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계속 눈을 못 보는 것 같아서. 그게 억울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건물에서 내뿜는 불빛도 거슬려 블라인드를 촘촘히 내렸던 내가 블라인드를 걷고 잔다. 걷어 놓고 보니 작년 겨울, 창문에다 그려 놓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인다. 녹색 나뭇잎 위에 소복이 쌓인 흰 눈 그림이 선명하다.
나는 눈을 좋아하고, 첫눈을 더 좋아하고, 그것들이 주는 설렘과 로망을 좋아한다. 비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오지만 눈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그래서 특별한 날이 되고 (오늘은 눈 내린 날 같은) 특별한 핑계가 되고 (예를 들면, 눈이 와서 늦었어! 눈이 와서 전화했어 같은) 특별한 위안이 되기도 하는 게 좋다. 눈 내린 거리에 해가 뜨면 여느 때보다 눈이 부시다는 것도. 땅에 반사된 햇빛이, 걷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환히 밝히는 것도 좋다. 그 거리에 내가 섰을 때는 더 좋고. 그 거리에 서서 지인의 얼굴을 마주할 때 더 예쁘게 보이는 것이 근사할 정도다. 조심히 걷느라 걸음걸이가 조금 달라지고 느려지는 것도 얼마나 특별한가.
그래서 그런 눈 좀 보려고 블라인드를 걷는다는 게. 걷어내고 평소 싫어하던 먼발치의 빛도 감내해보겠다는 게. 눈은 빛을 담고 있구나, 새삼 생각하게 된다. 진짜 상징적이지 않냐. 혼자 그렇게 중얼중얼. 눈이 금방이라도 내릴 것 같다.
2019년 12월 5일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