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첼라 Mar 31. 2017

라트비아행 선택이 후회되었던 계기

내가 왜 작아져야 할까?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대화하다 보면 그 사람이 사는 동네 / 다니는 회사 / 졸업한 학교로 그 사람을 일부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외국에서 살던 나는 '살고 있는 나라' 로도 종종 판단받는다고 느꼈다.


그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스웨덴에서 인턴을 할 때 늘 부러움을 받았다.


- 어머 살기 너무 좋죠? 진짜 부러워요~

- 잘 즐기다 와요!


라는 말만 들었지, 내가 왜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며, 스웨덴에서 인턴을 하는지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누가 봐도 좋은 환경에서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라서 그랬을까?


그러나 나는 라트비아에서 많은 질문을 받아야 했다.


입국 당일 우울했던 라트비아의 첫인상과 달리 나는 그래도 라트비아에서 잘 적응을 해가고 있었다.

4월이 되면서 라트비아에도 봄이 찾아오고 회색빛 도시에서 초록초록 생기 넘치는 도시가 되어가는 걸 보며 내 마음도 들떴다. 동시에 주변 국가들에 일하는 선배들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놓았던 터라 여행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하루가 행복하다는 증거가 자기 전에 누웠을 때 그 어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당시의 나는 자기 전에 누웠을 때 생각나는 어떠한 잡념도 없었다. 회사에 가서 새로운 일을 배우고, 돌아오는 길에 노래 들으며 공원 산책하고, 집에 와서 요리를 해서 밥 먹고 와인 마시며 예능 보다가 잠들면 됐다. 편안하고 또 편안했다.


이랬던 내가 라트비아가 잘못된 선택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된 건 라트비아를 방문한 출장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한국 회사인지라 한국으로부터 늘 출장자들이 많았다. 5월이 되면서 본사에서 기획팀에 출장자만 8명이 넘게 다녀갔다. 아무래도 한국인이 희귀한 법인에 새로 뽑혀왔던 터라 그런지 오시는 분들마다 나에게 말을 걸고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스웨덴 법인에서 인턴을 하다가 면접 봐서 오게 되었어요!라고 해도 나의 대답은 여기에 온 이유로 충분하지 않았다.


- 아니 왜, 스펙을 들어보니 잘 하면 본사 입사도 가능했을 거 같은데.. 왜 라트비아로 왔지?


하는 물음을 들었을 때는 

아.. 라트비아 같은 작은 나라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한국 사회에서 살기에 스펙이 부족해서 나온 것 같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괜스레 주눅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의 나는 막 사회 초년생이었고 대기업 입사한 동기들이 모두 페이스북에 회사 로고 사진을 올리던 때라 그런 문제에 쿨하지 못했다. 왠지 나는 본사라는 정문이 아닌, 라트비아라는 옆문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그 일이 있던지 얼마 안돼서 나는 전 유럽 법인을 상대로 하는 교육에 참여했다. 모든 법인의 기획팀이 참석한 자리였다. 나는 당연히 질문을 받았다.


- 왜 라트비아 갔어요? 생활하기 어때요?


뭐 살만해요 심심하긴 한데... 평생 살 곳 아니니까 그냥 있는 동안 즐기고 있어요. 그리고 전 하도 여행 다녀서 라트비아에 잘 없어요

라고 대답해도 나를 향한 안타까운 질문들은 계속되었다.



- 으앙 전 라트비아에 살라고 하면 도망갈 거예요. 전 못살아요. 왜 거기 갔어요?

라고 얘기했는데... 이때는 좀 기분이 나빴다. 그 말을 한 사람과 나를 1:1로 비교해보면 전혀 내가 부족한 점이 없는데, 마치 내가 후져서 후진국에 사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동정과 위로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만나는 한국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들으며 나는 차츰 내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업도 처음, 라트비아도 처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