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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우 May 18. 2023

그대 이름은 아내

parody poem


<poem_story>


"남편, 남편이라?.",

"그래 남편이 그렇지 뭐..., 이 시인은 어떻게 내 마음을 꼭 집어 남편을 시로 썼을꼬"  

식탁에 앉아 무언가를 중얼중얼거리는 아내의 독백.




아내는 일찍 퇴근해, 지름 1 m10 cm 정도의 둥근 원목 식탁에 앉아, 늦은 오후를 보내는 걸 좋아한다.

식탁에서 밥도 먹고, 고구마도 쪄서 간식으로 먹고, 책도 읽고, 블랙커피에 찬물을 조금 타서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노안이 와서 눈이 침침하다며, 아내는 식탁 위에 밝은 조명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식 등을 떼어내고, 그곳에 권투글러브만 한 LED등을 달아주었다. 환했다.

아내가 기뻐했다. 나도 기뻤다.     

  

안방에서 일체형 컴퓨터 모니터로, 제주도 푸릉마을을 배경으로 한 '우리들의 블루스' 연속극을 넷플렉스로 보고 있는데, 아내가 식탁빨리 와서 앉아보라며 보챈다.

"아, 진짜~~~ 산통 다 깨네, 클라이맥스인데..." ,

아내는 문정희 시인의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를 읽던 중, '남편'이란 시를 들려주겠다고 한다.

'여자, 아기엄마, 아니 아내들은 서로 얼굴 모르고 말을 해보지 않아도 통할 수 있는 이심전심이, 시에 푹 절여져 맛있게 익어 있는 시'란다.       


"아버지도 아닌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 문정희 시인의 시  '남편' 중 -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내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책상에 앉아 한참 동안 끄적였다.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란 시를 모방한, 패러디 시 '그대 이름은 아내'를 순식간에 써서,

식탁 의자를 당겨, 마주 앉아 읽어주었다. 시 써서 읽어주는 남자가 되었다.          





<그대 이름은 아내>


촌수도 없다지 우린,

가족관계증명서 관계 란에

동네 주민자치센터 공무원의 무심한 손가락질로

키판 딜레이트 한 조각 때리기만 해도

더 깨끗해지는 우리 관계쯤은 될걸.


당신은 늘,

인생에서 성공만 있고 실패가 없다면

앙코 없는 찐빵, 고무줄 없는 빤스라며

실패도 삶의 일부분이라며 밑줄 쫙 강조하며 위로해 주더니

삶에서 당신을 만난 것은... 실수 아니까요

물음표를 띄우다 말수를 줄였지.


남편이 기분 나쁜 걸 알고도

농담이야 농담이라며

캔버스에 붓 터치 하 듯 어물쩍 넘어가지만

농담의 채색과 농도가 나날이 일취월장하는 이,

그 이름 아내.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고,

피부가 익을 것 같은 온천물에도  

파전 지지 듯 자기 몸을 앞 뒤 지져도 시원하다며

풍덩풍덩 몸 맡기는 무서운 여자  

'삶은 계란이지 뭐가 있겠어'라며 누구와 어떤 자리에도

한 잔 커피 값으로 하루 종일 수다를 즐길 줄 아는

웬만한 풍파에도 콘크리트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그대 이름은 아내.


술에 취해 들어와 거실 한 구석 짐짝처럼 누워 코를 골아도

아침에 눈 떠보면 극세사 이불로 덮어 준 우렁각시

남편 지갑에 십원 짜리 하나 없으면 쭈글스럽다며

은근히 꼬깃꼬깃 5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슬며시 넣어놓는    

태평양 등판을 가진 여자

마음속에 나이만큼 측은지심이 그득해

자는 내 모습을 내려보며 쯔~쯔 혀를 차도

처 같아 우러러 보이는

그대 이름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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