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9살부터 야금야금 모아 온 그림책은 늘 집 한 구석탱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19살'이라는 숫자를 써놓고 보니 그림책을 좋아한 지 이제 11년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이야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아져 도대체 뭘 먼저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 19살의 나는 좋아하는 게 없어 고민인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림책이 처음 내게 다가왔던 그날의 장면은 내 인생의 장면 중 참 아끼는 장면이다. 고3, 남들은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을 향해 성큼 나아가는 것 같은데 혼자만 방향을 잃고 멈춰있는 것 같은 무거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랠 겸 고요한 도서관에서 어슬렁거렸고, 그러다가 제일 끝 책장에 꽂혀있던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 자신이 얼굴이 잘 빨개지는 아이였기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책을 뽑아 들었다. 펼쳐보니 글자가 몇 자 없는 그림책이었고, 그 자리에 서서 한숨에 읽었다. 너무 좋아서 한동안 책을 안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 어떤 멋들어진 소설의 주인공보다도 그림책 속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에게 깊게 공감했다. 그 쉽고도 깊음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꽉 채운 압도가 아닌 널널한 여지가 나의 상상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어른이 되려는 초입에 그림책이 내게 다가온 거다. 참 고마운 일이다.
누가 시킨 것만 열심히 하던 내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줄곧 학교 도서관에 쪼그려 앉아 그림책을 읽었다. 그런 스스로를 보며 드디어 좋아하는 게 생겼구나 싶어 마음이 든든했었다. 그렇게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림책을 좋아하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아등바등거리고 있다(이건 마치 이루어지기 힘든 짝사랑을 하는 듯해 괴롭기도 하다).
20대라는 거친 물결을 헤엄치며 계속 커가는 중에도, 생각과 취향이 갈대처럼 흔들리는 중에도 그림책만은 꾸준히 좋아했다는 게 또다시 내 맘을 든든하게 만든다. 시작만 하고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거나, 마음만 키우고 시작도 못한 일들이 수두룩하여 이 세상의 모든 꾸준함들이 부럽기만 했던 요즘이었다. 사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쩌다 보니 되어지는 영역이라 꾸준히 좋아했다고 뿌듯해하는 것도 웃기다. 그치만 나도 꾸준함을 갖고 있는 영역이 있었구나 싶어 기분은 좋다.
헌책방, 대형서점, 동네서점, 인터넷서점 가리지 않고 내 마음에 다가온 그림책을 조금씩 모았다.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언어로 된 그림책이 나를 위한 기념품이었다. 내가 그림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주는 내 주변 사람들은 '네 생각이 났다.'는 따뜻한 이유로 종종 그림책을 선물해주었다. 나 역시도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책을 선물하곤 했다.
그렇게 내게 다가온 그림책들이 집 한켠에 쌓여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중간하게 쌓여있는 그림책 더미를 볼 때마다 아쉬웠다. 하지만 아직 집에 제대로 된 책장이 없는지라 그림책들의 제자리를 찾아주지 못한 채, 늘 숙제를 못하고 잠드는 기분으로 그림책 더미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빈 화장대가 눈에 들어왔다. 세 번째 집에 이사 오면서는 아파트에 붙박이 화장대가 있어서 원래 쓰던 화장대가 비어있었다. 속에 품을 것을 잃은 화장대와 갈 곳 없이 헤매는 그림책들을 짝지어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화장대그림책방이 탄생했다.
이제 화장대를 열면 색색의 화장품 대신 색색의 그림책들이 가득하다. 향긋한 화장품 향기 대신 편안한 책 냄새가 난다. 이 조그마한 책방에 앉아 내게 다가온 그림책들을 하나씩 기록해보고자 한다. 사실 좋아한 시간이 쌓였을 뿐 그림책에 대한 지식이 쌓인 건 별로 없다. 하지만 아는 것을 기록한다기보다는 나를 스친 감정들을 기록하고 싶어 졌다.
이 화장대에 앉아 거울로는 볼 수 없는 내 속 안의 감각들을 가꾸어 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