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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Feb 12. 2024

집에 가는 길

 멀지 않으나 먼 길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몸 하나 딱 누이면 더 이상 뭔가를 할 수 없는 좁은 방, 평생 '내 편' 없이 '남 편' 드는 사람과 사느라 어느 한 군데 성한 곳 없는 몸과 맘을 지닌 엄마를 만나야 한다는 무게감에 집에 가는 길이 버겁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먼 집을 가까이 여길 수밖에 없는 것도 결국은 엄마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도 자식을 위해 자신의 젊음과 건강, 시간 그리고 노후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벌어온 돈 전부를 써주신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집에 가는 길이 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태어나자마자 죽었을 수도 있는데 그 목숨을 여기까지 이어가게 해 주시고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가진 것이 없었기에 버는 족족 저와 동생을 위해 독에 물을 채우듯 부어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독은 부모님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가도 채울 수 없을만치 커서 당신들의 모든 것을 다 갖다 부어도 부족해만 보입니다. 그래서 늘, 부모님은 ‘미안하다' 이 말을 버릇처럼 읊조리셨습니다. 그러나 주님, 그 부족하다 여기시던 부모님의 '채움'이 없었으면 저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 부모님을 제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부모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선물의 값어치를 저는 너무나 늦게 알아봅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값이 보였고 어머니도 다 늙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게 남았습니다. 그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계십니다. 문득, 그 사실이 절절하게 다가와서 마음 먹먹한 아침입니다. 


 내 몸 누일 곳 변변찮으나 그래서 내 몸뚱아리는 설, 집에 가는 길이 참 멀게 느껴집니다. 자기 편 없이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의 마음은 마치 살갗이 벗겨진 상처와 같습니다. 그래서 섬세하지 못한 말 한마디에도 금방 죽을 만치 앓으십니다. 그 마음 만지러 가는 길, 그 길이 참 무겁고 멉니다. 만병통치약은 아니더라도 통증을 잠시라도 멎게 할, 진통제 한 알만치의 역할은 해야 하는 그 길이 버겁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버지의 끈덕진 삶의 흔적이 있고, 어머니의 거칠고 고된 삶의 흔적이 있기에 가까운 길입니다.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는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 '거기'로 갑니다.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그 밥상의 호사를 이제 얼마나 더 누릴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집을 떠나 다시 돌아가는 밤, 바리바리 싸주시는 그 손길을 얼마나 더 느낄 수 있을까요. 내 아들, 겨울 춥게 날까 봐 시장에서 '메이커' 추리닝과 신발을 사 오는 그 뜨끈한 마음을 저는 언제까지 만질 수 있을까요. 비록 몸에 맞지 않은 추리닝과 내 발보다 한참이나 큰 털 실내화지만 내 마음에는 이보다 잘 맞을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싸주신 것들을 차에 다 싣고 저는, 아마, 한참을, 울 겁니다. 멀다 여겼던 길을 왔다 다시 가는 여정이 또 그렇게 멀게만 느껴져서겠지요. 엄마가 있는 집에 가는 길이 언제까지나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저는 더욱, 서럽게 다 울어재껴야만, 또 저의 길을 갈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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