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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경민 Jun 23. 2019

#42 시인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사진은 무엇인지. 이런 질문의 대답을 찾기 위해 여러 책을 살펴보다가 단서를 얻을 수 있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시인 이성복 선생님의 아포리즘 시론이 정리된 책 <무한화서>입니다. 인상 깊은 구절입니다.

47. 100
시의 에너지원은 세속이에요. 평범한 일상에 공포가 언뜻언뜻 묻어날 때가 좋아요. 알 듯 알 듯하다가 끝내 모르는 이야기. 어떤 보상도 희망도 없고, 언제나 막막한 자리, 어제도 내일도 그 자리!
54. 122
잡생각은 가장 그 사람다운 생각이고, 진짜 인생이에요. 그 안에는 꿈과 사랑, 욕망과 희망이 다 들어 있어요. 잡생각의 채널에 접속하고 나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잡생각이라는 것조차 없어요.
57. 132
예술이 하는 일은 특징적인 세부를 통해 전체를 복원하는 거예요. 혹은 어떤 평범한 세부도 특징적인 세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60. 140
사소한 것은 운명이에요. 별것 아닌 이미지를 쌓아두면, 그 안에서 주제는 자연히 흘러나와요. 나선 안에 직선이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60. 141
시를 쓸 때는 스냅사진 찍듯이 하세요. 증명사진은 엄숙하고 힘이 들어가 있어서 감동이 없어요. 성을 공격할 때 정문으로 쳐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61. 142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명함판으로 봐야 무슨 애틋함이 있겠어요. 스냅사진에는 한 개인의 내밀한 순간이 들어 있지만, 명함판 사진은 곧 버려질 사회적인 가면일 뿐이에요.
61. 144
손에는 얼굴보다 더 많은 표정이 들어 있어요. 얼굴이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손은 진실을 말해요.
64. 151
신기한 것들에 한눈팔지 말고,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세요. 중요한지 아닌지 생각도 안 해본 것들에 대해 쓰세요. 질문 자체가 답이에요. 어떤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에요.
73. 180
무엇보다 주파수를 맞추세요. 그러면 잡음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요.
82. 201
우리는 어차피 다 망하게 되어 있어요. 그 사실을 자꾸 상기시켜, 어쩌든지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을 어쩌든지 불편하게 만드는 게 시예요.
95. 240
시인은 입을 닫고 보여주기만 할 뿐이에요. 입을 열더라도 헛소리만 할 뿐, 계속 딴전을 피워야 해요. 독자가 이해하는 순간, 시는 죽어버려요.
101. 256
항상 거꾸로 가야 해요. 시는 희미한 것을 뚜렷하게 하고,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고, 같은 것을 다르게 하고, 없는 것을 있게 해요. 지금 나는 ‘살아 있다’ 하는 대신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세요. ‘희망은 절망이다’라고 말하고 나서, 그것을 증명하는 게 시예요.
103. 261
모호한 게 제일 정확한 거예요. 왜? 인생은 본래 모호하기 때문이에요.
120. 307
시는 알고 쓰는 게 아니라, 쓰는 가운데 알게 되는 거예요.
129. 330
시보다 시작노트가 좋은 경우가 많아요. 시 쓸 때는 시작노트 쓰듯이 하라는 말도 있지요. 쓴다는 의식이 있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부자연스러운 말을 하게 돼요.
151. 390
진선미는 대칭을 기본구조로 해요. 완벽한 대칭은 죽음이고, 생명은 대칭이 깨어지면서 태어나요. 그렇다면 진실도, 올바름도, 아름다움도 인간의 몫은 아닌 듯해요.
154. 401
시의 아름다움은 말 자체가 아니라, 말하는 방식에 있어요. 시는 자세예요. …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건 아름다운 자세밖에 없어요.

이성복 선생님의 시론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서로 닮아 있구나. 고민은 늘었지만 그만큼 정의도 넓어졌습니다. 배움은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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