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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다고래 Sep 18. 2023

치대 앙깨우 호수와 파얍 음대

대출은 많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어쩌다 앙깨우 호수에 가게 된 것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산책을 얼마간 못 했다는 것을 불현듯 떠올리곤 산책할 만한 곳을 찾아갔을 확률이 높다. 또 물이 없는 치앙마이니 단순히 물을 보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어느 날 나는 앙깨우 호수에 갔다. 숙소에서 앙깨우 호수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가 걸린다. 치앙마이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을 법한 자취촌을 가로질러서 가는 길이었다. 태국어 간판과 로컬 식당과 빨래방과 수많은 방이 있는 건물과 나무가 빼곡했다. 후문을 통과해 들어가자 이번에는 더 오래되고 큰 나무들과 교실로 가득한 건물들이 나타났다. 아주아주 오래된 식물원을 보는 것 같았다. 낡고 벗겨진 흰색 페인트칠을 한 건물보다는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살아온 생명체만이 가질 법한 진한 초록이 사방에서 눈길을 끌었다. 하늘을 똑바로 바라볼 만큼 고개를 쳐들어야 그 끝이 보이는 나무들을 치렁치렁한 줄기 식물들이 감싸고 청량한 야자수가 군데군데 숨어 있었다. 캠퍼스 안에서 앙깨우 호수를 가는 길이 제법 되었는데도 오랜만에 스크린 대신 하늘, 나무, 꽃을 본다는 이유만으로 덥기보다 즐거웠다.


 사진으로 익숙하게 봤던 입구에 도착하자 상상했던 것과 달리 중국인 관광객이 가득 차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잔잔한 호수와 우거진 숲을 조용히 즐기며 쉬고 싶었는데 어쩐담. 다행히도 그들은 정말 입구 근처에서 사진만 찍고 앙깨우 호수를 빠르게 떠났다. 아주 조금만 걷기 시작하면 학생들이 유유자적 걸어 다니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해가 질 때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앙깨우 호수에는 작게 조류 관찰 지역이 있다. 곶처럼 호수의 약간 튀어나온 부분인데, 건너편 호수도 더 잘 보이고 잔디며 나무도 모두 예쁘게 가꿔져 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벤치와 가로등도 여럿 있어서 해가 넘어가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잔물결과 오가는 새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나는 거기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나무와 새는 물론 매일 같은 코스를 달리는 러너들, 교복을 입어서 더 앳되어 보이는 학생들을 구경했다.


 김영하 작가가 여행의 이유에서 그랬던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여기저기 묻어있다고. 나는 엄청나게 대단할 것은 딱히 없는 앙깨우 호수를 바라보며 여기가 아무 상처도 없는, 나의 쉴 공간이었나 보다 생각했다. 몇천 킬로를 날아와 우리나라 어딘가에 있을 법한 풍경을 보고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미지근해진 생수를 마시는 것이 내가 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하고 싶었던 일이었나 보구나 하고 내 마음을 도닥도닥거려 주었다.


 치대를 갈 때마다 포근한 기분이 너무 좋아서 치앙마이에 있는 다른 대학교 캠퍼스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파얍 음악대학을 알게 되었다. 치앙마이는 각종 라이브 뮤직바와 재즈바가 즐비한데 태국 친구에게 왜 그런지 물어보자 아마 원래 예술가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고 3대 명문 음대 중 하나가 여기 있는 것도 영향이 있을 거라고 했다. 바로 다음날, '파얍'으로 향했다. 물론 잘못된 파얍으로 갔다. 파얍 음악대학으로 가야 하는데 파얍으로만 가면 되겠지 대충 생각하고 파얍 대학으로 간 것이다. 참고로 같은 파얍이라고 해도 캠퍼스가 멀리 떨어져 있다. 차를 타고 가야 할 정도로 멀다. 그러니 혹시나 가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지도에서 꼭 음대인지 확인하셔야 나처럼 낭패를 보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파얍 대학에 도착했는데 마침 토요일이기도 해서 학교는 말 그대로 텅텅 비어있었다. 아무리 주말이어도 보통 학생 몇 명쯤은 돌아다니기 마련이지 않나? 이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구경이나 하자 싶었지만 얼마 못 가 불구덩이 같은 날씨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오토바이를 불러 탈출해야 했다.


 여차저차 이번에는 진짜 파얍 음대에 도착했는데, 나는 여기서 2차 당황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당황한 이유를 설명하려면 파얍 음대를 알려준 친구와의 대화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실은 그때 태국 전체에 음대가 딸랑 3곳만 있다고 들은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서 '태국 전체에 3개밖에 음대가 없다고? 너희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음대는 3곳밖에 없다고?' 재차 물었다. 친구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대화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저러나 전국에서 3개밖에 없는 학교라길래 엄청 웅장할 줄 알았는데 너무 소박했다. 이게 뭐지? 이 낡고 오래된 건물 하나가 바로 그 어마무시한 파얍 음대인 것인가. 어리둥절하지만 일단 기사님께 돈을 지불하고 단대 건물 앞 자판기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음, 재미있는 날이군, 사진이라도 좀 찾아보고 왔으면 이렇게 당황스럽진 않았을 텐데 정말 너다운 일을 했구나. 2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산책을 해야 하나 눈동자만 굴리고 있던 차에 하교하는 학생에게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여기가 파얍 음대가 맞나요? 태국에서 3곳밖에 없다는 음대 중 한 곳이 맞나요?" 학생이 더 당황하는 것 같았다. "태국에서 3곳밖에 없다고요? 아니에요, 훨씬 많아요." 내 얼굴이 혼란 자체였음이 분명했다. 친구와의 대화를 복기해 보며 당혹스러워하는 나를 보자 학생은 무언가 더 설명해주고 싶어 했으나 우리 사이의 언어 장벽은 너무나도 높고 단단했다. 입안에서만 맴도는 단어들로 힘들어하는 그녀를 조용히 보내주었다.


 전국에서 3곳이든 전 세계에서 3곳이든 일단 더워서 기절하기 직전이니 자판기에서 뭐라도 마실 심산으로 거북이가 그려진 화면을 보았다. 오, 영어가 없구나. 콜라 하나 먹으려는데 생각보다 선택해야 하는 옵션이 많았다. 슬러시로 먹을 것인지 얼음의 유무, 빨대가 필요한지 등을 골라야 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그 나라의 언어를 아는 것은 꽤나 중요하다. 메뉴에 사진이 없고 약 올리며 재촉하는 듯한 거북이만 화면에 둥둥 떠다니면 그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다. 어쨌든 거북이는 내게 빨대 없는 콜라 슬러시를 주었다. 헛웃음을 지으며 자판기 옆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슬러시를 들이켰다. 요가 가기 전 없는 시간을 짜내고 지금까지 지내면서 이동한 곳 중 가장 비싼 택시비를 지불하며 온 곳이니까 천천히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를 나가라고 할 사람은 딱히 없어 보였다. 관광객이 올 곳이 아니기에 외국인 1은 딱 봐도 학생으로는 안 보이지만 나만 철판 깔고 다니면 그만인 것이다. 녹아내리고 있는 콜라 슬러시를 들고 2층으로 어슬렁 올라가 보았다. 나보다 오래된 것 같은 창문 사이로 나뭇잎이 드리워져 있었다. 2층을 다 올라가니 입구에는 암막이 쳐져 있는 문이 양쪽으로 보이고 그 앞에는 학생들의 신발이 어지럽게 벗겨져 있었다. 악기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있었구나. 대학을 두 개나 다녔으나 학생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곳은 유추가 되지 않았다. 우측으로 꺾어 힐끗 보자 리사이틀 홀이 보였다. 호기심에 복도를 따라 들어가자 방음실에 모여 연습하고 있는 학생들과 마주쳤다. 피아노, 첼로, 드럼을 혼자 진중하게 연습하거나 바닥에 다 같이 누워 악보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좌측 복도는 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두웠는데 개방형인 복도 끝은 나무로 우거졌다. 건물 밖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나뭇잎이 가득하니 꼭 초록이 터져 나오는 것만 같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홀린 듯이 터널 끝을 향해 걸어가자 벽에 걸린 졸업사진에서 재즈바에서 봤던 뮤지션의 얼굴도 찾을 수 있었다. 아, 여기가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재능들이 배출된 곳이구나. 화려하지 않아도 안 예쁜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곳이 구석구석까지 못내 더 사랑스러워졌다.


 매일 밤 듣던 뮤지션들의 모교에서 반짝이는 오후의 햇살과 붉게 타들어가는 노을을 보는 것이 왜 그리도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오래도록 그런 매일의 풍경을 보고 친구들과 바보 같은 농담을 하고 찌질한 연애를 하며 눈물짓고 술을 거하게 마시고 숙취에 시달려 보고도 싶었다. 그전까지는 단 한 번도 힘들고 우울했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뜬금없이 태국 여행을 하다가 남의 학교에 가서야 그런 마음이 든 것이다. 걱정은 조금만 덜 하고 조금만 더 신나게 그 어리고 여리고 아리고 어여쁜 시절을 보내고 싶다고 간절하게 소망했다. 그래봤자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곧 시작할 요가 수업뿐이었지만.


 아무리 자주 간다고 해도 시간을 거슬러 갈 수는 없지만 이후로도 여러 날 치대와 파얍 음대에 돌아갔다. 거기에서 빛이 사그라들며 어둠이 내려앉는 것도, 비가 쏟아져 큰 나무들 아래로 숨어드는 사람들의 얼굴도, 공놀이를 좋아하는 개와 그보다 더 공놀이를 좋아하는 견주들이 햇살 사이로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았다. 매번 같은 경로로 러닝을 하는 사람들도, 같은 방음실에서 연습하는 학생들의 진중한 미간도, 건물 뒤편에서 농구공을 튕기던 남학생 무리도 보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에도 치대의 앙깨우와 파얍 음대에 갔다. 왜인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게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편안했던 공간 중 하나였다. 다시 치앙마이를 돌아가도 아마 참지 못하고 한걸음에 달려갈 것이다. 물가까지 그늘을 한참 드리우는 커다란 나무들과 그 사이에 숨어있는 새들과 멀리서 뛰어다니는 개들을 보고, 잔잔하게 들리는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방음실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연주를 가만히 듣고 싶다. 어쩌면 그것으로 다시 돌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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