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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영 Jul 10. 2017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88년생 문서영'을 읽고...

지난 주말,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주변에 지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의 얼굴이 많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지영이라는 이름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데, 실제로 1982년도에 태어난 여성들의 이름 가운데 가장 흔한 이름이 지영이라고 한다. 책의 제목이 함축하고 있듯이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은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들의 보편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소설의 주인공이 독특하다는 특징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인지 동 소설을 읽으면서 책에 나온 김지영씨가 겪고 있는 인생여정들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때로는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도 났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132pg)."


참 모순적인 말 같지만 정말 공감이 되는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친할머니는 손주들 중 첫 아들로 태어난 친오빠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가족들과 함께 할머니댁을 방문할 때면 분명히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내 뒤에 있는 오빠를 먼저 안아주시며 인사를 하셨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무뚝뚝한 손자보다는 할머니랑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는 손녀가 좋다고 하신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여전히 "가정 내에 아들이 잘 되어야 한다"면서 나에게 "여자가 이 정도 공부했으면 충분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애기 가져야지"라고 하신다. 부모님도 너무 무리해서 공부하지 말고 애기 가질 준비를 하라고 하신다. 요새 친구들에게 나의 2세 계획에 대하여 말할 때면 친구들은 "아기 있으면 취직못한다, 공부를 때려치려고 하는거냐, 논문은 언제 쓰려고 그려나, 애 키울 돈은 있냐" 등 많은 현실적인 직언들을 아끼지 않는다.


김지영씨의 말대로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과거와 달리 결혼한 여성들도 일을 하게 되면서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였고, 반면에 출산율은 급감하였다. 이에 정부의 출산장려 지원정책들도 많이 생겨났고, 법적으로 엄마 아빠의 출산휴가도 보장되었으며, 국공립 어린이집들도 많이 지어졌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직장 내 결혼한 여성들이 임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다. 직장에서 눈치도 보이고, 아기를 가졌을 때 김지영씨처럼 여성들이 자신의 삶에서 희생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 출산 후에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맞벌이 부부일 경우 남편은 계속해서 일을 하지만 부인은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일반적으로 동일한 직급에서도 남성이 여성에 비해 월급이 더 높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기 키우기와 집안 살림은 여자가 담당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우리의 인식 속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에서는 여전히 결혼해서 출산 후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직장 일에 소홀할 가능성이 높은 여성보다는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는 남성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지만, 한편으로 우리 사회 내의 성에 대한 문화나 사고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내가 겪고 있고 고민하고 있는 부분들이 결코 나 혼자만의 고민과 경험이 아니라 나와 동세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윗세대의 여성들 더 나아가 어쩌면 나의 후세대들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에 공감하였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132쪽)"


김지영씨의 물음처럼 과연 출산장려 지원정책, 양성평등정책 등과 같은 제도의 형성이 진정으로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제도를 적용받는 이들 각자가 의식과 행동을 변화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이 변하려면 사람들의 문제 현상에 대한 인식과 공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 사회 내에서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사고와 행동 속에 녹아있는 '성'에 대한 차별적인 관념과 생각을 인지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고민에 대하여 공감하고 이해함으로써 사회구성원들 간의 대화의 창을 열어주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맬콤 글래드윌의 tipping point 처럼 어느 순간 우리사회 내에 성에 대한 고정관점, 관습 등의 실질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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