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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톨 Jan 29. 2017

소소한 자랑거리

가족에게나 이야기할 법한 자랑거리가 생긴 캐나다살이

떠벌려 말할 거리는 아니고 가족에게나 이야기 할 법한 자랑거리들이 생겼다.




# 두 번째 학원생활


1월 둘째 주부터 새로운 학원생활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또 많이 만났다. 대부분 나보다 적게는 2-3살에서 많게는 11살까지 어린 친구들. 그들과 지내면서 황당한 순간도 많았지만 매일 재미있는 사건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까지 내가 느낀 캐나다는 의외로 보수적인데, 그래도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가득한 영어학원이라는 곳을 통해 새로운 부분을 경험하게 된다. 아, 이렇게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구나.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내가 언제 발랄하게 춤을 추며 돌아다니는, 삼성 부사장의 소식을 나보다 더 잘 아는, 남미의 10대 소년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그 애에게 농담 섞인 질문을 할 수 있겠나. 또한 무엇보다 느슨해져 있던 의지와 애살(?)이랄까. 그런 것들을 다시 발견하고 꽉 붙들어매는 시간을 보냈다. 클래스에서 나이로는 제일 많은 축에 들어갔는데(더 많은 일본 친구가 1명 있긴 했다) 워낙 막내였던 시절이 길어서 이렇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내 나이가 주는 여유를 느끼게 된 것 같다. 잘 못해도 웬만한 것들에 부끄러움 없이 참여할 수 있다. 또 다른 학생들이 하는 귀여운 실수를 허허-하고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다. 마치 선생님이 된 심정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어울림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다. 어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졸업하는 날이었고 졸업을 기념하며 반에서 가장 많은 발전이 있었던 학생 1명에게 주는 'Student of the Month'라는 상장까지 받았다. 딱히 자랑하고 뽐낼 수 있는 곳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내 고민의 결과로 만난 작은 한순간의 흔적을, 나중에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트위터에, 퇴사를 하고 아쉬운 것 중 하나로 금요일 퇴근 후의 짜릿함이 극적이지 않다는 뉘앙스의 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학원에서 발표를 한 다음날 그 비스름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기도 했고.




# 한국에서 온 연하장


오늘 이곳은 음력 1월 1일, 한국의 설날이지만 차이나타운에 가지 않으면 아무런 들뜬 기분도 느낄 수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하루다. 회사에서 친했던 선배 두 분으로부터의 연하장을 받았다. 그것도 국제우편으로! 가장 오래 있었던 팀에서 같이 지낸 분들이다. 돌아보면 그 팀에서 나름 힘든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속마음을 어느 정도 터놓을 수 있는 인연을 만나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가족 외에 회사 내에서 퇴사를 곧 하겠다는 마음까지도 공유한 유일한 분들이었으니. 그때마다 본인들이 몇 년 전에 느꼈던 것들, 그때 저지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약간의 후회 섞인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회사일이 엄청 바쁨에도 불구하고 출근 전 혹은 퇴근 후 무언가를 부지런히 준비하고 공부하는 모습에 후배로서 아주 많이 반성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가능하면 회사 외의 분야에서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작년 봄쯤엔 각자 자신의 다짐을 담은 편지를 꽁꽁 밀봉해서 서로 보관한 후 1년 뒤 돌려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이번에 연하장과 함께 내가 쓴 그 편지까지 보내주신 것이다. 편지를 쓸 당시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 내가 그때 생각하던 것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퇴사를 하면 무적인간이 될 것만 같았으니), 그 두 가지 이유로 차마 곧바로 열어볼 수는 없었던 편지. 심호흡을 잠깐 하고 열어보았다. 물론, 이룬 것도 있고 이루지 못한 것도 있다. 그래도 몇 년 간 매번 똑같은 다짐과 결과가 반복되었던 계획표에 쉼표를 찍고 전혀 다른 이력을 채워넣게 되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위로를 건네본다. 연하장에서 선배가 해준 이야기처럼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조금 더 달려가기를 바라면서.




# 친구


꽤 친한 친구들도 생겼다. 지난번 학원에서 사귄 친구들이다. 이번주엔 그중 한 명인 멕시코 친구 집에 초대되어 정통 멕시칸 요리를 먹어보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외국인이지만 같은 밴쿠버라는 곳에서 비슷한 고민을 나누며 살아간다. 그때마다 참 신기하고 알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을 느낀다. 멕시코 친구는 남편도 함께 이곳에 공부하며 일하러 와 있고, 일본 친구는 아주 최근에 캐네디언과 결혼을 해서 정착을 해야하는 상황이고, 나는 또 머지않아 한국에 돌아갈 예정이니, 생각해보면 엄청 다른 배경이지만 우리 모두는 "멕시코에는, 일본에는, 그리고 한국에는 언제 돌아갈 예정이야?"라는 질문에 언제라고 쉽게 대답할 수 없다. 그저 한숨 한 번 쉬고 크게 웃을 뿐. 심지어 나를 제외한 두 친구는 돌아갈 일이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답변도 하기 어려워 한다. 이렇게 어딜 가나 20대와 30대는 여전히 흔들리는 청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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