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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우 May 20. 2023

성인용품 가게를 지나다가

중년의 부끄러운 밤은 또 온다네

<poem_story>


돌팔매질 한 번이 미끄러지며 물수제비를 수십 개를 만들 듯, 준희라는 친구는 괜찮은 사업아이템이 있다며 대기업 부장직으로 명예퇴직 한 후, 10여 년 전부터 시작한 사업이 수십 개의 물수제비를 만들어내 듯 쑤욱... 쑥 성장했다.


준희는 사업이 바빠져 일에 치이고, 시간에 허덕일 때도 가끔 전화를 해와서, 밥 먹자, 술 먹자고 했고, 서로가 만취해 자리를 파(破) 할 때쯤, 오줌 누고 오께 또는 휴대폰 벨도 울리지 않았는데도 전화를 받고오께, 담배 한 대 태우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울면 안 되는 우리에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되어 밥 값, 술 값을 미리 계산해 주는 선물을 놓고 갔다.  

 

남자의 알량한 자존심 운운하며, 먼저 계산한 사실을 지적질하면, 준희 친구는 "야!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너네들 보다 지금 쪼금 더 형편이 좋으니 계산했다. 내가 안 바쁘면 맨날 밥 사도 되는데, 바쁘니 이렇게 한 번씩이라도 술 사는 내 마음을 이쁘게 봐다오."라며 양해를 구했다.  이쁜 놈.


"그래도 그렇지 맨날 너한테 얻어먹을 수 있냐.", "공짜로 먹으니 맛나긴 맛나다만 ㅎ ㅎ.",

준희는 "혹시 알아, 만약에 내가 사업이 잘 안 되어 쫄쫄 굶게 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기면, 그때 너네들이 돌아가면서 하루는 소주 사주고, 하루는 밥 사주면 굶어 죽진 않겠지"라며, 그가 술 취해 뱉는 한마디 한마디는 달콤한 벌꿀이 발라져 있었다.   


그런 친구가 1년 전부터 밥 먹자, 술 먹자는 이야기도 없고, 통화를 한 기억조차 없었다.  

먼저 전화해서 어렵게 통화가 되어도, 준희는 바쁘다며 급히 전화를 끊었고, 곧 전화를 해준다고 약속했었음에도 그렇게 1년이 지났으며, 그 후로 휴대폰 번호마저 바꿨는지 다른 사람이 친구의 휴대폰 번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정식아...",  친구의 목소리는 떨렸다.

"준희가 2-3년 전부터 별도로 투자한 사업이 실패하여 투자금도 날리고, 자기가 하는 사업도 자금줄이 막혀 파산했다는데..., 경매로 집도 날아가고, 작년에 아내와도 이혼했다는 소리가 들린던데 뭐 좀 아는 게 있냐."며 걱정스럽게 전화를 해왔다.

"혹시 너한테 회사가 어렵다며 돈 좀 빌려달라고 하지 않았니.", "경호가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근무하는 은행에 준희가 사업을 하면서 대출을 많이 받았는데, 회사가 파산되어 은행도 피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며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하였다.  


이혼했다는 준희의 아내를 통해, 바뀐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어 통화에 성공했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의 자신 없고 초췌한 목소리를 통해 현재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의 근황은 묻지 않았고, 저녁 한 끼 먹으며 소주라도 한잔 하자며 주거지 근처 시장 안에 있는 돼지막창 식당에서 만났다.

3시간 정도 술을 먹는 내내 준희의 목구멍에 술 넘기는 소리 외에,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나만 안주를 먹어치우며 떠들고 있었다.


너무 쉽게 만취한 준희는 "정말 괴로웠다. 너희들에게 술 한잔 사달라고 하고 싶어도, 쉽게 말을 못 하겠더라. 내 속을 까뒤집어 보여주고 위로라도 받고 싶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라며 울먹이며 말을 끝맺지도 못했고, 나도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았다.

위로한답시고 물었다가 그의 어깨가 쉽고 더 크게 무너질 것 같았다.

 

친구가 이혼한 후 얼마 전부터 살고 있다는 로터리 쪽 고시원으로 데려다주면서, 유별나게 조명이 밝은 성인용품점 간판을 보았고, '몽땅 즐거움을 드린다'는 가게 모토에, 우린 서로 낄낄대며 웃다가 울었다. 

그렇게 중년들의 저녁은 친구 준희의 눈물샘 안으로 저물어 갔다.

        




 <성인용품 가게를 지나다가>



해운대와 민락동을 가로지르는

수영교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찬란한 네온사인이 부끄럽게 맑디 맑다

흐... 흐... 흐

음흉한 허파 놈이 웃는다.


시선은 정면으로 보는 척하다가

넙치 눈이 되는 한이 있었도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 듯

준희와 난 그 간판을 보며

타이어 바람 빠지 듯 시. 일. 실

웃음이 났다.


"성인용품 가게, 몽땅 즐거움을 드립니다"

오!, 성스런 네온간판이여

가게는 보란 듯 유치 찬란한데

우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며

어둡고 어둡게 왜 점점 부끄러워 질까.


준희야, 팬티도 먹는 게 있데

뿌리면 변강쇠도 부럽지 않은 힘을 쓸 수 있는 것도 있데

코스튬 캐츠우먼 가면이나 수갑도 있고

비아그라 몇 배 효과가 있는 마(麻)의 가루

섹스리스 부부도 기뻐서 울고 갈

대단한 성인용품은 다 있데.


웃음 섞인 농담을 주고받지만

그 농담에는 삶의 무게란 비늘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가

말할 때마다 비린내로 톡톡 떨어졌다.


사실 얼마 전 사업 실패로 이혼을 한 친구는

당분간 변강쇠가 부럽지 않게 힘을 쓸 수도 없었고

먹는 팬티는 특히 필요하지 않았다.


모처럼 수영 팔도시장통 돼지 막창 주점에서

진짜 이슬로 만들었다는 16.9도 이슬로 목 축인 후

눈에 진짜 이슬이 맺힌 너를  

행복하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해피해피고시텔 2평짜리 보금자리로 데려다주며

성인용품 이야기로 낄낄대지만

끄억 끄억 넌 속으로 울고 있었지.


삶은 너른 8차선 대로인데

샛길로 자꾸자꾸 빠져드는 중년

네온사인 불빛 아래

소주에 절여진 중년의 부끄러운 밤은

지긋지긋하게 내일 또 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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