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22일 #2
여행을 처음 구상할 당시에는 기대감과 설렘 때문에 간혹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그건 나이에 관계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울 때쯤에는 조금씩 긴장을 하게 되고, 비행기나 호텔을 예약해야 하는 단계에 오면 괜한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여행의 세부적인 면까지 신경을 쓰면서부터는, 그리고 처음에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불확실성이 개입될 때면 가끔씩 호흡이 곤란해질 정도로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이때쯤이면 자꾸만 긍정적이고 확실한 부분들은 뒤로 비껴 나 버리고, 부정적이고 불확실한 가상의 결과들만 전면에 부각이 됩니다. 그래서 만약 지금까지 체결했던 관련 예약들이 모두 무료로 취소가 된다면 일정을 취소하거나 뒤로 미뤄볼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특히 그 여행을 혼자서 진행해야 한다거나, 일정이 길고 타이트하게 짜여 있거나, 아니면 익숙한 곳도 아니고 안전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역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많은 나이에 22일간 혼자서 발칸반도 7개국을 돌아볼 나의 여정이 거기에 해당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러한 힘든 과정을 넘기면서 여행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말입니다.
A항공사의 인천에서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는 10시 20분에 출발하지만 부산에서 그걸 타기 위해서는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 또 한 번 더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장기 여행이라 절약 모드의 경제적인 여행을 표방하고 있지만 KTX를 이용해서 최소 9시까지 인천공항으로 가는 건 조금 무리가 따릅니다. 실현 불가능한 일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환승 내항기로 부산에서 출국 수속까지 마치고 여행기간에 비해 좀 작은 느낌이 드는 배낭 하나만 메고 바로 인천까지 갑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 괜히 비는 내려서 우울 모드를 조성하고, 그것 때문에 또 예약 과정에서 있었던 어려움이 떠오릅니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영어로는 Bucharest) 까지는 약 14일간의 호텔들을 다 예약을 마친 상태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같은 레벨이지만 약간 더 가격이 비싼 무료 취소 가능한 호텔에서부터, 나름 그럴 일이 없으리라고 확신을 가지고 취소 불가능 조건의 약간 더 저렴한 호텔까지 다양한 호텔들이 예약 확정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교통편에 대해서는 지금은 일단 비수기에 해당되므로 굳이 예약이 필요 없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는 인터넷 상의 참고 사이트들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막상 예약을 하려고 해도 버스와 기차 등 이동수단들의 출 도착시간이라든지, 장소가 불분명한 지역들이 의외로 많았고, 결제수단들과 방법들이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설정되어 있거나, 예약 사이트들 자체가 영어를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이동수단들에 대해서는 과감히 예약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첫날 이스탄불에서 불가리아로 가는 심야버스에 대해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가능성이 낮다고는 하지만 만약 그 시간의 버스가 좌석이 매진되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시작부터 일이 꼬여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그 버스는 좌석 배열이 2열과 1열로 구성되어 미리 예약을 할 수 있다면 내가 가장 싫어하고, 우려하고, 피하고 싶은, 낯선 사람과 몸을 맞대고 앉아서 수 시간을 가야 하는 고역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어찌 되었던 첫날 불가리아행 심야버스에 대해서만은 반드시 예약을 성사시켜야 합니다.
메트로라고 하는 터키에서 꽤 유명한 버스회사에서 그 노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예약 사이트에서 요구사항을 입력하는 중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항목에서 이해되지 않는 에러가 계속 발생하여 예약이 불가능합니다. 누구는 어떻게 어떻게 해서 예약을 성사시켰다며 인터넷에 티켓을 손에 든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지만 나는 거기에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을 시행착오와 함께 보내고 나서야 어느 버스 티켓 예약 사이트를 찾아내서 겨우 예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호흡은 가빠졌고, 맥박은 덩달아 빨라졌음은 물론입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불확실성을 감안하여 미루고 있다가 마침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까지 즉, 출발 전날에서야 예약을 시도했고 겨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내가 게을러서라기 보다는 나이가 들다 보니 신중함을 빙자한 결단력 부족이 그 중요한 이유입니다.
팽팽한 긴장감과 약간의 설렘과 기대감으로 인천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이 지긋지긋한 비행기 앞좌석 징크스는 여지없이 시작됩니다. 김해공항에서 일요일 오전 7시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환승 내항기이다 보니 좌석이 군데군데 많이 비어 갑니다. 특히 뒤쪽에 빈 좌석이 많고 내가 앉은 3열 좌석에도 창쪽인 내 자리 외에는 옆의 두 자리가 비어 있고, 내 앞의 좌석들도 나랑 똑 같이 비어 갑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내 앞자리가, 오른쪽으로 두 자리가 비어 있는데, 왜 하필이면 내 앞좌석만 뒤로 젖혀집니다. 나는 의자를 뒤로 젖히는 그 이름 모를 승객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꼭 나에게 일어나야 하는지, 그 비극적 운명에 대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앞 뒤 어디를 둘러봐도 한 시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를 가면서 좌석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가는 그런 승객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일이 어쩌다 일어나면 그럴 수 있는 일로 치부하며, 아니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이겠지만, 유독 이런 일이 나에게만 반복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나랑 같이 비행기를 가장 많이 탔었고, 매번 이런 어이없는 사태를 함께 경험해왔던 어느 여인도 이런 징크스에 대해 신기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구름 위에서 보는 하늘은 지상과는 달리 푸르고 맑습니다. 어쨌든 비 내리고 흐린 날씨보다는 맑은 날이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합니다.
트랜스퍼 표지판을 따라 출국장으로 나오니 벌써 얼마나 됐다고(지난 1월에 김해에서 인천까지 오늘과 똑같은 경로를 밟았다) 인천공항의 허브 라운지를 찾는데 애를 먹다가, 겨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면세품 인도장 옆으로 찾아갑니다. 항공기의 대기시간을 죽여주는 데는 정말로 탁월한 다이너스클럽 카드입니다. 기내에서도 과하게 먹을 테지만 기다림이 지루해서 또 한 접시 합니다.
커피를 한 잔 마셔도 여전히 비행기 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터키에서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알바니아로, 다시 보스니아, 세르비아로 그리고 루마니아로 갔다가 다시 불가리아로 그리고 터키로 와서 한국으로 오는 일정, 내가 읊어봐도 숨 가쁩니다. 잠시 여유가 생기니 또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이 그동안 잠잠하던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걱정은 할수록 끝도 한도 없이 커질 뿐 정신건강과 일정을 진행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쉽사리 일어나지 않을 일을, 그리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나이가 드니까 자꾸 걱정만 앞서고 조바심이 나서 자신감을 불러들이는 주문을 걸어봅니다. 나의 문제는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과도한 수준으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다는 잘못된 자각입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자료 검색 중에 '할매도 혼자서 발칸여행한다'는 기사를 잠깐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할매도 하는데, 나는 벌써 유럽으로의 자유여행이 몇 번짼데. 완벽해지려고 너무 조심하지 말고, 실수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지. 당분간 3주간은 나를 알아볼 그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자.
드디어 탑승 15분 전, 인천공항에서만 화장실에 두 번이나 들르고, 이번 여행은 출발 전부터 유난히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이건 앞으로는 이런 여행을 할 기회가 많지 않으리라는 전조인 것 같습니다. 혼행족들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휴가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눈에 별로 띄지 않고, 여기 이스탄불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35번 게이트 앞에는 단체 여행객 들인듯한 연세 지긋한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15분 후 자연스레 나도 그들 틈에 섞여 탑승교에 오릅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올라 내 자리에 앉자 말자, 비행기가 이륙도 하기 전에 앞좌석이 내 앞으로 밀려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이륙시에, 식사시간에 여승무원의 요청이 있을 때까지 여러 차례 바로 세워졌다가 이내 뒤로 젖혀지기를 유난히 많이 반복하면서 이스탄불까지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