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생활을 하며 돈을 받고 일하는 것 외에 남들이 해본다는 건 한번씩 다 해보고 있다. 신선한 경험이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밴쿠버 발룬티어 이야기.
발룬티어에 지원했다. 지원서에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다"라고 쓰고는 막상 오리엔테이션을 하러 오라고 하자 엄청 불안해했고 오리엔테이션에 가서도 한국인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한국인은 없었지만 다행히 같은 팀에 어학공부를 하러 온 일본인 대학생들이 몇 있어서 의지가 됐다. 그리고 20,30대 일색인 한국의 발룬티어 현장과 달리 장년층도 아닌 노년층으로 보이는 지원자들이 많아서 긍정적인 의미로 한 번 놀라고.
발룬티어를 구한 곳은 Go volunteer(http://www.govolunteer.ca/volunteer-opportunities)라는 사이트로, 캐나다에서 발룬티어를 지원하고 선발하는 플랫폼이다. 밴쿠버, 토론토 등 도시뿐만 아니라 우편번호를 입력해서 더 세부적인 지역까지 지정할 수 있고, 구체적인 시기, 원하는 포지션까지 설정해서 검색할 수 있다. 최소 한 주에 1-2개씩의 행사는 맞물려있는 듯하니 언제쯤 참여하고 싶은지 결정한 후 2-3주 전쯤 체크해보고 지원하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지원한 곳은 사이언스 월드라는 전시회장에서 진행되는 'Science of Cocktails'이라는 행사였다. 규모가 꽤 있는 행사이자 집도 가깝고 가장 중요한 일정이 나와 딱 맞았기 때문에 (사실 그저 쉬고 싶은 마음에 지원 전까지도 고민을 백만 번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좋은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지원하게 되었다. 우리말로 대충 이해를 해보자면 과학 전시회장에서 열리는 칵테일의 과학(?)에 대한 행사니까 당연히 아이들을 위한 교육적인 내용이 가득할 줄 알았다. 그때 추측만 할 게 아니라 조금 더 알아봤어야 했는데.
규모가 꽤 큰 행사이다보니 역할도 미리 지정해서 지원할 수 있었다. 칵테일 행사라서 바텐더 어시스턴트와 같이 흥미로운 역할도 있었다. 그중 나는 '코트 체크'라는 서비스를 맡는 발룬티어에 지원했다. 언어적인 측면에서나 노동의 강도 또한 부담이 없을 것 같은, 정말 마음 편히 즐겁게 할 수 있는 활동일 것 같았고, 비슷하게 한국에서 발룬티어 할 때 사람을 맞이해 본 일이 있어서 지원서를 쓰기에도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역할과는 다른 거였으니.
작년에 이어 2회째 개최되는 행사인데 입소문이 났는지 1,400명분의 티켓이 이미 일주일 전에 매진되어 소위 예매 시부터 대박이 난 행사였다. 그리고 코트 체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섹션을 마치 특별 서비스와 같이 홍보하고 있었다. 맡기고 싶은 사람만 맡기는 선택적인 서비스가 아니라 누구나 와서 이 서비스를 누리며 분위기를 내세요! 라고 홍보한 것이다. 그래서 의미 있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아닌지 의심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바쁜 시간을 보냈고 아무리 좋은 행사라고 해도 이 정도면 일당을 받고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알고 보니 행사 자체는 교육이 아니라 손님들이 칵테일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 1차 목적이었다. 모두 연말 시상식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의상을 입고 와서 칵테일을 즐기고 춤을 췄다. 칙칙한 까만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똑같은 옷만 돌려 입고 살아가는 나와 너무 비교 되어 급격히 초라함을 느꼈다.
칙칙한 겨울날씨 속 밴쿠버에 숨어있던 캐네디언들을 짧은 시간 내 다 본 것만 같다. 몇 시간 동안 외쳐야 했던 인사와 안내멘트가 익숙해졌고, 또 작은 주제로 시작한 행사가 이렇게까지 성대할 수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어쩔 수 없는 약간의 씁쓸함이 따라왔다. 행사가 자정에 끝나서 집이 먼 학생들은 사비를 들여 다운타운에 호텔을 예약했다고 했다. 그저 사이언스 월드 입장권 하나를 받아들고 돌아가면서, 나는 무보수로 일만 하러 이 활동에 참여한 것일까? 하는 느낌이 들게 한 자원봉사라면 이제 더는 안해도 되지 않을까. 발룬티어 또한 함께 만들어가고 즐길 수 있는 행사였다면 더 좋았을텐데. 시간이 지나 칵테일을 마시고 한껏 취한 손님들에게까지 웃으며 응대해야 해서 좀더 씁쓸했다.
행사를 통해 얻은 이익은 결국 사이언스 월드의 다른 전시나 교육에 사용하게 되니 본질적인 행사의 목적은 사적이지 않았던 셈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여 기금을 조성하고 그 기금을 좋은 일에 사용하는 것이 이 행사의 취지였다. 그러나 그 부분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면, 발룬티어 또한 다양한 활동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다음에 발룬티어에 참여하게 된다면 내 노동의 의미가 좀더 와닿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파트타임 잡이 아니라 발룬티어이지 않나. 아무래도 나는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느낌이 들어야 고개를 끄덕이며 귀가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