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요세프 Jan 25. 2024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1989)

홀로서기

2024년 1월 현재 우리나라 근로자 수는 대략 3천만 명 정도다. 그중 약 3백만 명은 대기업, 공공기관 등에서 근무한다. 열 명 중 한 명꼴로 흔히들 말하는 좋은 일자리에서 일한다. 통계청 국가통계에 따르면, 대기업 근로자의 세전 평균 월급은 약 563만 원으로, 중소기업 근로자 평균 월급 266만 원 대비 약 2.1배 높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이나 전문직 등 고연봉 일자리 혹은 직업적 안정성이 높고 평균 급여도 대기업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공공기관에 대한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32,000달러 정도다. 원화로 환산하면 4천2백만 원이다. 이를 한 달 치 월급으로 나누면 약 350만 원이니, 일반적인 회사원 기준으로는 높은 수준이다. 물론, 이는 소수의 거대재벌과 대기업이 국내 총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GDP의 핵심은 정부도 가계도 아닌, 기업이다.   

  

그런데, 이미 선진국형 경제에 들어선 상황에서 청년 구직자들의 눈높이가 상향 조정된 건 어쩔 도리가 없다. 기왕 취업을 마음먹은 20~30대라면, 급여가 높고, 정년이 보장된 일자리 찾는 건 당연하다. 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기 위한 자격증 취득, 해외 인턴십 등 장기간의 노력은 필요충분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의 수는 한정적이다. 모든 청년 구직자들의 바람을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십중팔구는 다른 직장,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청년은 눈높이를 낮추는 대신 취업 재수, 스펙 쌓기를 선택한다. 한쪽(청년)은 구직난, 한쪽(중소기업)은 구인난이 지속되는 일자리 불일치가 발생하는 이유다.    

  

그러나, 길고 짧은 건 재어 보아야 안다. 좋은 회사가 성공한 인생을 보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좋은 일자리가 주는 안락함은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차라리, 규모가 작은 기업이나,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거나, 일찌감치 창업해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미리 경험하는 것이 인생 전체로 보았을 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인생은 길고, 예상치 못한 일은 계속된다.     


청년이든, 중년이든, 시니어든 홀로 서야 할 때는 찾아온다. 누군가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면,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취업, 퇴직, 창업이 뒤섞인 채로 자본주의 시스템은 굴러간다. 한평생 563만 원씩 월급 받으며 살 수는 없는 일, 홀로서기는 불가피하다.   

   



창업은 홀로서기의 대명사다. 단, 불안감이 가득한 홀로서기인지라, 대부분은 창업을 망설인다. 확률적으로는 창업을 회피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가족 중 사업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 싸 다니면서 말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도 있다. 이유야 명확하다. 실패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심적 부담감은 얼마든지 감당할지언정, 경제적 부담감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자칫하다간,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낮은 성공확률을 무릅쓰고, 기꺼이 창업에 도전한다. 2022년 한 해 동안의 신규 창업기업 수는 131만여 개에 이른다. 그중 기술 기반 창업기업만 해도 23만 개가 넘는다. 음식, 숙박업 같은 생계형 창업이 아니더라도,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망망대해에 뛰어드는 셈이다. 


창업이 이기심 또는 경제적 욕심에 따른 개인의 선택이라 할지라도, 위험회피 성향이 사람의 보편적 특성임을 고려하면, 창업은 그 자체로 박수받을 일이다. 창업이 멈추면, 자본주의도 멈춘다.    

 

기존에 없던 번뜩이는 아이템을 보유한 창업가나, 상품이나 서비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한 벤처기업가라면, 특히 우대되어야 한다. 생계형 창업은 이미 포화상태인 내수시장에 뛰어드는 것이기에, 한 사람이 잘되면 다른 누군가는 잘 안 되는 치킨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창업 아이템과 기술력이 남다르다면, 이는 사회 전체에 활력을 가져오거나, 경제적 파이(규모)를 키우는 신성장동력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기술 인재들의 과감한 도전이 계속되어야 제2의 네이버, 카카오, 토스를 능가하는 유니콘-기업이 나올 수 있다. 

     

기술 창업기업은 초기 연구개발비, 인력 채용비 등이 많이 들기 때문에 외부 투자자들로부터 자본금을 투자받아 설립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험자본(Venture Capital)의 규모도 한정적이기에 모두가 투자받아 창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와 정책금융 기관들의 금융지원이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다. 유망 청년창업기업, 전문자격증 기반의 예비창업기업, AI·빅데이터·로봇·핀테크·정보통신 등 신성장동력산업 영위 기업, 문화콘텐츠 기업, 수출 예정(초기) 기업에 대한 정책적 우대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 정책금융 업무 담당자에 대한 면책 범위를 넓혀 업무 담당자가 적극 행정을 실현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고의·중과실은 예외다. 정부와 정책기관은 공적 자금을 집행해야 하기에 신중함이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혁신적인 기업에 대한 정책지원에는 과감해야 한다. 그게 혁신적인 정부다.    

 

정책금융기관을 중심으로 CEO에 대한 연대보증인 면제제도가 자리를 잡은 것은 고무적이다. 행여 사업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회사가 자금 유동성 위기에 처하더라도, 정책자금이 사업 목적에 맞게 사용되고, 그간의 노력이 인정된다면, 대표이사가 부실화된 대출금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단, 개인사업자가 아닌 법인기업이어야 하고, 사후관리를 통해 책임경영과 투명경영을 다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연대보증인 면제제도는 성실한 실패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 21세기형 복지로 불러도 좋을 듯하다. 매년 막대한 이익을 실현하는 시중은행과 금융회사들도 일정 부분의 재원은 혁신성, 진취성, 위험감수성을 보유한 기업가들을 위한 몫으로 배정하고, 점차 그 몫을 늘린다면, 우리나라가 명실공히 창업하기 좋은 나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다행히도 2021.12월 발표된 한국경제의 분석패널 연구에 따르면, 대표이사 연대보증인 면제가 금융 부실률에 미치는 영향이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책임지지 않을 권리가 부여된다 해도, CEO가 고의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결국, CEO의 역량·의지·윤리성이 우수하다면, 미래사업 실현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금융지원 정책을 지속할 일이다. 도전하는 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해야 선진국이다.

      



1989년, 이승철은 솔로 1집 앨범을 발표했다. 그룹 <부활>의 품에서 나와 홀로서기에 도전한 것이다. 과거 인터뷰에 따르면, 20대 초반 솔로 가수로 독립했을 때부터 본인이 직접 투자, 홍보를 진행했다고 하니, 그는 가수이자 청년 기업가였던 셈이다. 지금이었다면, 이승철은 신성장동력산업 중 하나인 지식서비스업, 문화콘텐츠 업을 영위하는 유망 청년 기업가로 충분한 정책적 지원을 받았을 것 같다. 향후 계획을 프레젠테이션 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재미있기도 하다.  

    

그러나, 1989년은 아직 6 공화국 초기, 군사정권의 시대다.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길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던 시대적 배경하에서, 정부의 도움을 받는 창업은 아무래도 상상하기 어렵다. 만약, 본인이 직접 제작한 앨범이 상업적으로 실패했더라면, 자칫 신용불량자가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때는 연대보증 제도는 물론이거니와 연좌제마저 횡행하던 시절 아니던가. 그의 홀로서기는 모험 그 자체였다.  

   

다행히, 20대 청년 이승철은 높은 기업가정신을 보유한 CEO였다. 운(運)마저도 그의 편이었다. 여느 창업가들과 마찬가지로, 김태원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떠나야 할 땐> 두려움도 많았겠지만, 과감한 도전의 끝에는 또 다른 독보적 창작자 박광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갑내기 작곡가 박광현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작곡가 겸 가수로, 1989년 본인이 직접 만들고 부른 <한송이 저 들국화처럼>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무엇보다, 솔로 독립한 이승철에게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잠도 오지 않는 밤에>(이후, 김건모 1집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제목으로 재발매됨), <그대가 나에게> 등 다수의 히트곡을 선물하면서 명성을 높였다. 한때 두 사람은 영혼의 파트너 소리까지 들었던 관계다. 

    

김태원이라는 알을 깨고 나오자, 박광현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홀로서기에 나서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승철은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도전하는 자만이 기회를 거머쥘 수 있다.  

   



처음에 이승철은 1집 앨범 수록곡 중 <마지막 나의 모습>을 타이틀곡으로 삼아 홍보활동을 시작했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 이승철 특유의 거친 미성과 폭발적인 성량이 돋보이는 곡이다. 다만, 노래 전반에 걸쳐 세미 트로트 곡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래서인지 이승철이라는 이름값, 화제성에 비해 노래는 그다지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위기감을 느낀 그의 다음 선택지가 바로 박광현이 작사 작곡한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다. 편곡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다. 

    

반말 조 가사로도 유명한 이 발라드곡의 히트로, 이승철은 10대들의 우상으로 급부상했다.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곱상한 외모로 한국의 <보이 조지>라는 별명도 얻었고, 조용필을 잇는 차세대 보컬리스트의 탄생이라는 극찬도 들었다. 그룹 출신의 솔로는 실패한다는 가요계의 오랜 속설도 깨트렸다. 


물론, 때 이른 성공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소년 성공을 조심해야 하고, 기업은 사업 초기 죽음의 계곡(Death Vally)을 견뎌내야 한다.  

   

어쨌거나, 1989년 작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의 성공은 40년 차 가수 이승철의 오늘을 가능케 한 주역이다. 수십 년간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부활>하는 그의 운을 마냥 부러워하기 전에, 그의 진취적인 도전정신을 주목할 일이다.  

    

스무 살의 이승철은 임재범, 김종서 등 무림(武林)의 고수들이 가득한 언더그라운드 신을 제 발로 찾아가, 혹독하기로 유명한 김태원에게 그룹의 보컬리스트를 시켜달라고 직접 요청했다. 고음과 성량 면에서 경쟁자들 대비 부족한 실력임에도 말이다. 당시만 해도, 보컬, 작곡, 연주력 면에서 이승철보다 뛰어난 경쟁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호기로운 도전정신이야말로 그룹 <부활>의 보컬 자리로 그를 이끈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실력은 둘째다.

     

창업 역시 그러하다. 설령, CEO의 역량, 기업의 보유자산, 납입자본금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하다 보면, 김태원, 박광현, 김종진, 전해성 같은 파트너도 만나고,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같은 예상 밖의 히트곡도 나오기 마련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발도상국형 속어다. 알을 깨고, 새장을 박차고 나와야 자기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다. 고공비행은 전문 엔지니어들이 도와줄 것이다. 높이 날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 너무 걱정되면, 크게 다치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만 날면 된다. <그것만으로> 성취감은 남다를 것이다.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이들의 숨겨진 위험감수성도 자극할 수 있다. 홀로서기는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련이 와도 (20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