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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Jul 19. 2023

교토에서 저녁을

때론 말보다 더 진하게.

 사람이 거의 없는 청수사의 상점 거리를 감상하고 내려가려는 한 청년 하나가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보니 앞에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청년은 나에게 먼저 내려가도 좋다는 신호를 주었으나 아무리 빨리 내려간다고 해도 시간이 걸릴 듯해서 괜찮으니 먼저 사진을 찍으라고 몸짓으로 말을 건넸다. 여행지에서는 말보다도 몸짓과 손짓, 표정이 꽤 정확한 의사소통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 청년도 괜찮다고 지나가시라고 몸짓으로 이야기를 하고 나는 괜찮으니 어서 찍으라고 손짓으로 이야기를 한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청년은 목례를 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사진을 찍었다. 약 30초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몸짓과 손짓으로만 필요한 이야기를 다 끝냈다. 기다린 김에 나도 사진 한 장을 찍으려는데 저 멀리 현지 어르신이 상자를 들고 오고 계셨다. 떠나는 여행자 그리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현지 어르신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어서 사진을 찍고 나서 어르신께 사진 한 장 찍었는데 괜찮냐고 ‘몸’으로 여쭈었고 어르신은 노 프라블럼을 외치셨다. 부랴부랴 언덕을 내려가니 그 중국인 청년이 자판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물 한 병을 뽑고 있었다.


 “중국인이세요?”

 “네! 중국인입니다. 거기는 한국인이시죠?”


 한국인과 중국인은 그렇게 되지도 않는 영어를 쓰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혼자 여행 차 왔다는 중국인은 많이 덥긴 하지만 꽤 재밌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아까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그 청년과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가는 길, 청년의 풋풋하고 소박한 미소와 청량한 목소리가 기분 좋게 거리를 울리고 있었다.


 "아까, 우연히 당신을 사진에 담았어요. 괜찮나요?"

 "그럼요. 당연히 괜찮죠. 여행지에서는 모든 것이 다 괜찮아요. 혹시 그 사진 보여줄 수 있나요?"


 내가 찍은 사진을 그에게 보여주자 무척이나 기뻐하며 이 사진을 자신에게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 당장은 안 되지만 한국에 들어가면 바로 그날 밤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메일 주소를 받아 들고 길을 떠나려는데 그 청년이 다시 물어왔다.


 "혹시 그다음 어디로 가나요? 만약 같은 곳이면 같이 가요."

 "모르겠어요. 그냥 걸으면서 생각하려구요. 만약 같은 곳이면 거기서 만나겠죠. 그때 봐요. 그리고 거기서 만나면 제가 시원한 커피 한 잔 살게요."

 

 청년은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며 흐드러지게 웃었다.   





 청수사를 들렀다 산넨자카, 니넨자카를 넘어 야사카의 탑을 보고 천천히 길을 내려왔다. (참고로 야사카의 탑은 교토 스타벅스가 있는 쪽에서 찍으면 참 예쁘게 나온다. 거기서 조금 더 내려오면 직감적으로 사진을 찍어야 할 지점이 느껴질 것이다. 혹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면 바로 거기다. 나도 이번에 알았다. ^^) 이른 아침, 사람이 없을 때여서 그런지 일본 전통 복장을 입고 웨딩 사진을 찍는 현지인들이 많이 보였다. 내려오면서만 세 커플이 사진사의 조언에 따라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예비 신랑 신부의 환한 미소가 보기 좋았다. 이제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갈 동지를 얻겠구나, 싶은 마음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축복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짧게, 화살기도를 날렸다.


 '맞잡은 두 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숨 가쁜 일 생겨도 함께 멈춰서 숨을 고를 여유를 주십시오. 기쁜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 앞에서 함께 울며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게 주님, 이들에게 복 내려주십시오.'  



 수학여행을 온 걸까. 가이드 혹은 교사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어른의 말을 경청하며 연신 '하이'를 외쳐대는 교복 입은 학생들의 앳된 얼굴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교토의 얼굴과 겹쳐진다. 신사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고 선생님을 시작으로 참배를 하니 학생들도 꾸벅 절을 올리며 참배를 한다. 별 것 아닌 장면인데 꽤 인상적이었다.   



 곧바로 철학의 길로 가려고 했으나 일일 버스권도 아낌없이 쓰고 싶은 마음에 헤이안 신궁으로 향하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려 구글 지도를 켜서 대충 방향을 잡은 후에는 감으로 걷는다. 여행의 목적지도 중요하지만 그 목적지에 다다르는 여정도 중요한 법. 길을 잘못 들었으면 다시 돌아나오면 그뿐. 내가 걷고 있는 길과 그 글 위에 지어진 집 한 채, 다리 하나, 나무 한 그루와 풀들도 이번 여행에서는 중요한 '목적'이자 '목적지'이다. 대충 방향을 익히고 걷는데 다행스럽게도(?) 먼발치에서도 신궁임을 알려주는 도리이가 보인다. 선명한 주홍빛깔의 도리이가 있는 쪽을 향해 걷는데 외롭지 말라고 옆에 작은 강줄기도 함께 걷는다. 그렇게 도착한 헤이안 신궁은 딱 봐도 지어진 지 오래되지는 않아 보였다. 화려한 건축 양식과 건물의 색감이 인상적이다. 거기에 넓은 마당까지 갖추고 있어 위세가 당당하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지극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하는 것.


 비라도 내릴 듯 하늘은 어두워지고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많은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후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풍경이라고 불리는 유리종으로 일본의 여름을 떠올리면 꼭 함께 생각나는 것이 바로 이 풍령 즉, 후링의 소리다. 일본에서는 이 후링에 소원을 적어 신사에 매단다고 하는데 그게 여기 헤이안 신궁에도 있었던 것이다.


 후링으로 가득 찬 천장 아래를 걷는다. 바람이 함께 거닐고 그 바람에 후링 또한 경쾌한 발걸음으로 함께 걷는다. 뭐라고 적혀 있는지 읽을 수는 없으나 많은 사람들의 소원들이 내게 말을 거는 듯하다. 내용만 다르지 분명 그 본질은 모두 비슷할 터. 나 역시도 빌어봤을 무수한 마음의 소망들을 그들 또한 빌었을 것이다. 그들의 소원들 사이로 지나가면서 나 역시 조용히 기도를 읊조려 본다.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그리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과 피조 세계를 위해 그분께 화살기도를 날렸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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