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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Jan 25. 2023

18.01.2023

리옹에서



오늘 리옹에서 보낸 저녁 시간은 환상적이었다. 오르간 연주회라는 흔치 않은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거기에 소프라노와 코르넷을 더한 합주는 모르긴 몰라도 당첨 확률이 매우 낮은 기회일 것이다. 연주회를 활짝 열어젖히는 바흐의 프렐류드, 연주자의 선명하고 자유로운 손가락놀림 (거기에 발놀림까지)으로 재현되는 바흐의 화려한 오르간 곡은 압권이었다. 소프라노가 솔로몬의 아가서를 가사로 더할 때에는 나도 그 내용을 좀 알기에 일종의 음악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강하면서도 다정하고, 집요한 설득이 부드럽게 납득되는 그런 일방적이지만 완전히 연결된 의사소통을. 어째서인지 하나도 아이러니하지 않은 음악적 모순을 상상하며 두 손 들고 얌전히 감상했다. 코르넷! (뿔피리처럼 생긴 주제에) 이렇게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을 거는 악기가 있던가. 소프라노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보조하며 마치 듀엣으로 노래하듯 하나가 된다. 연주가 끝날 때 옆에서 기존 현악기 파트를 금관악기 파트로 바꾸어 연주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며 칭찬을 하는 것을 귀동냥으로 들으며 속으로 끄덕였다.


초대에 이끌려 엉겁결에 옆자리에 앉았던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사실은 오르간으로 최고 권위자이자 으뜸가는 교수님이라고 한다. 이 분이 연주회가 시작하기 전에 이 공간이 본래 수의학과 해부학 교실이었다고 귀띔해 주셨다. 시간에 따라 모든 게 변한다지만 음악은, 예술은, 그것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영원히 예외이려나 싶다. 시민 혁명 이후에 고전 음악의 설 자리를 뺏은 것도 그걸 다시 살려내 재부흥을 주도 한 것도 프랑스 사람들 아니던가.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던 공간에서 오르간을 제단 삼아 신을 찬양하는 공연장으로 변모한 이 작은 방과 빼곡히 모인 사람들에 대해서 그곳을 빠져나온 뒤에도 한참을 생각했다. 변두리 출신의 (광명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내 감상이 나도 당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대나무 숲에 소리 지르듯 고전 음악을 향한 짝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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