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문법

by 조융한삶




라틴어는 죽은 언어라고 불리지만, 그 안에 담긴 관계의 문법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Salve"—안녕이라는 첫 인사부터 "Vale"—잘 가라는 마지막 작별까지, 라틴어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재는 정교한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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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카페에서 사람들을 관찰한다. 작은 테이블 사이로 흩어져 앉은 사람들, 각자 자신만의 스크린에 갇혀 있다.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는 사람, 웹툰을 보며 혼자 미소 짓는 사람,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를 듣는 사람들.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아니, 정확히는 같은 공간을 분할하고 있지만—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묘한 공존. 우리는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각자의 디지털 군도에 유배되어 있다. 현대인의 일상은 마치 "Solitudo"—고독이라는 단어의 어원처럼, 혼자 있음을 선택한 자들의 집합체다.


그런데 문득 누군가 의자에서 일어서다가 펜을 떨어뜨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목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연결이 일어난다. 고맙다는 인사, 괜찮다는 대답, 그리고 다시 각자의 침묵으로 돌아가는 짧은 순간. 그 찰나에 확인한다.


"Homo sum, humani nihil a me alienum puto"—나는 인간이니, 인간의 일이라면 내게 무관한 것이 없다는 테렌티우스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우리 안에는 여전히 연결을 갈망하는 무언가가 맥박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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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친해지는 과정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우연의 연속이었다. 같은 수업을 듣게 되어서, 교실 뒤쪽 자리에 나란히 앉게 되어서, 비가 올 때 우산을 함께 쓰게 되어서. 관계의 시작은 대부분 이런 우발적 접촉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연한 만남을 어떻게 필연적인 관계로 발전시킬 것인가.


이 지점에서 나는 자주 실패한다. 지나치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애쓰다가 부자연스러워지거나, 너무 성급하게 가까워지려다가 부담스럽게 만들거나. 관계란 참으로 섬세한 균형감을 요구한다.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면 소통이 안 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진정성을 잃지 않는 것. 마치 현악기의 조율과 같다.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라틴어의 격변화처럼, 상황에 따라 적절한 형태를 취해야 한다.






Otium, 혼자임의 생산성


혼자 책을 읽다가, 집에서 음악을 듣다가, 문득 누군가와 이 순간을 나누고 싶어진다. "지금 이 음악 좀 들어봐"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오늘 읽은 이 문장이 너무 좋은데" 하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면 나누어줄 것도 없다. 타인과의 관계에만 머물러 있으면, 나는 점점 얇아진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만 반응하며 살다 보면, 정작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놓치게 된다.


'Otium'—로마인들이 말한 생산적 여가의 시간. 단순한 쉼이 아니라 자신과 깊이 대화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만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Cogito ergo sum"—생각하므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충만해진 자아만이 타인에게 진실한 무언가를 건넬 수 있다.


24시간 연결된 세상에서 고독은 사치가 되었다. 잠시라도 혼자 있으면 불안해하는 현대인들. 하지만 관계의 깊이는 고독의 깊이에 비례한다. 내면의 우물이 얕으면 길어 올릴 수 있는 것도 얕다.






상처와 회복의 Pietas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상처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아무리 조심해도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별 생각 없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찢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그런 상처가 너무 깊어서 다시는 그 사람과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상처를 함께 겪어낸 관계가 더 단단해지는 경우도 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관계는 한 단계 깊어진다.


이것은 마치 일본의 금계(金繼) 기법과 같다. 깨진 도자기의 균열을 금으로 메우는 것. 상처 자체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것. 로마인들이 말한 'Pietas'—경건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신에 대한 경외만이 아니라, 상처받은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책임감.


물론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계는 끝내 회복되지 않고 서서히 멀어져 간다. 그런 이별을 겪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Invita Minerva"—미네르바가 원치 않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호라티우스의 말처럼, 관계라는 것은 두 사람이 동시에 원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일방적 사랑의 비극성. 그리고 그 비극성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사랑의 한 형태라는 것.






Sapientia, 나이 들어가며 배우는 것들


나이가 들수록 관계에 대한 내 기대치, 이해가 변해간다. 예전에는 친구라면 모든 것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모든 비밀을 알고,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어떤 부탁이든 들어줄 수 있어야 진정한 친구라고 믿었다. 완전한 투명성. 하지만 지금은 그런 완전한 관계가 불가능함을, 그리고 불필요함을 안다.


대신 나는 부분적 친밀감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어떤 친구와는 영화 이야기만 나누고, 어떤 친구와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만 나누고, 어떤 친구와는 깊은 고민을 상담한다. 각각의 관계가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고, 그 다양성이야말로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는 걸 이제는 안다. "Varius homo"—다양한 인간. 우리 모두는 복합적 존재이고, 따라서 복합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마치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다. 모든 꽃이 같은 방식으로 자라지 않는다. 어떤 꽃은 그늘에서, 어떤 꽃은 햇볕에서. 어떤 꽃은 매일 물을 주어야 하고, 어떤 꽃은 가끔씩만.


아마도 이런 깨달음이 '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가르침과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관계의 불완전성마저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완벽한 이해를 포기하고 대신 '다정한 오해'에 머무르는 것. 그것이 'Sapientia'—지혜라고 불리는 성숙한 관계 맺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Momentum, 연결의 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찾아오는 완전한 연결의 순간들이 있다. 대화를 하다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아, 이 사람이 내 말을 정말 이해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 함께 웃다가 "우리가 같은 걸 웃고 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듯한 그런 순간들. "Momentum"—'찰나' 라는 라틴어가 담고 있는 무게감.


이런 순간들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오래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주는 감동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Carpe diem"—'오늘을 붙잡으라.' 호라티우스의 말은 바로 이런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말라는 뜻일 테다.


이런 순간들은 별빛과 같다. 수십 광년을 여행해온 빛이 우리 눈에 닿는 순간, 그 별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빛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킨다. 관계에서도 그런 별빛 같은 순간들이 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여전히 우리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아마도 우리가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순간들 때문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그 기적 같은 순간들.






Communitas, 불완전한 연대


결국 나에게 관계란 서로의 고독을 나누는 일인 것 같다. 혼자서는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것. "Gaudium duplicatur cum socio"—'기쁨은 동반자와 함께할 때 배가 된다.'


완벽한 관계를 꿈꾸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 나는 불완전한 관계들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때로는 서로를 오해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실망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기를 선택하는 것. "Ubi amor, ibi dolor"—사랑이 있는 곳에 고통이 있다는 말처럼, 관계에는 언제나 상처의 가능성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는 연결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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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늘 변한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가 또 멀어진다. 그 변화무쌍한 거리감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고, 자신을 발견한다. "Nihil humanum a me alienum puto"—인간적인 것이라면 나와 무관한 것이 없다는 테렌티우스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완전한 만남은 불가능하지만, 그 불가능성 속에서 펼쳐지는 관계의 드라마가 삶을 살 만하게 만든다. 불완전한 연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다.

"Si vales, bene est"—'당신이 안녕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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