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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Jul 14. 2023

교토에서 저녁을

오코노미야끼와 맥주 한 잔, 한국말 쫌 하시는 사장님

 아마 ‘나의 아저씨’를 본 사람은 마음 속 깊은 데에서 꿈틀거리는 욕망 하나가 있을 거다. 바로 ‘정희네’. 어딘가에 있을 듯하지만 일단 우리 동네에는 없는 바로 그 ‘정희네’. 아주 크지 않아야 하고 사장님과는 막역한 친구 혹은 친구의 형 혹은 누나면 좋고 그게 아니면 그저 안면을 튼 동네 친구가 있는. 그냥 아무때나 들어가도 거리낌 없이 맥주 한 잔 혹은 소주 한 병 정도 할 수 있는 곳. 아는 사람이 이미 술 한 잔을 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옆자리에 앉아서 오늘 어땠냐고 물어줄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주변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가게들의 간판을 번역기로 돌리다가 ‘철판‘이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믿도끝도 없이 난 여기가 꼬치를 굽든 오코노미아끼를 굽든 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늘 저녁은 여기서 뭐가 나오든 먹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나중에서야 우리나라 여행객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오코노미아끼 집이라는 걸 알았다. 번역기로 돌렸을 땐 ‘꿈의집’이라고 나와서 잠깐 움찔했던 게 사실이다. 뭔가 모를 촌스럽게 로맨틱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 ‘녀석’과 헤어지고 난 후 나는 밤의 장막이 덮이는 후시미이나리를 조금 더 돌아보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꿈의집 ‘유메미야’로 찾아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테이블은 약 세 개에 바 형식으로 되어 의자가 네 개 정도 놓인 단촐하고 아담한 가게였다. 내가 찾던 바로 그 현지 느낌 물씬 나는 가게! 드디어 현지인이 해주는 오코노미야끼를 먹게 된다는 생각에 살짝 마음이 들떴다. 어설픈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내 앞에 메뉴판이 펼쳐진다. 한국어 메뉴판이. 그리고 이어지는 사장님의 유창한 한국어 인사까지.


 “어서 와요. 한국인인가요? 잘 앉으세요. 뭐 드실래요?“

 눈 앞에서 오코노미야끼와 야끼소바가 만들어지는 게 펼쳐진다. 다른 테이블에서 시킨 음식을 만들면서 한두 마디씩 말을 건네주신다. 거기에 내가 건네는 질문들에 답하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혹시나 싶어 짧은 일본어를 던지면 거기서는 꽤 유창한 한국어가 날아온다. 한국인은 일본어를 하고 일본인은 한국어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나 이후에 들어온 한국 사람들에게도 가급적이면 한국말로 말을 건네주시지만 익숙지 않은 한국인들은 일본어로 답을 하는 흥미진진한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몇 십 분 일찍 들어온 ‘선배’로서는 꽤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가 서로 눈인사를 하고 어디서 왔는지 오늘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서로의 음식을 또 한입씩 나누기도 하면서 밤은 무르익는다. 가끔씩 우리의 대화 속으로 던지는 사장님의 말 한 마디도 정겹다. 너와 내가 아주 잠시 ‘우리’가 되는 경험에 취해 기분 좋은 나른함이 몸에 퍼진다. 가게 문을 바라보니 꽤 많은 여행자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나만 이 시간을 누릴 수는 없겠다 싶어 잔을 비우고 남은 음식을 내 몸에 차곡차곡 담았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라고 말하는 사장님의 목소리와 ’고마웠어요. 내일 또 올게요.‘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겹쳤다.




 내가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한국어가 전부다. 영어를 배웠으나 읽고 해석할 줄이나 알았지 입 밖으로 꺼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지라 감히 영어를 할 줄 안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결국 내 소통의 범위는 딱 한국땅이 전부거나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외국인들로 한정된다. 그만큼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혹은 타인을 환대할 가능성이 딱 거기까지인 셈이다. 한국인과 간단하게나마 대화가 가능한 사장님을 만나면서 다른 나라의 말을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환대’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이 타국에서 내 말을 조금 더 정확하게 들어주고 내가 사용하는 언어로 답을 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2년 째 손 놓은 영어 공부를 다시 한 번 해야겠다는 아주 촌스러운 적용을 한 번 더 해보게 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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