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검진에는 위 및 대장 내시경 검사 외에 큰맘 먹고 혈액 정밀검사, 뇌혈관 건강체크를 위한 CT, MRI 복합검사 패케이지를 포함시켜 검사를 진행했다. 1주일 뒤 검진 결과 상담을 받으러 방문했고, 검진 결과는 내 나이 때에 맞는 무난한 결과였다.
다만, 초음파 상 예전부터 생활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약물 처방조차 받지도 않던 간 부위의 혈관종 쪽 크기가 작년보다 많이 커졌다며 조영제를 투입해서 CT검사를 해보자는 권유를 받았다. 업무 때문에 그냥 지나치려고 하였으나, 그날 오후 검사가 가능하다고 하여 시행하였다.
방사선 판독 담당 의사와 상담하던 내과의사는 검사 결과 간암의 의심이 든다며 진료의뢰서를 작성해 줄 테니 집 근처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라며 쉽게 이야기한다. 빰을 때리고 싶었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충격이었다. 매년마다 검진을 통해 관리를 해왔는데 크기가 많이 커질 동안 놓친 검진기관의 의사가 원망스러웠다.
집 근처 해운대백병원,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부산대학교병원 본원 등을 알아보던 중, 지인으로부터 해운대백병원 왕희정 외과 교수가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인터넷과 너튜브를 통해 아주대병원에서 간이식센터장을 하다 퇴직한 후 해운대백병원에서 근무하고 있고, 간 수술(이식 포함) 3,000례의 임상 경험과 EBS 간 부문 명의로 선정된 사실도 확인한 후 고민 없이 진료 예약을 하였다.
왕교수는 CT조영제 영상 등으로 간세포암이란 진단을 확정하였고, 아내를 불러 함께 상담하면서 수술 전 검사 절차, 수술 방법과 과정, 향후 처리방향 등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고, 서울 쪽이나 다른 병원으로 가지 않고 자신에게 수술해주기를 원한다면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수술을 진행할 테이니 나에게는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농담으로 기분까지 풀어주었다. 상담 내내 얼굴 표정과 환자를 위한 말투 하나하나에 왜 그 교수가 명의이고 칭찬을 받는 의사인지 알 것 같았다.
서울 쪽으로 가더라도 병원 선택부터 예약 및 진료를 거쳐 수술까지 1~2개월 이상 소요되는 동안 간세포암이 더 커질 수 있고, 마침 진료 다음 주 췌장암 수술 예약을 해놓은 대기자가 서울 쪽으로 간다며 예약을 취소하겠다는 통화를 옆에서 듣고, 그 취소 날짜에 바로 수술을 부탁해 간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이틀을 지내며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의 고통을 듣고 보았고, 일반 병실을 배정받아 한 달 동안 입원 생활을 하면서 담도암으로 간 2/3, 담관 절제 및 쓸개 절제 등으로 치료를 받던 환자, 수술 후 상태가 좋지 않아 중환자실로 넘어가 사망했다는 환자, 장폐색까지 왔음에도 수술 시기를 놓친 위암 중기 수술 환자들과 있으며 잠시 희로애락을 느꼈던 나날이었다.
진단과 수술, 치료 과정을 통해 아파하면서도 술과 담배, 검게 타고 기름진 음식 등에 함부로 몸을 내맡긴 스스로를 질책하고, 내 몸의 장기, 뼈, 근육, 혈관 하나하나에게 미안해하고 그런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힘든 나날이었다.
<비 오는 날_병원 밥을 먹으며 울먹이다>
나는 암 환자로 정의되어 팔목에 이쁜 하늘색 바코드가 묶여 있었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거수일투족이 시스템에 입력되는 바코드였다.
복부는 가로세로 수십 센티미터의 개복(開腹)으로
묶어 놓은실, 스테이플러 침과 절제한 간 등 수술 부위에서 나오는 진물과 핏물 등을 빨아내는
피주머니를 3개씩 달고 있다 주렁주렁 열린 붉은 사과처럼.
양쪽 팔과 목에 찔려 있거나 찔린 수십 번의 주사바늘 고통도 무감각해진 일상이
병실 침대에 함께 누워 있었다.
초기에 염증수치가 높았기에 주치의가 하루하루 좋아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려 그를 향해있는 해바라기였다.
병실 창 밖으로 시끄럽게 소나기가 내린다.
끼니때 어김없이 도착해 있는 병원 밥, 간이 덜 된 국, 반찬을 보며 색다르게 먹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