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
서점 진열대에 늘어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도파미네이션』, 『인스타 브레인』을 바라보며, 나는 더 이상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성인 평균 연간 도서 구매량이 한 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대. 그나마 구매한 한 권마저 완독하는 이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 완독했더라도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는 또 그 절반, 이해했더라도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이는 다시 그 절반이다. 이 잔혹한 편미분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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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선함과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리는 모두 선한 의도로 시작하지만 결국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 되어간다. 선함마저 자본이 되고, 도덕마저 상품이 되는 시대.
자본주의는 날로 정교해진다. 우리의 관심을 수확하는 기술은 점점 더 섬세해지고, 우리의 욕망을 조작하는 알고리즘은 점점 더 치밀해진다. 반면 우리의 집중력은 한없이 파편화되고, 독서량은 절벽의 폭포처럼 떨어진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나태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다. 3초마다 쏟아지는 알림 속에서, 긴 호흡의 문장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는 이는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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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카프카처럼 도끼를 휘두르지 않는다. 가느다란 손목은 더 이상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얼어붙은 바다는 더욱 두터워졌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자극들—숏폼 영상,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의 15초짜리 쾌락들—이 그 얼음 위에 새로운 층을 더한다.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미끄러지며 놀고 있을 뿐이다. 그 깊은 아래에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카프카의 도끼는 단순한 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뒤흔드는 충격이었다. 안전지대에서 우리를 끌어내어 존재의 근본 문제와 마주하게 하는 폭력적인 각성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도끼가 없다. 그저 부드러운 면봉들뿐이다. 눈을 즐겁게 하고, 귀를 간지럽히고, 순간의 쾌감을 주지만 결코 우리를 깨우지 못하는 것들.
사실 우리는 더 이상 깨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얼어붙은 바다 위, 이 안락함을 사랑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이 편한 상태를 즐긴다. 알고리즘이 대신 선택해주고, 추천 시스템이 대신 판단해주는 세상에서 우리는 마침내 자유로워졌다. 자유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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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순진한 환상을 품지 않는다. 대신 이 세상 속에서 나만의 작은 도끼를 벼린다. 독서하고, 사유하고, 글을 쓴다. 이것이 내가 택한 저항의 방식이다. 거창한 구호도, 화려한 투쟁도 아닌, 조용하고 은밀한 내면의 투쟁.
자본이 나를 소비자로 만들려 할 때 독자가 되는 것, 알고리즘이 나를 조종하려 할 때 사유하는 주체가 되는 것. 비록 그것이 바다에 던진 편지병과 같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