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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Jul 17. 2023

교토에서 저녁을

상념에 젖어 걷다.

 아라시야마에 들러 대나무숲을 거닐고 텐류지까지 감상하고 났더니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금각사는 꽤 많이 들러서 굳이 또 들를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렇게 화창한 여름의 금각사는 본 적이 업다는 게 생각이 났다.

 

 금각사라는 이름을 접하게 된 건 일본의 우익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 때문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 미조구치는 관념 속에 자리잡은 절대적인 미의 화신인 '금각'에 결코 닿을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다. 그 우울과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금각사를 부숴버리는 것이었다. 그 파괴를 통해 미조구치는 절대적인 미를 온건하게 지켰고 동시에 자신은 자유를 맛보게 된다. 당시에는 니체적인 방식을 통해 절대적인 미를 지킨다는 게 꽤나 충격이었고 게다가 이 소설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 사건까지 접하면서 오랜 시간 혐오해 왔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금각사에 대한 미묘한 기대감과 설렘이 있었고 어느 순간 금각사는 '미조구치'처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교토에 갈 일이 생겼을 때 다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가장 먼저 들른 곳이 바로 금각사였다. 그리고 처음 금각사를 봤을 때 어쩌나 실망스러웠던지... 물론, 쩌렁쩌렁하게 빛나는 금빛 벽면을 보고 안 놀랐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뭐랄까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이라기보다는 그저 안타까움에 가까운 놀라움에 가까웠다. 인위적인 금빛 벽면과 그 번쩍거림은 인터넷으로 찾아본 사진과 큰 차이가 없었고 금빛 번쩍거림에 위세가 눌린 정원과 연못은 전체적으로 금각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듯 보였다. 연못에 비친 금각사도 워낙 힘이 세서 연못에 놓인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의 세계관을 눌러버리고 있었다. 사진 속으로 봤던 금각사가 전부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뛰어갔건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각사를 불태운 한 승려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소설 금각사 때문에라도 이상하게도 금각사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어쩌면 교토의 금각사가 금각사다울 수 있는 건 금각사에 불을 질렀던 승려의 실화와 그걸 모티프로 한 소설 금각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교토에 오고 싶었던 건 순전히 '마츠리' 때문이었다. 그런데 비행기 티케팅에 늑장을 부리기도 했고 갑자기 생긴 다른 일정 때문에 마츠리는 포기하고 마츠리 바로 전 주간에 오게 된 것이다. 일주일 전이라도 뭔가 마츠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까 기대해서 저녁 때는 야사카 신사로 주욱 이어지는 길을 거닐었다. 내가 원했던 마츠리의 분위기는 없었지만 기온 마츠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야마호코가 만들어지고 있는 듯했다.



 定住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주체적인 축제


 굳이 일본인들의 축제에 한국인이 가는 이유가 뭐냐?

 애국심이 투철한 친구의 일침이다. 사실 친구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일본 마츠리의 목적 자체도 자기 마을의 안녕을 신께 기원하는 것이 목적인 행사여서 그 마을과 전혀 상관 없는 이방인이 그 축제에 참여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져 버린 마을 공동체의 화합을 동경하는 마음이 클 뿐이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근간으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며 하나가 되는 마츠리가 부러운 마음에 한 번 참여해 보고 싶을 뿐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지역 축제들은 대부분이 지역 특산물 판매가 목적인 경우가 많고 그 축제의 주체도 주민들이라기 보다는 지자체인 경우가 많다.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매매'가 주인공이다 보니 지자체가 주최하는 야시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마을의 안위를 위한 제사와 기원이 사라졌으니 제의에 가까운 춤과 노래는 초대 가수들의 노래와 춤, 밴드들의 공연 혹은 각설이들의 타령이 대신하고 말았다. 정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주체적인 축제는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진 셈이다.  


야사카 신사에사 지는 해를 바라보는 사람.

 내가 국민학생이었던 시절, 정월대보름 즈음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 때 할아버지들 대여섯 분이 장구와 북, 꽹과리를 치며 거리를 돌아다니셨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미 도시화가 된 상황인지라 그 할아버지들의 풍물놀이는 그렇게 환영받지 못했었다. 분명 학교에서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음악의 한 장르라고 배웠는데 그 음악은 현실에서는 구닥다리 취급을 받고 있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우리의 전통과 문화는 사라지는 것이 아쉽고 마음 한켠이 시렸었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서글프다. 어쩌면 나는 그 서글픔을 보상받고 싶어서 일본 마츠리를 동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자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 폴 소로우 -


 그렇게 야사카 신사를 향해 뻗은 가와라마치를 걷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조선학교가 일본의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배제된 것에 대한 반대 캠페인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도로 쪽에서도 한 무리의 나이 지긋한 분들의 시위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자인 나에게야 이 공간이 아름답고 신비롭겠지만 여기에서 정주하고 있는 분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과 씨름하며 살고 있다. 내가 이 여행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나 역시도 다양한 문제들 앞에 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겠지. 그러다가 친구가 보내준 문구 하나가 생각났다.



 "관광객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지만, 여행자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이 문장 앞에 서니 나는 이미 한국에서도 여행자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문제를 껴안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거대한 의미에서는 이미 여행자인 셈이다.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일상의 여행자들'이 찾은 것이 마츠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니 신을 찾는 것이고 함께 사는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길을 모색하고 그 과정에서 결속력을 다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다른 문화 안에서 다른 신앙을 지니고 있는 나로서는 이들이 부르는 신과 제사의 방법을 껴안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신 앞에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몸부림은 이해가 갔다. 나 역시 그네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야사카 신사가 보이는 길 끝에서 매 여정 그러했듯이 내 신께 기도를 올렸다. 이들의 눈물과 간구를 기억해 주십시오. 각자가 겪는 불합리와 답답함을 체휼해 주시고 도와주십시오.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돌봐주시고 죽음에 다다른 사람들의 마지막을 친히 돌봐주시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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