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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에 가려진 진짜 나

by 시우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안도현 〈퇴근길〉 짧은 시다.


퇴근 후, 마음에 맞는 사람과 소주 한 잔을 걸치면서 일상의 고뇌를 풀고, 재미난 이야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상사, 선후배, 동료를 안주 삼아 뒷담화 깐다. 이 뒷담화는 소주잔에 핀 위로이다. 시구처럼 이것마저 없다면 그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평가하고 험담한다. 이를테면 나는 팀장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 실력은 얕으며 위 사람 눈치만 빠르다. 보고서를 올리면 내용 핵심은 지나치고, 하찮은 글자 오타만 지적한다. 어쩌다 한 번 지각하면, 그것을 트집 잡는다. 아랫사람 성과를 잽싸게 채어간다. 그래서 나는 팀장이 너무 싫다. 그런데 곰곰이 되짚어 보면, 이것은 나의 내면 가치관 표현이다. 팀장을 빗대어 술안주 삼아 뒷말을 하지만 실상 바로 나의 신념이다. 나는 상사에게 아부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람은 재수 없다. 앞뒤 꽉 막혀 융통성 없는 사람은 밥맛없다. 사소한 일에 규칙을 따지는 밴댕이처럼 속 좁은 사람은 꼴 보기 싫다. 실상 타인을 판단하여 뒷말하지만, 뒷담화에 가려진 진짜 내 모습이다.


이는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하지 못하지만, 운동을 좋아하고 아주 잘해. 그래서 난 너무 좋아.” 이는 부모가 공부보다 운동에 더 가치를 둔 사람이다. “ 내 아이는 운동은 잘하지만 공부를 못해, 속상해 미치겠어.” 이는 부모가 공부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이다. 세세히 들여다보면 부모 욕망이 자녀에게 투영된다. 이렇듯 자녀를 평가하지만 실상 부모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를 규정한다. 잔소리 속에 가려진 진짜 부모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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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부의 이야기다. 아내는 어릴적 바닷가에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생선을 좋아한다. 탕이든 찌개든 구이든 가리지 않고 식탁에 올렸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생선탕 한 냄비에 보글보글 끓여서 반찬으로 식탁을 차렸다. 그리고 남편에게 권했다.

“오늘 생선탕이 맛있어, 많이 먹어”

“난 비릿해서 생선탕 잘 안 먹잖아”

그 말을 듣고 놀란 아내가 말했다.

“그럼, 지난 20년 동안 반찬으로 차린 생선탕은 누가 다 먹은 거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올렸는데?”

“그러게, 너 혼자 잘 먹더라”

“ 맙소사. 그럼 그걸 나 혼자 먹은 거야?”


아내는 남편에게 맛있는 반찬을 요리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비릿내 나는 음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남편을 위한 반찬이 아니라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었다. 이렇듯 우리는 타인을 앞세웠지만, 그 뒷배에는 나 자신이 어떤 선호도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려준다. 타인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정의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정의한다.


나는 커피 한 잔에 핀 뒷담화도 좋아한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사랑한다. 이는 나의 감각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인간은 타인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공간 속에 살게끔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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