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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실수를 했다.

by 글쓰는 범고래


※ 쌍둥이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아들은 똘똘이, 딸은 똘망이라는 태명 때 이름을 사용하였다.




쌍둥이를 키우면서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는 비교이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모든 것을 같이 나눈 쌍둥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비교를 당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교는 교육이라고 하는 학습의 순간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가속화된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나고 같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지만 배움의 속도가 같을 순 없다.


최대한 비교를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아이 스스로가 이미 그런 순간을 예민하게 먼저 포착한다. 그러면 누군가에게 하는 칭찬조차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교의 말이 되어 화자의 진의를 해석하는 상황이 되고, 부모는 자신의 말 혹은 타인의 말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을 해석해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더욱이 부모로서 가장 힘들 때는 자연스러운 상황조차 아이들이 비교당한다고 느끼는 때이다. 가령, 누군가 시험에서 백 점을 받은 상황에서 칭찬을 하는 것이 그렇지 못한 아이에게는 실망감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칭찬을 하지 않으면 당연히 칭찬을 기대한 아이가 반대로 실망하곤 한다. 아이를 혼낼 때 다른 곳으로 조용히 불러서 주의를 주는 것처럼, 칭찬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이들에겐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비교의 대상으로 느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설움의 눈물을 쏟아냈다. 같은 학원(그러나 다른 반)에서 시험을 보고 딸은 백 점을 받았고, 아들은 95점을 받았다.


그런데 아들은 평소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했었고, 난 그 열심히 한 부분을 칭찬해주고자 한 개 틀린 것에 대해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평소에도 난 진심으로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자주 100점을 받고 학업적으로 더 뛰어난) 딸은 그 칭찬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는지(아직도 뭐가 그리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지 난 모르겠지만), 자신은 100점을 받을 때도 칭찬을 '덜' 받는다며(설마 그럴 리가!), 아들의 점수와 노력을 깎아내리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부모 입장에서는 누가 칭찬을 받고, 누가 혼나야 하는지조차 없어지는 결국, 모두가 혼나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날 밤, 딸을 재우면서 딸의 방에서 아빠가 똘똘이를 칭찬해 준 것은 똘똘이의 노력에 대한 칭찬이며, 너보다 조금 못하는 똘똘이에게 자신감을 주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런데 하필 그 말을 아들이 지나가면서 들은 것이다.


그리고 아빠가 자신이 똘망이보다 못한다고 한 말에 상처받고 자기 방으로 가서는 침대에 엎드려 펑펑 울면서 그동안 쌓인 설움을 폭발시켰다. 내 말의 진의는 그것이 아님에도 이미 그 말 자체가 큰 실수가 되어버렸다.




펑펑 우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 직접 가서 사과를 하고 안아주면서 달래주었지만, 이미 마음이 상한 아들에게 나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이런 경우 일방적으로 딸의 행동에 대해 혼내면 딸도 상처를 받는다. 그렇기에 딸이 평소에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선 칭찬해 주고,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이야기해 주고자 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딸의 마음을 신경 써주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들과 딸을 비교하면서 아들을 깎아내렸으니 분명 실수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설움을 뱉어낼수록 더욱 서러워진 아들은 억지스러운 말을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결국 난 "그 말이 그 말이 아니잖아!"를 시전해 버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나는 아들의 마음이 신경 쓰였다. 회사 일로 며칠 뒤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라 아침에 집을 나가기 전, 아들의 방으로 가서 안아주면서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그리고 잠든 척하는 아들에게 아빠가 얼마나 너를 좋아하고 너와 장난치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는 말을 해 주고 집을 나왔다.




아이를 키우면 아이의 성장 시기에 따라 부모의 역할도 매번 달라져야 하는 것을 느낀다. 그만큼 부모도 커가고 배워가야 하는데,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큼 아이의 성장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세대와 다른 요즘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마음과 감정이 세월이 흘렀다고 얼마나 달라지랴. 그저 내가 잊고 기억하지 못할 뿐,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상처 입으며 무심해지는 것도 배우고, 현실을 통해 포기도 배운 결과가 겨우 지금의 나일 것이다. 그걸 알기에 냉정한 현실을 내가 더해서 말해주지 않아도 그것을 배워 나갈 것이기에 조금 더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부모가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이 아직은 별 수 없는지 지금까지는 그 마음에 도달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아들에게 한 실수가 자꾸만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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