯 잎이 벌떡 일어나 있어 놀랍다. 내가 안보는 사이에만 움직이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건가 싶을 만큼 느리지만 꾸준히 움직인다. 몸이 땅에 박혀있어 움직이지 못할 뿐 식물은 가장 빠르게 몸의 크기를 불리고 변해가는 놀라운 생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식물을 키우면서 가장 놀라는 것은 대부분의 식물이 몸의 일부분만으로 자신의 또 다른 개체를 뚝딱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웃자란 가지를 싹둑 잘라 물꽂이를 하거나 삽목을 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뿌리를 내리고 또 하나의 개체가 된다. 평범할 수도 있는 이 사실이 나에겐 가장 신기하고 재밌는 가드닝 포인트였다. 부분이 또 하나의 전체가 되다니 마치 프렉탈 같잖아. 작은 씨앗이 새싹을 틔워 또 하나의 커다란 식물이 된다는 것 자체도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다. 그런 놀라운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바로 가드닝의 묘미다.
나는 식물을 키우면서 내일이 더 설레기 시작했다. 물꽂이 한 가지들이 언제 뿌리를 내릴까, 잎꽂이한 에덴 로소 페페는 무사히 뿌리를 내려 아기 잎을 뿜어낼까, 미모사 씨앗은 언제 싹을 틔울까, 몬스테라에서는 언제쯤 제대로 구멍 뚫린 새 이파리가 나올까, 외목대로 만들기 위해 가지치기한 로즈 제라늄은 언제쯤 풍성한 외목대가 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설레는 요소이니까.
마음이 좀 우울할 땐 식물들을 가만히 지켜본다. 계속 보다 보면 못 보던 새잎이 눈의 띄고, 물 주기를 까먹은 아이들이 갑자기 보이고, 관심이 잠시 덜한 사이 훌쩍 큰 듯한 아이들이 보인다. 그 식물들을 돌봐주고 쳐다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울한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가드닝은 생각보다 시간과 신경 에너지의 소모가 많은 취미다. 늦지 않게 물을 주고, 통풍을 시켜주고, 햇빛을 보여주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주고, 새로 산 식물은 늦지 않게 분갈이도 해줘야 하니까. 거기다 각종 벌레의 출몰에 놀라며 약도 뿌려야 하니, 생각보다 버텨내야 하는 점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집안을 가득 채워 수백 개의 화분을 키우고, 정원을 가꾸는 이유가 뭘까.
식물 자체의 아름다움도 물론이지만, 식물이 주는 '즐거운 기다림' 때문이 아닐까.
나는 또 즐겁게 내일 아침을 기다린다. 내일의 식물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