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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융한삶 Jun 03. 2024

고통의 연금술

painless age



물질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불편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물질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고통과 불편을 제거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반려견 눈꼽용·발바닥용·항문용 물티슈가 따로 출시되고,

주방용·욕실용·전자렌지용 세제가 따로 나온다.


성분이 거의 유사한 샴푸와 바디워시가 시장을 대등하게 양분할 때부터

풋샴푸의 등장은 당연히 예견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곧 겨드랑이 전용 샴푸와 사타구니 전용 샴푸를 목격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이미 출시됐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불편들까지도

구석구석 소거되는 시대다.


처음엔 “이런게 뭐가 필요해?” 라고 조소하던 소비자들은 

온갖 마케팅의 현혹과 술수, 광고와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무료 체험, 무료 배송, 특가, 핫딜, 첫구매 990원, 네고왕 콜라보 등)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새 그들의 충실한 대변인이 되어 간다.


물론 제품의 탄생에는 소비자의 니즈와 충분한 수요,

나름의 기능과 타당한 존재 이유가 있겠지만,


필요한 구매와, 설득된 구매 사이에는 뚜렷한 구분이 필요하다.

(나는 풋샴푸를 구매당했으나, 더 이상 재구매하지 않는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불편이 감소하고 편안함이 증가하면 무조건 좋은 것 아닐까?


이런 일반적 견해와 달리

지나친 편안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삶을 꽤나 푸석하게 만든다.




- 육체적 편안은 동작을 제한한다.


뇌의 존재 이유, 의식의 존재 이유, 인간의 존재 이유는

단지 '움직임'을 위해서다.


멍게는 바다를 표류하다가 바위에 정착하면

가장 먼저 자신의 뇌를 먹어 치운다.


더 이상 동작을 제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뇌 역시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에 거부감을 느낀다.

계단을 멀리하고 엘리베이터를 선호하는 식이다.


힘들고 땀나고 불쾌하고 괴로운 활동을 

왜 굳이 사서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단련되지 않은 육체는 

신체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부상에 쉽게 노출된다.




- 육체적 편안은 생활을 지배한다.


인간은 앉아만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지나친 좌식 생활은

퇴행성 관절염, 노인성 질환, 치매, 비만, 거북목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의자를 검색하면

수백 수천 개의 브랜드가 쏟아진다.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특허며 특수 기능이며,

저마다 자신들이 최고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비싸고 좋은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수록 

척추 수명과 다리 근육은 오히려 감퇴한다.




- 육체적 편안은 식습관을 좌우한다.


감탄고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은 오랜 과거부터 존재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심하다.


설탕, 액상 과당, 인공 감미료 범벅의 

정체 모를 초가공 식품들이 활개치고,


채소와 야채는 식탁에서 점점 멀어진다.


덕분에 소아 당뇨, 소아 비만, 마른 비만 등

이상 질환 증세는 갈수록 늘어만 간다.




알콜 또한 환상이다.


위스키, 와인, 전통주를 위시해 주류 시장이 확대되면서

주류 전반에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강해졌다.


게다가 하루 한 잔은 심혈관계, 스트레스 완화에 

유익하다는 뉴스 기사를 근거로 들지만,


건강과 결부시켜 죄책감 없이 즐기고자 하는 합리화에 불과하다. 

여러 연구를 통해 알콜은 이미 백해무익하다고 판명났다.


이에 지지 않고 알콜 옹호자들은


자연 속 원숭이들이 과일을 발효해 

알콜을 섭취하는 행위가 관찰되기에


알콜 섭취는 인간 본능이라는 주장을 전개하지만,


자연 발효 알콜 함유량은

기껏해야 1-2%에 불과하다.


시중에 출시되는 술들은

적어도 4%, 위스키는 40%를 가볍게 넘긴다.


물론 적절한 술자리는

친밀한 사회적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속적이고 빈번히 섭취하는 대량의 알콜은

누가 뭐라해도 간암 발생, 당뇨 및 치매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1급 발암 물질이다.




- 정신적 편안은 문해력을 빼앗는다.


더 이상 사람들은

‘작품’을 ‘감상’하지 않는다.


그저 팝콘을 먹듯

‘콘텐츠’를 ‘소비’할 뿐이다.


‘감상’이란 적극적으로 ‘공감’과 ‘상상’을 하는 행위인데

감상을 잃어버린 시대에 문해력의 소멸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사람들은 치열한 독서를 통해

머리가 지끈거리는 경험을 원하지 않는다.




- 정신적 편안은 성숙을 저해한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이나 

신화학자 조지 캠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세계를 경험하며 

마땅히 겪어내야 하는 일련의 사건 궤적이 존재한다.


'탄생 - 위기 - 도움 - 성장 - 시련 - 위기 - 극복' 으로

정리되는 영웅의 일대기 구조는 인간 삶의 축소판이다.


그러나 강화되지 않은 정신은

사소한 균열에도 쉽게 흔들리고, 작은 시련에도 금방 굴복한다.


그로 인해 성장 궤도에서 이탈하고

결국 자아와 세계의 이해에 실패하고 만다.


예를들어 이별을 수용하지 못하고

헤어진 연인을 스토킹, 협박, 보복, 집착하는 행위는


사랑의 의미를 전혀 모를 뿐 아니라

정신적 미성숙이 가장 큰 원인이다.


소중한 무언가의 상실은 

삶을 성숙으로 이끈다.


시련을 제대로 감내한다면 

대체로 사람은 성장하기 때문이다.




- 특정 중량의 반복은 

세포 미세 조직을 손상시키고,


손상된 근육은 점차 회복되며 

전체적인 근육 성장을 돕는다.



- 지속적으로 뇌자극이 주어지면

가소성으로 인해 미엘린 층이 두꺼워지고,


두꺼워진 뇌 배선은 전기 신호 형태의 정보를 

더욱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실어 나른다.



- 백신 면역 시스템은 

체내에 항원을 투입해 기억 세포 작용을 유발하고,


이 과정에서 발열·구토·오한이 자주 동반되지만 

항체는 결국 완성되기 마련이다.


이후 유사한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이를 기억하는 면역 세포들은 

보다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대응해 침입자를 격퇴한다.



이 예시들은

삶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처럼 불편은 나쁘다는 통념과는 달리

오히려 고통은 우리를 쇄신한다.


살면서 겪은 시련과 고난은

육체에 기억의 형태로 새겨지고


이는 정신의 굳은살이 되어

유사한 상황이 닥쳤을 때 보다 효과적으로 방어한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아주 작은 불편도 감수하지 않는 세계를 묘사한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온기가 당연해진 사회,

어떤 질병도 아무 장애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


이곳엔 ‘소마’라는 알약이 존재한다.


먹는 즉시 온갖 불편,

이를테면 불안, 걱정, 아픔, 긴장, 우울, 실망, 낙담, 폭력성 등에서 해방된다.


모든 사람에게 이 알약은 균등히 배급되며,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항상 이를 소지한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은

'인내심'을 오히려 부적절하게 여기지만,


만성적인 인간성 결핍과

피상적인 관계의 혼란을 앓는다.




우리는 자주 기본값을 오해한다.


빛이 아니라 어둠이,

삶이 아니라 죽음이,

활동이 아니라 수면이,

식사가 아니라 공복이,

소리가 아니라 침묵이,


삶의 기본값인 것처럼,


안온이 아니라 불편이,

삶의 기본값이다.




적당한 고통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따라서 고통은 피해야 하는 적이 아니라

성장과 성숙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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