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요세프 Feb 04. 2024

아마추어 (2012)

프로는 없다

1월 말은 분주하다. 매년 그러하듯 인사이동과 신입직원 배치가 있기 때문이다. 낯익음과 낯섦이 반반 섞여 있다. 지난 1년간 함께 일하던 직원 중 대략 반은 떠나고, 반은 새롭게 온다. 20년 이상 반복되는 연례행사지만 아직도 적응은 잘 안 된다. 헤어짐과 만남은 힘겨운 일이다.  

   

프로는 실력과 성과로 말한다지만, 회사 생활이라는 게 칼로 무 자르듯이 명확하게 내 성과, 네 실적 나누기가 쉽지 않다. 결과는 리더와 팀원, 팀원과 팀원 간 상호작용을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남과의 비교는 사절이지만,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받기 마련이다. 조직 단위, 팀 단위 평가가 늘고, 개인 단위 평가는 줄어드는 이유다. 결국, 만남과 헤어짐이 직장생활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바뀌기 위해 자리를 바꿨다. 나름 중책을 맡아 작년 1년 쉴 틈 없이 달렸고, 괜찮은 성과도 냈다고 자부했지만,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원과의 관계도 편치만은 않았다. 이 정도 경험과 경력이면, 누구와 함께 하더라도 거뜬하리라 자신했는데, 모든 관계 상대적임을 깨다. 고심 끝에,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하고, 새로운 리더에게 자리 이동을 요청했다.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선배마저, 그건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자세라며 나를 나무다.

      

근무지가 바뀐 것도, 업무가 바뀐 것도 아니고, 단지 자리 배치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낯선 것투성이다. 당장 업무용 컴퓨터, 노트북, 프린터, 인증서를 옮기는 작업부터 쉽지 않다. IT 리더의 도움 없이는 PC, 프린터 장애를 해결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업무를 보조할 도구들이 제자리를 찾는 것도 이렇게 힘겨울진대, 함께 하게 될 후배들과 알아가고, 호흡을 맞추고, 익숙해지기까지는 또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더구나, 우리 팀에는 이번에 입사한 신입직원까지 으니, 낯섦과의 시간이 길어질 것 뻔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새로운 환경과 업무, 사람에게 이내 적응다. 인간의 생존본능이다. 자신 없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가라앉을 것이지만, 괜찮다고 생각하면 웬만한 낯섦에는 금방 적응할 수 있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리라.   

  

가족의 응원, 동료 선후배들의 격려와 위로, 새로운 자리 적응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인사발령의 후폭풍은 지난 과거가 되어 있다. 새로지점장, 팀장,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정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일주일이면 충분다.

     

어느덧 다시 기업금융 전문가의 품격을 되찾는다. 벌써 어려운 민원도 해결하고, 지점 후배들을 다독여 사무실 레이-아웃 공사도 마무리했다. 첫 대면부터 예상치 못한 발칙한 요청을 받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던 지점장도, 이제 나를 믿어주는 눈치다.


그러면, 나는 불과 일주일 사이 아마추어에서 다시 프로로 거듭난 것일까. 비교체험 극과 극도 아니고,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다. 나만 특별한 존재일 리는 없다. 이제, 고개를 들어 다른 직원들의 모습을 확인하기로 한다.




새로운 지점장은 상임이사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평가를 받는 차세대 리더다. 주요 보직을 두루 경험했고, 영어 실력은 회사 내 최고다. 승진도 빠르다. 보수적인 문화로 정평이 난 공공기관에서 40대 지점장 지위에 올랐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끝났다는 이야기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승승장구가 예상된다.


그러나, 지점장도 지점장은 처음이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본점과는 다른 지점의 복잡한 성과평가 체계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늘어난 업무량과 연간 목표를 확인하고는 적잖이 놀란 눈치다. 이미 사문화된 지 오래인 과거의 규정과 기준을 아직 이야기하는 걸 보면, 현장 감각을 되찾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팀 배정에 불만을 표명한 직원도 꽤 여럿이었는지, 며칠 사이 유난히 말수 줄었다. 30년 차 지점장도 모르는 것 투성이의 <아마추어>다.  

    

반면, 1998년생 신입직원은 기대 이상이다. 분명, 대학교 졸업 후 첫 직장이라고 했는데, <미생>의 인턴사원 장그래보다는 김동식 대리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악성 민원인과의 전화 통화에도 당황하지 않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서고정리에도 솔선수범이다. MZ 세대는 자기본위 적이라던데, 예외 없는 규칙은 없는가 보다. 보는 눈은 다 비슷한지, 30년 차 지점장부터 3년 차 대리까지 모두 그를 칭찬한다.

     

알고 보니, 그는 2년 전 우리 회사에서 6개월간 근무한 적 있는 청년인턴 출신이다. 당시에도 성실하게 업무에 임했고, 직원들과도 잘 지냈다는 후문이다. 그도 회사에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대학 졸업 후에는 은행, 투자회사 등 다른  입사를 포기하고 우리 회사를 선택했다. 스물여섯이는 이른 나이에, 이른바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고, 벌써 선배들의 칭찬까지 한 몸에 받다니, 갓 입사한 신입직원은 지난 일주일간 하늘을 달렸다.

   

그러나, 성실함, 순발과는 별개로, 그는 아직 모르는 게 많은 <실수투성이>다. 인턴 때 경험했던 일임에도, 여전히 기업 CEO로부터 받아야 하는 약정서를 누락하고, 신분증 확인을 놓다. 다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얼마 후 여지없이 다시 돌아와 되묻는다. 약정서 금액에 영(0)을 하나 더 붙였다가 은행 직원의 긴급 전화를 받은 도 있다. 그가 하늘에서 땅으로 복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일주일이다.




프로는 없다. 모두가 실수하고, 좌절하면서 성장한다. 인턴에서 신입직원으로, 다시 10년 차 과장, 20년 차 팀장, 30년 차 지점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김프로, 이프로 소리를 듣다가,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제아무리 전문가라도 모르는 건 배우고, 실수 줄여나가는 것이 전부다. 낯익은 것과 이별하는 데 익숙해지고, 낯선 것과 만나는 데 두려움이 없스트다.

      

20년 차 베테랑도 슬럼프를 겪지만, 과감하게 자리와 환경을 바꾼 후 품격을 되찾는다. 30년 차 지점장은 '라테' 타령 그만두고, 눈과 귀를 연 후에 권위를 확보한다. 때로는 아는 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공(功)은 후배 덕, 과(過)는 본인 탓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아마추어의 태도다.


조급함 대신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한 번에 두세 단계를 건너뛰는 것은 과욕이다. 지금의 자리에서 계속 노력하되, 남과 소통하고, 교환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오직 성장하는 아마추어가 있을 뿐이다.   

  

(프로의) 타고난 재능보다 (아마추어의) 도전이 중요하다. 틀렸다고 자책할 필요 없다. 시간은 단지 흐르는 게 아니라, 켜켜이 쌓이는 것이다. 신입이 실수하지 않는다면, 재미도 감동도 없다. 빈틈없는 후배에게는 다가갈 선배가 없으니, 업무 적응은 더 늦어질 뿐이다. 신입 직원이 아마추어인 건 축하할 일이다.




2012년, 이승철은 <아마추어>를 발표했다. 그의 히트곡 <소리쳐>, <그 사람>, <잊었니> 등을 함께 만든 홍진영이 작사, 작곡한 노래다. 이 노래가 나올 당시, 이승철은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이었다. 수많은 도전자가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세상에 우린 모두 다 아마추어다.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 삶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다’라는 생각을 담아 가사를 썼다.


새로운 도전과 꿈을 향한 열정이 있는 한, 아마추어라니. 역설적이지만, 깊이 공감한다. 이승철은 가수로 30년을 살아오며, 라이브의 황제라는 타이틀, 천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 천 회 이상의 단독 콘서트라는 기록까지 보유했지만, 여전히 무대에서 긴장하고 실수한다. 노래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소리를 듣는데도 그렇다.


편집이나 끊김이 없이 단 한 번에 녹음을 마친 후, 보정 없이 노래를 그대로 발표함으로써, 실은 그도 <실수투성이> 자, <아마추어> 임을 만천하에 <고백>했다.

    

한편으로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 멘토여야 함에 괴로움 느낀 이승철은, 결국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슈퍼스타K들에게 <아마추어>를 선물했다. 이쯤 되면, 모두가 자기를 위한 노래라고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내세울 것 없는 실수투성이, 미생들을 위한 <아마추어>는 독설가 이미지의 이승철에게도 신의 한 수였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빈틈 많은 이 노래는 계속 불린다. 유튜브 조회 수도 600만을 넘어섰다.

    

같은 자리에 머무르실수하지 않으면 프로, 다른 자리에 도전하실수하면 아마추어. 여전히 세상은 둘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한다. 그렇다면, 나는 영원한 아마추어로 살고 싶다. 하고, 도전하고, 실수하고, 성장하는 아마추어로 말이다. 프로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린 (202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