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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numsa Dec 26. 2023

[함께 여는 국어 교육] 성장소설 쓰기

부산국어교사모임 회지읽기소모임

2023년 3월 23일 오후 1:15 에 회지 읽기 소모임에 올린 글이다.



전체적으로 매우 공감되었다. 내가 후배 교사들에게 하고 다니는 말과 비슷한 말도 많았고, 내 수업을 돌아보며 ‘나도 이렇게 할 걸.’ 하고 후회한 경험이 몇 년만인지 모르겠다. 역시 대단한 분이다.

(1)
이 인터뷰에서 일관되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실천하는 교사만이 아이들을 감동시키는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달에 한번씩 부산에서 충북음성으로 찾아뵙고 공부”를 했다는데, 정말 대단한 열정이다. 열심히 하는 교사만이 수업을 잘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가 여기에 있다.

(2)
“아이들 글을 좋아하면 됩니다.”라는 말을 듣고 여러 교사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잘 쓰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격려하며 시, 소설 쓰기를 하는 교사들이 많다. 그 분들에게 ‘청소년 문예지에 글을 보내 주세요’ 하면 “우리 애들 글은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한다. 아이들 글을 좋아한다는 것은 완성도를 떠나서 좋아해야 한다. 아이들 글을 비평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 아이들의 잘쓴 글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글을 쓴다는 그 자체를 좋아해야 한다. 그리고 “잘 쓰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말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에 대해 구자행 선생님은 “형식보다 이야기에 집중하기”를 강조하신다. 사실 이게 글쓰기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이다.

(3)
“글쓰기 수업이 별 거 아님, 글쓰기 수업을 하면 행복하다”, 이런 느낌을 전해주려는 <국어 시간에 소설 써 봤니>는 후배들에게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소설 쓰기 수업을 시작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할지 막막한 교사들을 많이 보았는데, <소설 작법> 책을 직접 보면 더 좋겠지만, <소설 작법 지도법> 책도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이것은 마치 <문법 책>이 아니라 <문법 교육법 책>이 현장에 더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특히 잘 쓴 보기글이 없다는 점이 소설 쓰기 수업의 어려운 점인데, 부산 모임의 김왕백 샘도 보기글을 찾는 질문을 올린 적이 있다. 구자행 선생님도 친구, 언니, 선배가 쓴 글이 쌓일수록 든든하다 하셨듯이, 나도 국어교과실에 친구, 언니, 선배들이 쓴 글을 문집으로 모아두고 창작 수업 시작할 때 읽어보게 하였다.
<그림1>










(4)
“국어에서 삶을 다루는 영역이 부족하다.”라는 말에 동의하며 ‘기능’이 아니라 ‘경험’을 나누는 수업의 필요성에도 동의한다. 나도 ‘자서전’을 늘 쓰게 하는데, 삶을 다루고, 경험을 나누는 수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왜 수필이나 자서전이 아니라 소설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소설로 쓸 때는 삶을 자세하게 쓴다. 그리고 ‘형상화’하면서 고민한다. 그리고 ‘치유’된다. 수필이나 자서전보다 “형상화”를 하면서 경험에 대한 생각이 첨예해진다. 갈등을 발생시켜야 하고 이것을 일반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설명, 논증, 묘사, 서사 중에서 ‘서사’에 대한 교육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도 답이 된다. 서사는 글의 가장 기본이다. ‘그려내는 힘, 한 가지를 정확하게 붙잡기’는 성장소설 쓰기 수업의 ‘교육 내용’이 된다. 앞의 ‘소설 권하기’ 인터뷰와 다른 점인데, ‘책 대화하기’는 교육 방법이지 교육 내용이 아니다. ‘성장 소설 쓰기’는 교육 방법이며, 그 교육 내용이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수업에 대한 이야기는 이래야 실속이 있다.
근데 ‘치유’의 면에서 성장소설이 아니면 치유할 곳이 없다는 부분은, 담임이나 생활지도 교사들이 반성해야 한다. 청소년기에 민감한 이야기를 어디다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 마음에 병이 된다. 사실 가벼운 마음의 병은, 담임이나 생활지도 교사들이 충분한 공감듣기로 풀어줘야 한다. 아동학대신고의무자 연수, 인공호흡연수, 등등 교사들의 법정 의무 연수 속에 ‘공감듣기, 비폭력대화’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비슷하게 구자행 선생님은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한 줄기가 되듯이 <자기 소설 쓰기가 국어교육의 한 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자서전 쓰기>가 한 줄기 되면 좋겠고 <공감대화하기>가 한 줄기 되면 좋겠다. <연극>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한 줄기 억지로 집어 넣은 것 대신에.

(5)
구자행 선생님이 ‘계획-생성-조직-초고-퇴고’를 비판했지만 실상 ‘언제 어디서 일어난 일인지 밝히기, 주고받은 말 살려 쓰기, 생각이 흐르는 대로 쓰기, 서사문으로 쓰기(설명하지 않기), 그림그리듯 묘사하기’는 위의 5단계와 배타적인 교육은 아니다. 잘 버무리면 된다. 나도 시, 소설, 수필 쓰기를 해마다 꼭 하는데, 소설을 쓸 때
1. 이름, 나이, 성별을 밝힌다
2. 구체적인 사건을 만든다
3. 갈등을 발생시킨다.
4. 대화체를 꼭 사용한다.
5. 반전을 넣는다.
6. 10줄 이상 쓴다.
처럼 규칙을 만들었는데, 늘 미진한 느낌이 있었다.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 헨리처럼 ‘반전’에만 집중했다. 이것이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다. 돌아가면 그냥 소설 창작 말고 ‘성장소설’을 쓰게 만들고 싶다.

(6)
선생님의 지향점은 1.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자유로운 교실 2. 동료 교사를 대하듯 아이들을 존중하는 교실이다. 1.에 대해서 매우 동의한다. 구자행 선생님에게 학생들이 ‘고자행님’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하지만 선생님은 화내지 않는다. 무엇이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교사들이 마음이 열려 있는 것 같지만 “선생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라고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어야 수업 시간에 쓸모 있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헛소리들 속에서 쓸모 있는 말이 가끔 나오는 것이지, 쓸모 있는 말을 하되, 그 외에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도록 교육해서는 안 된다. 2.에 대해서 나는 표현이 조금 다르다. 나는 동료 교사들처럼 아이들을 대하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을 친구처럼 대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친구처럼 느껴지고 싶다.”라고 말하는 예비교사들이 많은데, 이건 실패하게 되어 있다. 교육의 선이 안 그어지기 때문이다. ‘친구같은 선생님’에 대한 나만의 정의는 내가 아이들을 ‘내 친구’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영어의 Friends가 포함하는 범위를 생각해 보라.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처럼 대하고, 나는 아이들을 친구처럼 대하면 교실이 평화로워진다.

(7)
소설은 오래 걸린다. 과정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재미있다. 심지어 유익하다. 고3에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젊은 교사들이 고3은 원래 안 된다고 지레 포기한다. 소설 쓰기 수업을 제대로 하려면 구자행 선생님 말씀대로 “교사가 먼저 글을 써야 합니다.” 나도 시 쓰기, 수필 쓰기, 자서전 쓰기, 설명문, 보고문, 발표문 등등을 직접 써 본 후에야 가르쳤다. 특히 영재원 수업할 때, ‘수필’을 맡았는데, 그 덕에 나도 1년 동안 수필 많이 썼다. 수필 쓰기 기능뿐만 아니라 ‘수시로 쓰는 태도’까지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는 팔짱 끼고 “너희가 써 봐.” 하고 가르치려다가 잘 안 된다고 힘들어 하는 분들을 봤다. 맨날 문법 강의하는데 어쩌다 작문이나 창작 강의를 하게 되면 “교사가 직접 써 봐야 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 말을 어디선가 들은 분들은 다음과 같은 수업기록을 남기신다.
https://blog.naver.com/dmg040240/22262108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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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https://blog.naver.com/rlawlsthf105/222625138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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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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