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회사를 다니지 않는 요즘도 금요일 저녁 시간이 가장 좋다. 그리고 그 다음이 토요일 낮 시간 정도. 지금이 바로 토요일 낮이다. 집앞 30초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달달한 라떼 하나를 사 들고 다시 집에 돌아와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참 평화로운 시간이다.
이번 달엔 수업을 9시 30분에 시작해서 지난 달보단 여유가 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도 견딜 만하다. 심지어 요즘은 학원에 일부러 10-20분씩 더 일찍 가기도 한다. 남들보다 일찍 도착해서 물병에 물을 가득 채워온 후 그날의 계획을 다이어리에 정리하는 혼자만의 아주 짧은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그래, 바로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또는 무언갈 생각해도 되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
훨씬 빡빡한 생활을 했던, 회사에 다니던 그 시절엔 이런 시간이 너무도 간절했다. 하지만 부족한 잠을 핑계로 일찍 일어나는 것도 잘 못했고, 덜컥 다른 일을 맡게 될까봐 남들보다 먼저 회사에 도착하는 것도 잘 못했다.
그래서 결론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지금이 참 소중하다는 것이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씩 아껴가며 서글퍼하는 중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
새로운 곳에서 생활을 시작할 때 기대하게 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만나는 사람의 출신과 배경이 어마어마하게 다르다는 것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일 테고, 그외에도 한국에서의 나는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이었다면 지금은 돈을 내며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기 때문에 피할 수 있는 관계는 적당히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겠다.
허나 이러한 부분은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얻거나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점은 한국에서나 여기에서나 똑같다. 뜻대로 되는 것이 없더라.
이곳에서 사귄 가장 친한 친구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깊이 공감해서 나도 근래 모든 기운을 쏟아버렸다. 그럼에도 낯선 밴쿠버에서 처음 이 친구를 만나 안정감을 얻고꿈꾸던 생활을 어렴풋이 실현하고 외국인 친구들과 공부 비슷한 것들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던 그 시간을 생각하면서, 조금 힘들지만 내색하지 않고 지냈던 시간이 어언 몇 주.
다행히 반이 바뀐 학원에서 새로 만난 친구에 의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스페인에서 온 남자아이였는데 출신은 다르지만 우리는 동종업계에서, 나는 4년, 그 친구는 5년 일을 했고, 엔지니어가 대부분인 우리의 회사에서 둘다 엔지니어가 아니었다는 것을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더 반가웠던 것은 내가 궁금해하는 것 이상으로 그 친구가 나에 대해 궁금해하고 많은 질문을 해주었다는 것. 한창 위로하는 일에 지친 때에 다시 누군가와 교류를 시작할 수 있어 기운을 얻은 하루였다.
이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내가 노력할 수는 있지만 전적으로 내게 달려있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나 좋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가까워지고 혹은 멀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그날의 상황과 운과도 많이 엮여있었다.
매일 새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고 언제든 반짝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일희일비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한 지 며칠 째. 하지만 나는 새 친구를 만난 날 결국 '일희'한 셈이고, 그 친구가 이번주 내내 결석을 하고 영문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다시 '일비'하고 말았다. 깨달음만 주고 사라진 그 아이. 이름도 Jesus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