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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생애

슬픔이 주는 진짜 선물은 깊이이다

by 시우

▶슬픔은 인간 존재 양식의 하나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렸을 때나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갈 때 우리는 슬픔을 마주한다. 이는 상실감에 비롯된 감정이다. 이때 그 안에 갇힌 나는 하필이면 ‘왜’ 이런 일이 나 한테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이 먼저 올라온다. 그 충격으로 ‘이게 현실일 리 없다’고 세찬 부정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이 비로소 서서히 온몸으로 스며든다.


슬픔은 여럿 갈래 길로 다가온다. 실직을 당하거나 시험에 실패하거나, 승진 누락했을 때나, 따돌림당 할 때나, 과거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어들 때나, 멀리 떨어진 이가 그리울 때나, 참으로 다양한 길로 천천히 오기도 하고 느닷없이 다가온다.


슬픔은 내부에서 나오는 감정이긴 하나 외부에서 어떤 자극 결과로 발생한다. 내가 잘못해서 느끼는 슬픔은 죄책감이나 자괴감에 가깝다. 자괴감은 스스로를 책망하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슬픔으로 무기력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땐 희망이 끊어진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슬픔이 주는 가장 잔인한 선물은 이 무기력에서 나오는 삶의 '무의미함’이다.


슬픔의 가장 큰 표현은 눈물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ler Ross)는 “30분 울어야 할 것을 20분에 멈추지 말라”고 한다. 울어야 할 상황에서는 원 없이 울어야 한다. 충분히 아파해야 한다. 자신의 울분을 충분히 풀어 낼 때 슬픔은 흘러서 비로소 고요한 상태에 이른다. 그때 상실의 아픔을 대면할 힘이 생긴다.


모든 감정이 의미가 있듯이 슬픔도 존재 이유가 있다. 슬픔은 고통에서 비롯된다. 신체가 먼저 반응한다. 몸이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축 처지고 기운이 빠진다. 잠도 많아지고, 식욕이나 성욕이 떨어진다. 통증은 우리 몸이 더 이상 피해를 입지 않게끔 하는 신체 반응으로 최소한 방어 기제이다. 이럴 땐 쉬어야 몸 면역력이 회복된다.


슬픔은 또한 우리를 사회에서 잠시 고립시킨다. 연인과 이별, 정치인 선거 패배, 시험 실패, 운동경기 패배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동안 일어난 상황을 대뇌이며 재 정리하면서 슬픔의 원인을 깊이 성찰한다. 이 슬픔은 사회에서 재도약 발판으로 삼지만 이러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사람은 음악을 듣거나 낮잠을 잔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슬픔을 지닌 채 또 하루 일상에 나선다. 슬픔은 인간 존재 양식의 하나이다.


감정은 순식간에 변한다. 슬픔과 기쁨은 상반되지만 슬픔이 기쁨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이를테면 사우나에서 시계를 벗어 두고 나와 한참후에 다시 되돌아 갔는데, 그 시계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슬픔은 순식간에 기쁨으로 바뀐다. 또한 감정은 마구 뒤섞이기도 한다. 자식을 시집 장가보낼 때 부모 마음이 기쁘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하고, 뿌듯하면서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빈자리에 아쉬움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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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은 고요히 스며든다.

슬픔은 처음엔 소란스럽다. 갑작스럽게 밀려와 가슴을 후벼 파는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조용히 내 일상에 자리를 잡는다. 마치 창가에 앉아 멍하니 밤하늘을 쳐다보는 것처럼. 아무 말없이 그냥 존재한다. 나는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아침에 일어나면 슬픔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밤에 잠들기 전에 슬픔이 내 곁에 머물러 있다.


▶ 슬픔은 변한다.

어느 순간 슬픔은 조금씩 모양을 바꾼다. 처음에는 울음이 되었다가 이제는 조용한 공허감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슬픔은 예술이 되기도 한다. 노래 가사에, 시 한 줄에, 아물지 않는 그리움에, 떨어지는 잎새에도 슬픔은 스며 든다. 시간이 지나면 나 스스로 슬픔을 재구성을 한다. 슬픔은 내 삶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가끔은 다시 찾아오지만 나를 무너뜨리지 않고 조용히 지나간다. 슬픔은 더 이상 나를 짓누르지 않고 내 안에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무언가 된다. 슬픔은 내 일부가 되어, 나를 더 깊게 만드는 에너지가 된다. 이제는 슬픔을 피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도록 놔둔다. 어차피 슬픔도 계절처럼 지나가니까.


▶ 슬픔과 동행한다.

슬픔은 마치 오래된 상처처럼 아물어, 그 자리에 잔잔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깨끗이 지우지지 않는다. 슬픔은 결국 우리의 일부다. 지나간 뒤 에야 비로소, 그게 상처속에 새살이 돋아나 또 다른 생기를 돋운다는 걸 안다.


사랑했기에 아팠고, 소중히 여겼기에 상처를 받은 것이다. 슬픔이 주는 진짜 선물은 ‘깊이’다. 깊은 물이 소리 없이 흐르듯이 슬픔도 내 영혼에 깊이를 새긴다. 슬픔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슬픔은 강물과 같다. 처음에는 넘칠 듯이 밀려오지만, 결국에는 당신 발끝을 적시고 새로운 땅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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