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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애 Nov 11. 2023

독일 팝소설 "파저란트"가 던진 신호탄?

어제 대전에서 열린 시민인문강좌에서 1995년에 나온 크라흐트의 소설 "파저란트" 강연을 했다. 강연이 끝나고 청중 중 50 쯤 되어 보이는 한 남자 분이 오셔서 '비평가'이시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비평가가 아니고 내가 연구한 사람이 비평가라고 대답 드리니, 그분이 강연 내용을 듣고 요즘 한국 사회 보며 답답하던 차에 문제를 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셔서 어리둥절했다. (정치도 개판이라고 하시는 걸 보니 적어도 정권 지지자는 아니신듯했다) 나보고 "선생님께서 한국 사회 비평에 대한 글을 써주실 수 있겠냐

"고 하셔서 더욱 놀랬다. 사회비평은 감히 꿈도 꾸어본 적이 없다. 저는 그냥 연구만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그럼 오늘 강연과 비슷한 내용을 앞으로도 정리 해서 글로 발표해주시면 그걸 한국 사회 진단에 응용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셨기 때문에 뭐라 대답을 못 드렸다. 대체 오늘 강연이 어땠길래? 소설의 내용이 어땠길래? 소설은 온통 명품으로 치장한 한 상류층 청년이 북독의 쥘트섬에서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뮌헨 등을 거쳐 취리히까지 여행하다가 취리히 호수 한 가운데로 보트를 타고 나아가는 장면(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는 명품 브랜드로 다른 집단과 구별 짓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명품 소비의 사이비 개인주의를 흉보는 인물이다. 또 여행 내내 과도한 음주와 흡연으로 자기 몸을 의도적으로 학대하면서도 공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어 유년시절의  순간들을 그리워하며 떠올린다. 겉으로 보면 사치하고 향락에 빠진 것 같은 청년의 이야기이지만 청년의 내면을 우울로 규정하고 그러한 우울을 야기한 여러 요인들을 정리해본 강연이었다. 주인공처럼 어디 머무르지 않고 늘 이동 중인 공간 이용자는 전통적 의미의 장소가 주는 귀속감과 연대 의식을 박탈당한다. 여기서 마크 오제의 '비장소' 개념을 언급했다. 주인공이 따르는 명품 유행 역시 개인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주지 못한다. 다른 집단과 차별화하면서 개성을 추구하지만 결국 유행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추구하는 것을 그저 따르는 모방이고 평준화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학자 짐멜의 유행 이론을 언급했다. 또한 주인공의 향락주의에 깊이 드리운 우울은 중심의 부재에 기인한다. 부모의 부재(68세대에 속한 부모들이 자아 실현에 몰두하느라), 가치관과 이상의 부재(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경찰관이든 시위대든 다 똑같이 타락했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집단을 다 까맣게 칠해버린다.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다 똑같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대부분 이 온통 까맣다는 이러한 주장은 무지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조국의 부재.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에 대해 좋든 싫든 모든 독일인이 짊어져야 하는 부정적인 집단적 기억 때문에 조국이란 차라리 부인하고 싶은 대상이 된다. 이러한 요인들이 우울을 야기시키킨다. 주인공이 소비지향주의,  향락주의, 나아가 자기 학대, 냉소주의에 빠진 것은 그 바탕에  특별한 사회심리 상태인 우울이 깔려 있다. 강연은 대강 이랬다. 대단한 내용도 아니고 내가 아는 것을 프리즘 삼아 소설을 해석해본 강연이었는데, 그분이 보여준 찐 반응의 이유가 진짜 궁금했다. 유행 및 브랜드 페티시즘 이야기도, 1970년대 이후 독일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된 68 세대의 문화적 헤게모니 이야기도, 독일 정체성을 둘러 싼 담론 이야기도 다 알만한 사람들은(물론 아는 사람만 알겠지만) 아는 내용 아닌가? 그런데 그분에게 1시간 40분의 나의 평이한 강연이  왜 그런 생각까지 할 정도의 임팩트를 준 것일까?(어제는 그분에게 얼버무리고 대답해서 지금 생각해보니 좀 미안하다.) 문학 강연에서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 왜? 오늘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면서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그게 바로 문학이라는 전달방식이 가진 힘이 아니었을까. 이론적, 일반적으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토대로 전달해주는 문학의 힘. 대학원 시절 지금 여당 국회의원이 된 여고 동창과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중 역사학을 하는 그 친구가 그랬다. "문학 공부는 뭣하러 하냐고.   문학은 허구인데라고 하면서.  문학을 허구로밖에 보지 못하는 그 친구의 편협함과 왜곡된 생각이 국회의원이 된 지금 언론을 통해 전해진 친구의 발언에도 그대로 전해져서 씁쓸하다. 쓰다 보니 결국 결론은 문학 예찬이 된 듯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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