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준비
결국에는 간다.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가야 할 이유보다 백배 많은 이 여행을 가기 위해 10kg 배낭을 짊어지고 공항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내 얼굴을 세차게 때리는 차가운 겨울바람은
'네가 정녕 떠난다는 말이냐? 그 고생을 하러 간다는 말이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내 마음은 설렘이 아닌 귀찮음으로 가득했다.
38리터 배낭에 하나씩 짐을 챙길 때마다 '가기 싫다'라는 말과 한숨도 함께 넣었다.
앞으로 배낭을 채운 이 물건들로만 생활을 해야 하는 여행 길이 얼마나 고생스러울지 뻔히 보이니 시작도 하지 않은 여행에 이미 지친 기분이 들었다.
'배낭은 최소한의,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겨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채운 물건들로 무거워진 배낭을 감당해야 하는 건 오롯이 나이기 때문이다.'
'배낭여행 고수되기' 수행을 하며 깨달은 것이다.
필요할 것 같아서 챙겨 넣은 짐은 여행 내내 사용하지 않고 정말 '짐'이 된다.
누군가 '배낭은 내 삶의 무게'라고 했다.
욕심을 부려 배낭에 구겨 넣어도 사용하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내 욕심의 짐들은 배낭의 무게만 높이고 내 어깨를 짓누르면서 여행 내내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나의 배낭에는 '진짜 필요한가'라는 검열을 세 번 통과한 물건만 들어갈 수 있다.
옷은 최소한으로 버려도 미련 없는 것으로, 선크림 이외 화장 따위는 사치.
여행 다녀온 후 사진 속 거지꼴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 후회가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여행 중 배낭의 무게로 힘든 것보다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고통이다.
떠나야 할 날이 다가오면 올수록 '가고 싶지 않다, 고생하기 싫다. 거지꼴이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의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급기야 이 여행이 내가 꿈꾸던 게 맞는지, 오기로 떠나려고 하는 건 아닌지, 나 자신까지 의심하게 되었다.
예매한 비행기 표를 취소할 ‘남미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찾았지만,
결국 나는 내 삶의 무게 10kg 남짓한 배낭을 메고 공항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