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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우 Oct 24. 2024

구질구질한 삶

집행관놈 집행관님

전날 저녁부터 내리는 가을비는 그치지 않고 장맛비처럼 뿌려댔다.

우산을 썼는데도 바지가 젖고, 가슴팍에 넣어둔 사건 서류도 빗물에 튀어 눅눅해진 상태다.


"참, 더럽게도 일하기 상그러운 날이네요 집행관님."

담당 직원이 우산과 바지의 빗물을 털어내며 푸념했다.   


채권자 카드회사가 카드대금 변제를 연체한 채무자를 상대로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을 받아 채무자의 주거지 동산에 빨간딱지(압류)를 붙이기 위해 나선 출장길이다.


채무자 주거지 건물은 동천이란 하천 옆에 지은 40여 년도 더 되어 보이는 허름한 5층짜리 빌라였고, 복도 창문 옆과 천정은 자주 누수가 있었는지, 페인트 칠이 벗겨져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었다.


매직펜으로 적어 둔 현관문 호실 표시는 세월에 닳고 닳아 흐릿해져 헛갈렸고, 채무자가 거주하는 301호는 좁은 복도로 302호와 맞닿은 구조였다.


채무자 주거지의 초인종을 눌렀으나 고장 나 있어, 현관문을 몇 차례 두드리며 집행관임을 고지하고 문을 열라고 하였으나 대답이 없었다.

재차 301호 호실 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도 없던 중, 앞 집에서 현관문을 열고 나온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채무자 김 00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한다.


'집행관님이 두드린 앞집은 302호이고, 집행관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남편이 알까 봐, 스스로 현관문을 열고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직펜으로 적어놓은 호실이 흐릿해 착오가 있었고, 채무자의 앞 집에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그녀의 말투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남편으로부터 평소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느낌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녀에게 채권자 00 카드사에서 신용카드 연체금 및 이자를 포함 700만 원을 갚지 않았다며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을 받아 동산압류를 신청한 사건임을 설명하고, 금일 동산에 압류 즉, 빨간딱지를 붙이러 왔으니 절차에 협조하여 달라고 설명하자, 그녀는 몹시 당황해하며 열고 나왔던 현관문을 급히 닫았다.


지급명령은, 상대방이 채무를 인정하는데도 갚지 않을 경우, 법원에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지급명령 신청을 하면, 법원에서 채무자에게 지급명령을 하고, 채무자가 지급명령을 송달받고도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기는 독촉절차로, 채권자가 법정에 나갈 필요가 없고, 인지세도 소송보다 1/10 정도 싸고, 신속히 결정되는 채권회수 방법이다. 채무자가 기간 내에 이의신청을 하면 그때부터는 정식 소송 절차로 진행된다.


"집행관님, 제발 오늘 돌아가주시면 안 돼요... 제발요... 제발"

그녀는 대낮임에도 얼굴이 붉었고,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술 냄새가 풍기는 등 만취해 있었다.


"오늘 남편이 비가 와서 일을 나가지 않아 함께 술을 마셨고, 남편은 취해서 자고 있습니다."

"만약에 가전제품에 빨간딱지를 붙이면, 나를 어떻게 할지 모릅니다. 제발 봐주세요."라며 두 손을 빌듯 양해를 구했다.


"집행관님, 조만간 카드회사와 합의를 하고 연락을 드릴께요. 부탁합니다 오늘은 제발 돌아가주세요. 제발... 제발요."


"아주머니! 안됩니다. 채권자 위임을 받고 집행하는 입장이라, 채권자의 집행 연기 요청이 아니면  안됩니다."라며 현관문을 열려고 하자, 그녀는 술에 취해 있음에도 그녀의 양팔로 집행관과 함께 온 직원의 팔 한쪽씩을 움켜잡고 건물 3층에서 1층 공동출입문까지 끌듯이 내달렸고, 계단에서 함께 넘어져 다칠까 봐 대항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절실했다. 술이 만취했음에도 집행관 일행을 1층 출입구까지 끌고 내려온 것이다.


"아주머니, 왜 이러세요..., 남이 보면 싸우기라도 하는 것 같잖아요."

"집안에 빨간딱지 붙이면 저는 물론이고, 집안 물건 모조리 때려 부술 거예요.", "집행관님과 직원에게도 어떤 짓을 할지 몰라요.",  "큰 사고 나기 전에 제발 오늘만은 돌아가 주세요." 그녀는 끊임없이 양해를 구했다.


절실했다. 신이라도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것처럼 절실했다.


"그러면, 오늘은 채무자님이 강력히 저항하여 집행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정리합니다. 그렇지만 2주 뒤에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채권자와 협의를 하도록 해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가재도구를 압류할 것입니다."

민사집행법 규정은, 동산압류 집행과정에서  채무자가 강력히 저항하거나, 폐문부재의 경우 집행불능으로 처리하고, 2주 뒤쯤 객관적이고 공정한 집행 상황을 담보하기 위해 당사자가 아닌 참여자(증인) 2명 참여하에 열쇠기사를 대동하여 강제로 문을 열어 집행하거나, 채무자를 배제하고 집행을 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음.


채권자 신용카드 회사 대리인인 담당자에게도, 채무자와 합의 여부, 사건 취하여부를 물으며, 채무자가 사는 빌라는 오래된 건물이고, 압류할 동산도 제대로 없어 보였고, 돈 안 되는 동산을 집행할 경우 오히려 집행비용만 늘어날 수 있으니, 채무자에게 연락처를 알려줬고 연락한다고 하니, 연락이 오면 조건을 들어보고 합의를 보는 것이 집행보다 유리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채무자는 집행불능 이후 2주가 지나 2차 집행을 앞두고 있음에도, 약속대로 채권자와 합의하고 동산압류 취하서를 제출하거나, 집행관사무실 담당직원에게 추가 문의도 없었다.


1차 집행 때 술이 취한 그녀의 말을 끝까지 믿지 않고, 강력히 저항하는 그녀를 제압해 빨간딱지를 붙여었야 되었나... 패착이었나?, 아니면 2주 만에 채무를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드나..., 그녀는 그렇게 절실했었는데, 취하서가 들어온 게 없다는 것인가.


2주 뒤 2차 집행을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하였다.

현관문 옆 계단 위에는 소주병 빈병 여러 개와 담배꽁초를 수북이 담아 놓은 플라스틱 바가지가 놓여 있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허름한 남편의 운동화, 그 위에 낡은 그녀의 운동화가 쓰러질 듯 포개어 있었다.

오래된 인터폰은 여전히 고장 나 있었고, 현관문을 수회 두들기고 법원에서 왔음을 고지하였으나, 급하게 뛰어나오는 그녀도 없었고, 누구의 인기척도 없었다.


담당 직원이 채권자가 데려온 참여자(증인) 2명을 확인하고, 그들의 인적사항을 모바일용 집행업무시스템에 입력하고 서명을 받은 후, 열쇠기사에게 닫힌 문을 열게 하여 실내로 들어가니,  내부는 15평 정도로 좁았다.

현관에서부터 털 엉킨 푸들견이 반갑다는 듯 폴짝 거리며 외로웠다고 하소연하였고, 실내는 담배꽁초에서 내뿜는 퀴퀴한 냄새, 술 냄새가 폐부 깊숙이 느껴졌고, 20여 년이 넘어 보이는 TV, 냉장을 해도 음식이 쉬고, 냉동실 얼음도 저절로 녹을 듯한 오래된 냉장고, 먹다 만 컵라면을 돌릴 때 썼던 전자레인지, 서랍 속 천 원 권 몇 장이 그들 삶의 전부였다.


작은 방 침대 옆에 최근에 구입한 듯한 모전자 회사의 노트북이 있었고, 그 노트북은 그 방을 쓰는 자녀가  사용하는 것으로 보여 빨간딱지를 붙이는 것을 망설이니, 옆에서 지켜보던 채권자가 빨간딱지를 붙여달라고 닦달을 한다.


채무자의 가재도구를 경매로 넘겨봐야 집행에 들어간 비용조차 나오지 않음을 채권자도 잘 안다. 그럼에도 동산압류 취하를 하지 않는 것은 합의를 해올지 모른다는 채권만큼의 기대감, 전화를 받지 않고 있는 채무자와 계속 채무변제 독촉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집행이라고 생각하는가 보다.


집행을 마친 후 채무자의 집을 나서는데, 담배 냄새 퀴퀴한 어두운 집안에서 낑낑대며 집행관의 다리에 기어오르던 푸들 강아지가 눈에 밟혔다.  

그 강아지는 빨간딱지를 붙이는 집행관이던, 돈을 받으러 온 채권자이든, 개를 엄청 무서워하는 담당 직원이든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사람이...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온 채무자는, 아니 채무자 남편은 구질구질한 가재도구에 붙어 있는 빨간딱지와 압류된 가재도구를 경매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어떻게 할까?.

불 같은 성질의 남편은 모든 책임을 아내에게 돌리며 채무자 아내에게 손을 대지는 않을까..., 술을 먹고 압류된 가재도구를 박살 내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채무자 그녀도 구질구질한 삶을 원망하며, 불을 켜놔도 좁고 어두운 코딱지만 한 거실에서, 키 작은 밥상 앞에 앉아 또다시 소주를 나발로 불며 담배를 뻑... 뻑 피워대고 있겠지.


제발 구질구질한 삶도 함께 마시고 피워 없애버리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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