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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상록2 04화

평균의 종말

IQ 118

by 조융한삶




2015년 겨울, 웩슬러 지능 검사 4판의 15개 항목들이 나를 해부했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질문들과 씨름했고, 그 결과 118이라는 수치를 받았다. 이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언어이해와 작업기억은 높았지만, 지각추론은 낮았다. 나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능력들의 불균등한 집합체였다.


플린 효과를 고려한다면 지금의 나는 130을 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수학과 나 사이에는 '더욱 크고 견고한 벽'이 생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능력은 자라고 어떤 능력은 퇴화한다. 우리는 결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완의 텍스트다. 이처럼 평균주의는 허상이다. 평균이라는 개념은 폭력적인 추상이며, 개별 존재의 복잡성을 무자비하게 단순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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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주의의 기원을 추적하다 보면 놀라운 사실과 마주한다. 이 사상은 이상이나 공익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테일러, 손다이크, 골턴, 케틀레 같은 이들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저열한 야욕'에서 시작되었다. 을사오적이 그랬듯, 이들도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려는 욕망으로 인류를 규격화하려 했다.


그리고 이 사상은 산업혁명과 만나면서 '불길처럼' 퍼져나갔다. 공장에서 표준화된 부품이 필요했듯이, 사회도 표준화된 인간을 요구했다. 교육은 개성을 죽이는 도구가 되었고, 획일화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평균의 이상화


모든 나무의 수치를 평균 내면 가장 아름다운 나무가 탄생할까? 모든 개의 특징들을 평균화하면 완벽한 개가 나올까? 플라톤은 평균을 이데아라고 하지 않았다. '노르마'는 환상이다. 현실에 이상적 형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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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의 함정


마이클 펠프스가 축구를 잘할까? 파블로 피카소가 주짓수를 잘할까? 1950년대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떠올려보자. 쥐, 개, 돼지, 원숭이에게 무해했던 약이 인간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8만 명의 유산, 2만 명의 기형아. 하나의 영역에서의 우수함이 다른 영역의 우수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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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과 개인의 혼동


'서울대 범죄'를 검색해보라. 높은 시험 점수가 도덕성이나 인격을 담보하지 않는다. 서울대 간판은 하나의 명함일 뿐이다. 에르고딕의 오류. 집단의 평균으로 개인을 재단할 수 없다.






국가는 개개인을 예술가의 씨앗이 아닌 '튼튼한 톱니바퀴'로만 여긴다. 창의성은 위험하고, 예술은 가난하며, 가난은 불행하다고 세뇌한다.


평균주의 속에서 질식하지 않으려면 몇 가지가 필요하다. 적당한 이기심, 내면 목소리에 귀 기울일 용기, 외부 비교에 연연하지 않는 쿨함. 이런 조건들은 장착하기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몸에 두르고 자주 휘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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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평균주의에 맞서는 일은 자신을 '정확하게 사랑'하는 일이다.


완결된 답은 없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은지를 정확히 아는 것. 그리고 그 앎을 바탕으로 용기 있게 선택하는 것. 평균이라는 허상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말고, 자신이라는 고유한 텍스트를 끝까지 써내려가는 것. 끊임없이 질문하고, 끊임없이 선택하며, 끊임없이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것.


이 과정 자체가 이미 평균주의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반항이다. 그것이 우리가 평균주의라는 운명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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